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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May 24. 2018

이 금사과가 너의 것이냐?

여행이 열 배 재미있어지는 그림 보는 법

우리가 지금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있다고 가정해보자. 우리 눈앞엔 아래의 그림이 놓여있다. 대략 가로 2미터 세로 1.4미터의 크기다.

                                                                                                           


어떤 느낌이 드는가?


우리는 흔히 그림을 감상한다고 말한다. 감상이란 단어를 사전에서(표준국어대사전) 찾아보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느낌이나 생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다시말해 우리가 이 그림을 '감상'했다면 우리 마음속엔 어떤 느낌이나 생각이 일어나야 한다.


이 그림을 보고 어떤 느낌이나 생각이 일어났나? 아마도 '음, 여자 세 명이 옷을 벗고 서있다.'라던지, '매우 풍만한 여성들인걸 보면 예전엔 미인의 기준이 지금이랑 달랐나 보군?' 혹은, '오른쪽의 남성들과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무슨 상황이지?' 정도의 생각이 아닐까? (내가 이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의 생각이다.) 그리곤 서둘러 런던 내셔널 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는 다른 그림들을(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이라던지, 고흐의 해바라기) 찾아 바삐 이동하였을지도 모른다.


이 그림은 플랑드르 출신의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패리스의 심판>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트로이 목마'가 등장하는 트로이 전쟁의 발발 원인이 이 그림의 주제다.


바다의 신 테티스는 미르뮈돈의 왕 펠레우스와 결혼하게 되었다. 결혼을 축하하는 연회를 열어 많은 신을 초청했지만 불화의 신 에리스는 초대할 수 없었다. 자신만 제외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에리스는 불쾌함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었고 이에 금으로 만든 사과에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써서 테티스의 결혼식 연회장에 던져 넣는다. 이 금사과를 발견한 세명의 여신 '헤라(로마 신화에서는 유노)', '아프로디테(로마 신화에서는 비너스)', '아테나(로마 신화에서는 미네르바)'는 서로 그 금사과가 자신의 것이라고 했지만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다. (아무리 '신'이어도 외모에 관한 한 '자존심'의 문제였을까?) 셋은 이 문제의 결론을 제우스에게 내려달라고 하지만 제우스도 사태의 심각함을 알았는지(누구를 선택 하든 자신이 비난받을 테니)그 책임을 저 건너 이데산에 사는 목동 '패리스'에게 넘기고자 했다.


이데산에 사는 목동 패리스는 원래 트로이의 왕자로 태어났다. 패리스가 태어났을 당시 패리스의 어머니가 꾼 꿈은 그가 트로이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암시라고 여겨졌기에 이데산에 버려졌고 그곳에서 목동으로 키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제우스의 전령 헤르메스(로마 신화에서는 메르쿠리우스)가 세 명의 여신을 데리고 패리스 앞에 나타났다. 가장 아름다운 여신을 선택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각각의 여신들은 패리스에게 슬쩍 자신을 뽑아달라며 공약을 건다. 제우스의 아내인 헤라는 자신을 뽑아준다면 아시아의 군주 자리를 주겠다고 하고,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자신을 뽑아준다면 모든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지혜와 힘을 주겠다고 한다.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게 해 주겠다는 거부하기 힘든 공약을 내건다. 그렇다. 거부하기 힘든 공약. 패리스는 금사과를 아프로디테에게 준다.


결국 패리스는 헤라와 아테나와 척을 지게 되고, 아프로디테는 자신의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당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인 '헬레나'를 패리스와 만나게 한다. 그러나 문제는 헬레나가 이미 유부녀였다는 것. 그것도 스파르타의 왕 메네라오스의 아내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이듯 아프로디테의 힘으로 둘은 서로 사랑하게 되고 급기야 헬레나는 자신이 스파르타의 왕비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패리스와 함께 트로이로 간다. 결국 왕비를 빼앗긴 스파르타는 그리스 연합군을 모아 트로이를 침공하게 된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발 뒤꿈치(아킬레스 건)에 활을 맞아 죽는 아킬레우스, 트로이 목마의 책략을 만들어낸 오디세우스, 그 오디세우스의 여정을 그린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로 연결된다.


다시 처음 그림으로 돌아가자. 오른편의 패리스는 세 명의 여신 중 누구에게 금사과를 줄지 고민하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패리스의 마음속에선 이미 결정이 난듯하다. 그의 시선은 가운데 있는 여신에게, 그 가운데 있는 여신은 "어? 나?"라고 말하며 패리스를 바라보고 있는듯하다.


세 명의 여신을 구분하는 방법을 알아보자. 왼쪽에 서 있는 여신의 뒤론 메두사의 얼굴이 그려진 방패가 보이고 방패 아래쪽엔 투구가 보인다.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의 지물이다. 세명의 여신 중 가장 오른쪽에서 뒷모습으로 보이는 여신의 발치에는 공작새가 있다. 제우스의 여성편력이 심해 늘 마음고생하던 아내 헤라는 자신이 총애하던 눈이 100개나 달린 아르고스가 죽자(이것도 제우스의 바람기 때문이다) 그 눈을 모두 자신의 공작새 날개에 붙였다. 공작새 날개의 끝에 붙은 검은 원형 무늬는 아르고스의 눈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공작은 제우스의 아내 헤라의 지물이다. 가운데 선 아프로디테의 뒤편으론 날개 달린 아이 큐피드가 자기의 어머니인 아프로디테의 가운을 만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패리스가 아프로디테에게 금사과를 주기 직전이지만 이 신화로 인해 금사과는 아프로디테의 지물 중 하나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세 명의 여신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 이번엔 다른 그림을 보고 세 명의 여신을 구분해 보자. 가운데 패리스가 조금 연로해 보이기는 하지만 조금 전 위에서 보았던 루벤스의 그림을 이해하고 난 후라 우리는 분명 이 그림을 감상하기 위한 지적 호기심이 더 생겨났을 것이다.

<패리스의 심판> 요아킴 브테바엘(1556년~1638), 네덜란드, 1615년 , 오크 패널에 유채, 59.8 x 79.2 cm , 런던 내셔널갤러리


내친김에 아래 그림들까지 쭈욱 감상해보자. 세 명이 여신들이 가지고 있는 지물들을 보고 누가 헤라인지 아테나인지 아프로디테인지 구분해보자. 금사과를 들고 있는 패리스와 곧 어떤 일이 생길지 추측해보자.


패리스의 심판에는 세 여신의 누드가 등장한다는 점 때문에 중세시대 미술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15세기 이후에는 양상이 달라져 미술가들이 매우 선호하는 신화 주제가 되었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위한 안전한 장치인 '여신'이 주인공이고 화가들에 따라 신화의 개요만 이용하거나, 당대의 현실에 입각해 재해석하기도 했다.  


hendrik van balen the elder, 1599, Oil on canvas, 1599, Staatliche Museen, Berlin
Enrique Simonet  1904, Oil on canvas, 215 x 331 cm


우리가 기독교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서양미술을 이해할 수 없듯, 그리스 로마 신화 또한 서양미술의 근간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신화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그림을 감상하기 위한 지적 토대가 탄탄해질것이다.


물론 미술감상의 출발점은 그림의 시각적, 조형적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그림의 내용이나 주제를 이해할 수 있으면 그림의 시각적, 조형적 아름다움은 객관적 평가에서 주관적 평가의 대상으로 다가오게 된다.

시각적으로 무작정 끌리는 그림도 있지만 내용이 흥미롭고 나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내용을 주제로 삼고 있어서 더 관심이 가는 그림도 있을것이다. 이 글은 그런 지적 호기심의 자극을 위해 썼다.




그림이든 조각이든 사과를 들고 있다면 이는 아프로디테(비너스)고, 공작새가 함께 등장한다면 이는 헤라(유노), 투구와 방패와 함께 등장한다면 이는 아테네(미네르바)라고 일단 생각하자. 물론 그 외 다양한 지물들이 존재한다.


위의 그림 중 hendrik van balen의 그림에 등장하는 아테네의 왼발 옆엔 부엉이가 그려져 있다. 아테네는 황혼 녘에 산책을 할 때 꼭 부엉이를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이후 철학자 헤겔은 그의 책 <법철학>에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녘에 날아오른다”는 말을 쓴 이후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철학을 상징하는 말로 쓰인다. 어떤 현상을 보고 결론을 지을 때 하루 종일 관찰한 후 황혼 녘에 가서야 지혜로운 평가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요즘엔 오랜 시행착오 끝에 갖게 된 지혜의 가치를 역설할 때에 쓰이기도 한다.


그림 하나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그림 뒤에 숨겨진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은 내가 어릴 적 하염없이 매료되었던 '미하엘 엔데'의 소설을 읽는 것과 같은 짜릿함과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림을 감상한다는 것은 세상을 읽는다는 것이고, 세상을 읽는다는 것은 내 삶에 대한 깊은 사랑과 존경을 표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밤이다.





빨리-많이-대충 에서 천천히-깊게-대화하는 여행을 만들어주는... 그림 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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