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수정 May 22. 2018

세상에서 가장 비싼 색, 블루

여행이 열 배 즐거워지는 그림 보는 법

독일 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알브레히트 뒤러는 1508년 그림 주문을 받은 후 그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한 안료인 울트라마린을 구하기 위해 지불한 금액을 주문자에게 적어 보냈다.


"나는 1운츠(30g)의 훌륭한 울트라마린 값으로 12두카텐짜리 작품을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뒤러가 자신의 작품을 팔아 받은 12두카텐(황금 41g)으로 울트라 마린 30g을 구입한 것이다.

황금보다 비싼 물감이라니! 게다가 당시의 황금은 오늘날보다 열 배의 가치를 지녔다고 한다.


또한 주문서에는 그림의 어느 부분에 어떤 품질의 울트라마린을 사용했는지 정확히 기록되어 있고 울트라마린의 가격은 별도의 계산서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다. 황금보다 비싼 물감을 사용했으니 계약한 만큼의 울트라마린을 정확하게 쓰는 일은 화가의 신뢰도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뒤러뿐만이 아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도(한국에선 베르메르가 더 익숙한 이름이다) 그림을 그릴 땐 반드시 의뢰자와 울트라마린을 어느 위치에 얼마큼 사용한다는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울트라마린이 황금보다 비쌌던 이유는 원료가 되는 청금석이 유럽엔 없었기 때문이다. 칠레의 안데스 산맥이나 아프가니스탄 동부에만 있던 청금석을 해로를 통해 유럽으로 운반해왔기 때문에 '바다를 넘었다'란 의미의 울트라마린(Ultramarine)이란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청금석  (사진출처:Pixabay.com)



천연 울트라마린에는 방해석이나 황철광, 휘석과 운모 등이 섞여 있어 이 색상을 이용해 그린 그림은 보는 각도에 따라서 파란색에 흰색과 금색이 섞여 나타나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색도 아름다운데다가 비싸기까지 했으니 울트라마린으로 그릴 수 있는 대상은 그리스도나 성모 마리아에 국한되었다.  그림을 주문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자신의 신앙심을 표현하기에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540~604)는 '성서가 읽을 수 있는 사람을 위한 말씀이라면 그림은 가난한 이들의 성서'라고 말하며 교회에 있는 그림은 평범함 사람들을 위한 책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 규정은 수백 년 동안 기독교 회화를 규정하는 최상위 법이었다. 그러므로 기독교 회화에서는 그림 속 인물이 누구인지, 어떤 의미를 지닌 장면인지를 알게 하려면 규칙이 있어야 했는데, 등장인물이 입고 있는 옷의 색상과 그들이 지닌 소품이 그런 역할을 했다. (모든 규칙이 그렇듯 예외는 있다. 예외의 경우 또한 그 색채에는 의미가 있으므로 전통적인 상징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성모 마리아의 상징색은 파란색이다. 찬란한 울트라마린의 옷을 입고 있으면 승리의 성모이자 하늘의 여왕이란 의미를 담고 있고 파란 망토를 두르고 있는 성모는 자녀를 보호하는 어머니의 특성을 나타낸다. 짙푸른 옷을 입은 마리아는 고통의 성모를 표현하기도 한다.


왼쪽: <자비의 성모>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1445)  가운데: <성모와 아기예수> 조반니 벨리니(1485~1490) 오른쪽: <시스틴 마돈나> 라파엘로 (1513)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에 등장하는 성모 마리아는 그림 속에서 가장 빛나는 파란색 옷을 입고 있다. 391명의 군상 속에 가장 도드라져 보이는 이유다. 미켈란젤로가 <최후의 심판>보다 30년 앞서 그린 <그리스도의 매장>은 미완성인 상태로 남아있는데 오른쪽 아랫부분에 한 사람이 그려질 공간이 남아있다. 아마도 성모 마리아를 그리려는 공간이었을 텐데 미켈란젤로는 왜 그 자리를 비워두었을까?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그릴 모델을 구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 울트라마린 안료를 구하지 못했던 까닭일 수 도 있다.  


왼쪽: <최후의 심판> 중 일부, 미켈란젤로(1534~1541)        오른쪽: <그리스도의 매장>미켈란젤로(1510)


성모 마리아를 채색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파란색이 필요한 곳엔 울트라마린보다 값싼 아주라이트를 사용하기도 했다. 아주라이트는 남동석이라는 광석에 함유되어 있는데, 구리광산에서 발견된다. 울트라마린에 비해 쉽게 변색한다. 인디고 역시 색이 흐리고 햇빛에 약해서 쉽게 변색했다.


다행히도 1775년 코발트블루라는 이름의 새로운 파란색이 생산된다. 코발트블루는 코발트라는 광석에서 얻는 안료인데 탄광 속에서 마치 파랗게 빛나는 요정의 눈처럼 보였다고 해서 요정(kobold)이란 단어로부터 유래되었다. 빈센트 반 고흐가 사랑했던 파랑이 바로 코발트블루다.


그리고 마침내 1828년 합성 울트라마린이 생산된다. 이 덕분에 우리는 파란색 물감을 양껏 짜서 바다도, 밤하늘도, 우울한 내 마음도 돈 걱정 없이 그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1kg에 1500만 원을 호가하는 천연 울트라마린을 쓰는 화가들도 있다. 합성과 천연의 그 미묘한 색상의 차이가 천오백만 원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술가의 특권일 테니

 



빨리-많이-대충 에서 천천히-깊게-대화하는 여행을 만들어주는... 그림 보는  법

매거진의 이전글 그들이 천사와 함께 걷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