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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May 18. 2018

세계의 명화를 탄생시킨 물감들(2)

돼지 방광에 담은 유채와 튜브 물감

1984년에 개봉한 영화 아마데우스는 모차르트의 일생을 다룬 영화지만 주인공 못지않은 존재감으로 세상에 자신을 알린 이가 있었으니 바로 살리에리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면 영화는 다분히 왜곡된 부분이 있지만 어쨌든 살리에리는 '천재성을 가진 주변의 뛰어난 인물로 인해 질투와 시기, 열등감을 느끼는 증상'인 '살리에리 증후군'의 모티프가 된 인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그러나 살리에리보다 300년이나 앞서 살리에리 증후군으로 고통을 겪다 요절한 화가가 있었는데 벨기에 출신의 휘호 판 데르 후스(Hugo van der Goes,1440~1482)다.


일찍이 천재성을 인정받은 그는 20대 후반 무렵 화가로서 정점에 이르렀을 때 돌연 수도원의 평수사로 입회한다. 수도생활을 하던 휘호 판 데르 후스는 극심한 우울증과 빈번한 자살시도로 고통받았는데 남아있는 수도원의 기록을 보면 그의 우울증은 자신보다 두 세대 정도나 앞서 살았던 화가인 반 에이크 형제(Van Eycks)를 결코 넘어설 수 없다는 좌절감에 기인한 것이었다고 한다.


천재로 불리던 휘호 판 데르 후스, 그가 롤모델로 삼았던, 그러나 결코 넘어설 수 없다고 생각했던 화가가 바로 <아르놀피니의 결혼>을 그린 얀 반 에이크다. 얀 반 에이크는 유화 기법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지만 안료에 기름(린시드 오일=아마유)을 섞어 쓰는 기법은 그 이전부터 있었고, 그는 유화 기법으로 도달할 수 있는 완벽한 그림을 처음으로 보여준 화가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유화 기법 이전의 프레스코와 템페라에 관한 지난 글 참조 : https://brunch.co.kr/@insightraveler/13


프레스코나 템페라에 비해 유채는 색의 옅고 진함, 광택의 유무, 투명한 효과를 쉽게 낼 수 있고, 두껍게 바르거나 엷게 칠함으로 화면의 다양한 재질감 표현이 가능하며 마르는데 시간이 오래걸려 얼마든지 수정이 가능했다. 게다가 마른 후에도 색상의 변화가 없기 때문에 다른 기법의 추종을 불허했다.

좌: 카라바조의 <도마뱀에 물린 소년> (1595~1600) 일부      우: 앵그르의 <브로이 공주의 초상> (1853) 일부

이후 유화물감이 활발하게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화가들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화풍을 구축해간다.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고 17세기 루벤스와 렘브란트 시대를 거치면서 기법의 발전이 거듭되다가 19세기에 이르러 물감은 또 한 번의 혁신을 하게 된다. 이른바 인상주의의 탄생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게 되는 변화다.

사실 이전까지의 화가들은 풍경화를 그리더라도 밖에서 스케치를 한 후 스튜디오에 들어와 채색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네덜란드의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1632)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요하네스 베르메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화 속에는 당시 화가들이 물감을 만들어 쓰던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스토리를 다룬 영화 '귀걸이를 한 소녀'  콜린 퍼스와 스칼렛 요한슨의 조합이라니! 두번 감탄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 만들어 써야 하는 물감이었기 때문에 실외에 나가서 스케치라도 하려면 이것을 보관해야 했는데, 당시 화가들이 물감을 담는 용기로 사용했던 것은 다름 아닌 '돼지 방광'이었다. 예전 시골아이들이 공놀이 할 공이 없어 돼지 방광에 바람을 넣어 대신 사용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화가들에게도 돼지 방광은 쓸모 있는 물건이었다. 돼지 방광에 담긴 물감을 쓰기 위해선 뾰족한 것으로 짜내어 쓰고 그 구멍을 다시 막아 놓아야 했지만 굳어 버리기 일쑤였고 터져버리는 일도 있어 지속적인 보관 용기로 적절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귀찮았던 미국의 화가 존 랜드는 1841년 물감 보관의 획기적인 방법을 찾아내는데, 바로 주석으로 만든 튜브에 물감을 담는 것이다.


좌: 돼지 방광에 담은 물감(사진:Hyperallergic.com)  중: 존컨스터블의 돼지방광에 담은 물감 통(1837)(사진:Tate미술관)  우: 존 랜드의 물감 튜브 


튜브 물감은 특히 19세기 프랑스의 젊은 화가들에게 큰 환영을 받았다. 그들은 스튜디오가 아닌 바깥 풍경에 매료된 화가들이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햇빛과 그 빛에 의해 다르게 보이는 순간의 느낌을 표현하고자 했던 그들은 튜브 물감을 들고 때마침 등장한 증기기관차를 타고 가보지 못했던 많은 곳을 다니며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바로 인상주의 화가들의 탄생이었다.  


르느아르는 이렇게 말했다.


"튜브 물감이 없었으면 세잔도, 모네도, 피사로도, 인상주의도 없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그림이라면 아마도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일 것이다. 그들을 있게 한 튜브 물감! 튜브 물감은 돼지 방광에 담은 물감의 불편함에서 나왔고, 돼지 방관에 물감을 넣어 보관할 수 있었던 것은 안료에 기름을 섞기 시작하면서 였다. 안료에 기름을 섞는 방법은 계란 노른자나 꿀을 섞어 썼을 때 겪었던 불편함 때문이었을 거고, 계란 노른자를 섞어 쓰는 방법은 회반죽에 그림을 그리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였을지 모른다.


우리가 어떤 위대한 걸작품을 보며 감탄할 때, 그 그림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수많은 우연과 필연의 순간들까지 함께 떠 올릴 수 있다면(심지어 방광을 제공해 준 돼지 마저도) 그 그림이 주는 감동이 더 커지지 않을까?



빨리-많이-대충 에서 천천히-깊게-대화하는 여행을 만들어주는... 그림 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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