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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May 20. 2018

그들이 천사와 함께 걷는 이유

여행이 열 배 즐거워지는 그림 보는 법 <토비아와 라파엘>


<그림을 보는 법>의 저자 야자키 요시모리, 니카무라 겐이치의 말을 빌자면 우리가 그림을 감상할 때 고려해야 할 요소들은 '그림의 상징성, 그림이 표현하고 있는 느낌, 형태와 색, 선과 구도, 면과 형태의 관계, 데생의 품질, 화가의 개성, 그림의 역사적 위상' 등이다.


듣기만 해도 '그림 보는 일이란 나와 관계없는 일이야'라고 포기하게 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말자. 그림은 단순히 캔버스 위에 물감을 칠해놓은 예술사의 산물이 아니다.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는 사람에게 그림은 캔버스 뒤로 펼쳐진 무한 세계로 들어가는 비밀의 문을 활짝 열어준다. 어떤 책이나 영화보다도 흥미진진한 세상으로 여행할 수 있게 해준다.


그 여행을 위한 몇 가지 방법을 이해한다면 그 여행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순수한 취미로서의 회화가 등장하기 전까지 기본적으로 모든 예술활동은 작품을 사는 사람들이 있어야 비로소 성립했다. 우리가 유럽 여행을 가서 방문하는 미술관에 있는 거의 모든 회화는 그것을 사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그린 것들이다. 염두에 둔 정도가 아니라 그들의 드러나는 혹은 드러나지 않는 요구를 만족시켜야 했다. 역사상 초상화가 많은 이유는 화가에게 돈을 지불하고 자신의 모습을 그리도록 했기 때문이다. 돈을 지불하는 사람을 '패트런'이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패트런은 황제나 군주, 교회, 귀족이었다가 막대한 경제력을 가진 상인층이나 길드이기도 했고 특이하게 시민계급(네덜란드)이기도 했다.


패트런의 입장이 되어서 아래 그림을 보자.

<토비아와 천사>(1470~1480),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1435~1488, 이탈리아), 패널위에 템페라, 84 x 66 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런던 내셔널 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는 <토비아와 천사>다.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라는 생소한 이름의 화가가 그렸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승이라고 하면 모두 아! 하고 감탄한다. 다빈치뿐인가? 라파엘로의 스승으로 알려진 페루지노, 보티첼리 등도 모두 베로키오 공방 출신이다.


먼저 두 인물의 모습을 살펴보자. 왼쪽의 인물은 날개가 달려있는 것으로 보아 천사인 듯하고 오른쪽의 인물은 어린 소년처럼 보인다. 소년의 손엔 물고기가 들려있고 복장으로 보아 부잣집 아들인 듯하다. 천사의 발 밑엔 곱슬 강아지가 있다. 다소 들떠 보이는 소년의 모습. 둘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위의 그림은 토비트서(書)(토비아 서라고도 함)의 이야기 중 한 장면을 그린 것인데,  토비트서는 개신교와  유대교에서는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가톨릭에서는 정경으로 인정하는 구약성경이다. 토비트는 경건한 유대인으로 악의 세력에 의해 해를 입었지만 굳건한 믿음으로 정의롭고 전능한 하느님에게 보답받는 토비트의 이야기다.


평생토록 진리와 선행을 행하고 이국으로 추방을 당해서도 신앙을 지킨 토비트는 참새의 똥이 눈에 떨어지는 바람에 장님이 된다. 죽음이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 토비트는 아들 토비아에게 먼 곳에 사는 친척에게 빌려준 돈을 받아오도록 시킨다. 그리고 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하는데 이에 응답한 하느님은 대천사 라파엘을 지상에 보낸다. 여행길에 동행할 사람을 구하던 토비아는 자신이 천사임을 숨긴 라파엘을 만난다. 여행길에 많은 일을 겪은 토비아는 사라라는 여성을 만나 결혼을 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눈을 낫게 한다. 라파엘은 '하느님의 치유'라는 뜻이며 맹인들의 수호천사이다.  


왼쪽: 필리포 리피(1475-1480)  / 가운데: 피에트로 페루지노 (1496-1500) / 오른쪽: 폴라이우올로 형제 (1465 - 1470)


15세기 후반, 베로키오 외에도 필리포 리피, 피에트로 페루지노, 폴라이우올로 형제 이 외에도 많은 화가들이 같은 주제의 그림을 그렸다. 모두 이탈리아 화가들이다. 구약시대의 토비아는 왜 15세기 귀족의 옷을 입고 북부 이탈리아에 등장하게 된걸까? 당시의 패트런은 왜 이 그림들을 주문했을까?


당시 피렌체, 베네치아 등 이탈리아 북부에는 십자군의 동방원정으로 그때까지 볼 수 없던 여러 가지 진귀한 문물이 들어오게 되며 지중해 지역에 무역활동이 활발해졌는데 이로 인해 화폐의 유통이 비약적으로 증대하게 된다. 오늘날 달러나 유로처럼 피렌체의 '피오리노(플로린)'과 베네치아의 '두카트'가 양대 기축통화가 된다.


활발한 교역이 일어나면서 돈을 빌려주는 은행업이 확대되는데,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사람들에겐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구약성서에 "이방인에게는 이자를 받고 꾸어주어도 되지만, 너희 동족에게는 이자를 받고 꾸어주어서는 안 된다."(신명기 23장 21절)는 성경의 말씀을 위반하게 된 것이다. 당시 고리대금업자는 기독교도의 묘지에 묻히지도 못했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해 낸 것은 동족에게 돈을 꾸어주지만 이자를 받을 땐 다른 나라의 대리인이 갚게 하는 방법이다.


왼쪽: 베네치아의 두카트      오른쪽: 피렌체의 피오리노


예를 들어 내가 피렌체의 크리스털에게 100 피오리노 대출해주고 반년이 지나면  이자를 포함한 110 피오리니를 받아야 하는데 이는 성경에 위배되는 행위다. 대신 베네치아에 있는 크리스탈의 대리인이 110 두카티를 베네치아 지점에 지불한다면 이는 성경에 위배되지 않는 행동이 된다. 당시 대규모의 은행을 경영한 바르디 가문이나 페루치 가문 등은 해외에 열다섯 개가 넘는 지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아무튼 이자를 받아야 하는 입장에선 다른 나라에 있는 지점에 지불된 돈을 찾아와야 하는 일이 남는데, 이 일은 아무나 보낼 수 없었기에 믿을 수 있는 지인이나 친척을 보내야 했고 중요한 거래의 경우엔 자신의 아들이나 동생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금화를 들고 긴 시간 이동을 하는 일은 분명 위험한 일이었을 테고 위험한 여행길을 떠나는 자식이나 형제를 둔 패트런들에겐 토비아와 라파엘 천사의 그림은 자신의 아들이나 형제가 천사의 보호를 받으며 여행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그들의 염원에 부합한 주제였을 것이다.


라파엘 천사 한 명으론 불안함을 떨치기 어려웠을까? 라파엘, 가브리엘, 미카엘 3명의 천사가 토비아와 함께 걷는 그림까지 등장하게 된다. 하긴 이 정도면 어딜 가도 두렵지 않긴 하겠다.


그들이 들고 있는 지물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맨 왼쪽이 미카엘, 가운데가 라파엘, 오른쪽이 가브리엘이다.


<Three angels and young Tobias>1485,  Filippino Lippi, 1485, Oil on panel, 100 × 127cm




빨리-많이-대충 에서 천천히-깊게-대화하는 여행을 만들어주는... 그림 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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