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수정 May 17. 2018

세계의 명화를 탄생시킨 물감들(1)

프레스코와 템페라 그리고 유채

몇 년 전 이야기다. 독일의 아웃도어 브랜드의 한국 수입사인 L사의 담당 부장이 독일 본사에 한국시장은 매년 20% 이상씩 성장하니 그만큼 물량을 더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본사에서는 매년 20%의 성장이라니 못 믿겠다면서 거절했는데, 팔리지도 않을 물량을 시장에 풀면 브랜드 이미지만 나빠진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담당 부장의 설득으로 본사의 최고 판매책임자와 최고 운영책임자가 한국을 방문했고 담당 부장은 그들을 아무 말 없이 서울 청계산으로 데려갔다. 일요일 오전, 청계산 입구에 서있던 본사 임원은 두 말없이 물량 증대 요청을 수락했다고 한다.


동네 뒷산 올라가는데 에베레스트 등정 복장을 하는 한국인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시선도 있지만 아무리 뒷산이라도 흐르는 땀 때문에 바지와 티셔츠가 맨 살에 쩍쩍 달라붙는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하게 되면 하산길에 늘어선 등산 전문샵을 그냥 지나치긴 어렵다. 이렇듯 아마추어들에게도 장비가 중요한데, 전문가에게 적합한 좋은 장비는 더 나은 퍼포먼스를 창출하는 중요한 요소임엔 틀림없다.


오랜 시간 동안 화가들도 자신들이 더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그들의 도구와 재료들을 끊임없이 연구해왔다. 역사에 명작으로 남아있는 그림들의 도구와 재료를 살펴보는 일은 그들의 위대함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물감이란 것이 대량 생산되기 전 화가들은 색채의 원료가 되는 광물이나 식물들을 직접 갈아서 안료를 만들고 그 안료를 화면에 고착시키는 용매에 섞어 물감으로 사용했다.


베를린 신 국립 미술관에 네델란드 회화관이 열려 있었다. 자원봉사자인 네델란드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독일에 사는 네델란드 사람이 하는 영어를 알아 듣기란...


그런데 혹 이쯤에서 이런 생각을 할 수 도 있다.


"서양화라면 연필이나 펜으로 그린 스케치를 제외하고 전부 유화 아니야?"


그러나 어떤 용매를 썼느냐에 따라 그림의 종류가 달라진다. 아래의 네 그림은 각각 안료를 고착시키는 용매와 그림의 지지체를 다르게 사용했다.


왼쪽 위 부터 시계 방향으로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얀 반 아이크의 아르놀피니의 결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좌측 상단의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1510)은 벽면에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려졌고, 우측 상단의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1485년경)은 캔버스 위에 템페라로 그려졌다.

좌측 하단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1495~1497)은 벽면에 템페라와 유채로 그려졌으며, 우측 하단의 얀 반 에이크가 그린 아르놀피니의 결혼(1434)은 나무판 위에 유채로 그려졌다. (유채로 그린 그림을 유화라고 한다.)


먼저 프레스코 기법에 대해 알아보자. 프레스코는 주로 벽화를 그릴 때 사용되었는데, 벽에 회반죽을 바르고 그것이 마르기 전에 물에 갠 안료로 그림을 그린다. 프레스코(fresco)는 신선(fresh)하다는 의미의 이탈리어말로 마르지 않은 신선한 회반죽 위에 스며든 안료가 회반죽이 마르면서 함께 굳어지게 되므로 완성된 표면이 견고해진다. 그러나 회반죽이 마르기 전에 색을 칠해야 하고, 굳은 안료 위엔 수정 작업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숙련된 작업자만이 할 수 있었다.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은 교황의 개인 서재로 사용된 바티칸 궁전의 '서명의 방'을 장식한 네 면의 벽화 중 하나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과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도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려졌다.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내었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30미터 높이의 천정밑에 세운 작업대에 앉아 조금씩 회반죽을 바르고 천정을 향해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물감을 칠해나가는 고된 작업으로 목과 눈에 이상이 생겼고 긴 시간 그림을 그리다 아래로 내려오면 발과 신발이 붙어버려 칼로 신발을 잘라내야 했다고 한다. 이런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미켈란젤로는 혼자서 4년 만에 이 대작을 완성하였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눈물이 난다.


벽화는 주로 교회나 귀족들처럼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주문했다. 벽화가 아닌 경우라면 구하기 쉬운 나무판 위에 그림을 그렸는데 나무의 표면에 안료를 정착시키기 위해 아교를 사용해야 했고 이 과정 중 안료와 아교를 섞기 위해 달걀의 노른자를 사용했는데 이것을 템페라라고 한다. 노른자 외에도 벌꿀이나 무화과 즙이 사용되기도 했지만 가장 빠르게 마르는 달걀노른자가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템페라는 상대적으로 프레스코화보다 건조가 더뎠기 때문에 덧칠하거나 수정하는 것이 가능했다. 변질되거나 갈라지지도 않고 빛을 거의 굴절시키지 않아 맑고 생생한 색을 낼 수 있다. 그러나 붓의 움직임이 원활하지 못해 자연스러운 효과와 명함, 톤의 미묘한 변화를 내기는 어려웠다.


템페라로 그려진 <비너스의 탄생> 비너스의 모델은 당시 피렌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꼽히던 시모네타로 전해지고 있다.


프레스코화와 템페라는 각각이 가진 속성으로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역사상 가장 호기심 많은 화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회반죽의 벽에 템페라와 유채를 사용해 그림을 그렸다. 바로 이탈리아 밀라노의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의 벽화 <최후의 만찬>이다.


앞서 말한 프레스코 기법은 회반죽이 마름과 동시에 그 표면에 스며든 안료도 견고하게 굳어가 시간이 지나도 비교적 잘 견디는 반면, 회반죽 위의 계란 섞은 안료는 벽면 깊숙이 스며들지 못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표면이 떨어져 나가 버리는 등 안료의 박리현상이 심했다. 다빈치는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 그 훼손 과정을 지켜보아야 했다고 한다. 결국 손상이 심해진 <최후의 만찬>은 20년에 걸친 복구과정을 거쳐야 했고 1999년이 되어서야 한 번에 25명에게 15분간의 관람 기회가 주어지는 보기 힘든 작품이 되었다. 이런 경험 때문이었을까? 이후 회화의 수준을 드라마틱하게 발전시키는 유화물감이 도입되며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유화물감으로 스푸마토 기법을 창시해내며 세기의 걸작 <모나리자>를 탄생시킨다. 이에 반해 미켈란젤로는 유화물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음 편에 계속>



빨리-많이-대충 에서 천천히-깊게-대화하는 여행을 만들어주는... 그림 보는  법

매거진의 이전글 시간이란 약을 드실 시간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