천사가 등장하는 그림 감상하기
친정엄마의 하루 일과는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마치 광신도와 같은 모습이 그려지지만 단지 엄마의 기도는 온 가족과 가족 주변의 많은 이들의 이름을 잊지않고 하나씩 넣어가며 또박또박 써 내려가는 일기와 같다.
가족들의 중대사를 놓고 청원기도를 시작했다 하더니, 어느 날은 가족들이 이룬 크고 작은 성과에 대한 감사기도를 하고 있노라 했다. 문득 우리 가족 모두가 무탈하게 잘 살고 있는 건 엄마의 기도 때문일 거란 확신이 들었다. 이른 새벽 혹은 늦은 밤 살짝 열린 문틈으로 엄마의 중얼거리는 기도소리를 듣노라면 그 모든 음절은 어느새 수호천사의 모습으로 날아와 나를 지키고 있는듯 했다.
내가 가진 '천사'의 이미지 중 가장 강력한 것은 1993년 개봉한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의 주인공 다미엘의 모습이다. 베를린 전쟁기념탑의 꼭대기에서 슬프게 사람들 세상을 바라보는 다미엘의 모습으로 시작되는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는 나로 하여금 천사라는 존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천사가 등장하는 그림들을 볼 때마다 그 사유는 넓고 깊게 확대되곤 하였다.
그럼 천사가 등장하는 그림 몇 편을 감상해보자.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그림의 제목은 쓰지 않고 그려진 시대와 화가 정도만 소개해본다. 그림에 등장하는 날개 달린 존재를 보며 각각의 인물(?)이 누구인지, 어떤 맥락 속에 놓인 상태인지 상상해보자.
상단 좌측: 프랑수아 제라르/1797년/캔버스에 유채/186*132cm/루브르 박물관(프랑스)
상단 우측: 프란체스코 보티치니/1470/패널에 템페라/ 135*154cm/우피치 미술관(이탈리아)
하단 좌측: 알렉상드르 카바넬/ 1863년/캔버스에 유채/130*225cm/오르세 미술관(프랑스)
하단 우측: 베노초 고촐리 / 1460년 / 패널에 템페라 / 84.8*50.6cm/디트로이트 미술관(미국)
이게 다 천사 맞아?라고 묻고 싶겠지만, 인간의 모습에 날개를 달고 있으니 천사라고 부를 수밖에. 그러나 놀라지 마시라. 서양미술에서 다루고 있는 천사는 시대나 그리는 이에 따라서 모습과 의미가 다 달라진다.
먼저 위의 그림 중 A를 보자. 도자기로 빚어놓은 듯한 선남선녀, 여성의 머리 위에 작은 나비가 보이는가? 그리스어로 '정신' 혹은 '나비'를 뜻하는 말인 프시케(Psyche)가 그녀의 이름이다. 이쯤 되면 프시케를 사랑하는 남자로 보이는 날개단 이가 에로스라는 것을 눈치챌 것이다. 그렇다면 첫 번째 그림의 A는 엄밀히 따져 천사라고 부를 수 없겠다. 에로스(큐피드)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아들이니 말이다.
참고로 신화를 소재로 그려진 그림에서 에로스와 함께 등장하는 아름다운 여성, 특히 나비가 주변에 있거나 나비의 날개를 가졌다면 그녀는 프시케라고 이해하면 된다. 등불을 들고 잠든 에로스를 보는 장면, 아프로디테의 명령으로 아름다움이 담긴 상자를 운반하다가 호기심에 못 이겨 몰래 열어보는 장면, 서풍의 신 제피로스가 프시케를 들어 옮겨주는 장면 등이 많이 그려졌다.
다음 그림에는 천사로 보이는 3명의 인물(B, C, D)이 있다. 그런데 천사라고 하기엔 그들의 복장이 좀 특별해 보인다. 왼쪽 인물은 전쟁터에 나가는 듯 갑옷을 입고 있고, 나머지 두 인물은 화려한 귀족의 복장을 하고있다. 성경을 기반으로 한 그림 중 많이 그려지는 천사는 대천사 미카엘과 가브리엘이다. 라파엘 대천사의 경우 외경인 '토비트서'에 한 번만 언급되고 있어 라파엘보다는 구약과 신약의 중요사건에 많이 언급되는 미카엘과 가브리엘 천사의 그림이 주로 많다.
상단 우측의 그림 속 가장 오른쪽에 백합을 들고 있는 인물(D)이 대천사 가브리엘이다. 그의 역할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하게 됨을 알려주는 장면이다. 수없이 많은 화가들이 그 장면을 그렸다. 가톨릭에선 이 장면이 그려진 그림을 성모영보(聖母領報)라 하고 개신교에선 수태고지(受胎告知)라 부른다.
어느날 갑자기 결혼을 앞두고 있는 처녀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라고 말했다.
갑작스럽게 이런 이야기를 들은 마리아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프라 안젤리코의 벽화 속 마리아는(상단 좌측)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며 순종적인 모습으로 그려졌고, 우리에게 '비너스의 탄생'의 화가로 잘 알려진 보티첼리는 가브리엘이 전하는 메시지를 놀라 거부하는듯한 애틋한 인간적인 마리아의 모습을 그렸다.(상단 우측)
로렌초 초토는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상황에 깜짝 놀라 황급히 도망가는 마리아의 모습과 뒤쪽에서 마치 "이봐요! 잠깐만요!!!" 라고 말하며 당황스러운 모습으로 쫓아오는 가브리엘 천사의 모습을 익살스럽게 그렸다(하단 좌측).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속 마리아는 당황한 기색 없이 담대하고 우아하게 가브리엘을 맞이하고 있다. 그 모습이 아름답기 그지없다(하단 우측)
초기 그리스도교 미술과 비잔틴 미술에서는 우물가에 있는 마리아나 실을 잣고 있는 마리아에게 가브리엘이 나타나는 형식으로 표현되곤 하다가 이후 명상 중인 마리아에게 가브리엘이 나타나는 형식으로도 표현되곤 하였다. 각기 다른 다른 스타일로 그려진 성모영보(聖母領報)/수태고지(受胎告知)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가브리엘 대천사가 백합을 들고 있거나 그들의 주변에 백합이 피어있는 것이다. 순수함과 정결함의 상징인 백합은 붉은 장미나 청자색 매발톱꽃과 더불어 성모 마리아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가장 왼쪽의 미카엘(B)은 동방교회에서 병자를 돌보는 천사로 공경받았고, 서방교회에서는 천상 군대 우두머리이며 병사들의 수호자로 공경받았다. 악의 세력과 싸우는 전사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아 다른 대천사들과 달리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이 많다. 보티치니의 그림에 등장하는 미카엘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모델로 해서 그려졌다는 설이 있다. 다빈치는 젊었을 때 매우 미남이었단다. (사실이라면 신은 다빈치에게 몰아줘도 너무 몰아주신거 아닌가?)
가운데 라파엘(C)은 ‘하느님의 치유'라는 뜻의 히브리어에서 나온 이름이다. 나약한 인간을 보호하고 치유하는 라파엘은 낯선 길을 가는 순례자나 어린아이의 수호천사로 표현된다. 라파엘 대천사의 스토리는 아래를 참고
토 비트서에 언급된 라파엘 천사의 이야기 https://brunch.co.kr/@insightraveler/17
천사라고 하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날개를 단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언제부터 천사는 날개를 가진 존재로 표현되었을까?
<다음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