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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Mar 03. 2019

보물찾기에 비법이 있을까?

삶이라는 소풍에서 보물을 찾는다는 것

초등학교 6년 내내 같은 곳으로 소풍을 갔었다. 학교에서 4km 떨어진 놀이공원이었는데, 전교생이 줄을 맞춰 걸어서 이동을 했다. 지금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1시간 남짓한 그 거리를 한 반에 70명씩 10개 정도의 반이 움직였으니 웬만한 군대 행렬과 비슷했던 것 같다. 


그 당시 소풍은 아이들이 1년 내내 기다리는 중요 행사였고, 소풍날이 다가오면 반마다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아이들로 방과 후의 학교는 떠들썩했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 반별로 진행되는 장기자랑 시간은 매 년 새로운 학교 스타들을 발굴했고, 삼삼 오오 모여 도시락을 먹는 시간은 은연중에 엄마들의 요리 솜씨 콘테스트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소풍의 하이라이트는 '보물찾기'


점심을 먹고, 각 반의 장기자랑이 끝나면 전교생들은 선생님들이 곳곳에 숨겨놓은 보물 쪽지들을 찾기위해 분주해진다. 나무 가지를 흔들어 보고, 이곳 저곳 커다란 돌들을 들추어 보기도 하다가 어딘가에서 “찾았다!”하는 외침이 들려오면 주변의 친구들은 우르르 몰려가 쪽지에 적힌 상품 목록을 함께 확인했고, 쪽지를 찾아든 친구는 개선장군처럼 선물을 받으러 선생님께 달려가곤 했다. 


선물이라고 해봤자 노트, 연필, 필통, 지우개 등이 전무였지만 우리는 무엇보다도 보물 찾기에 대한 설렘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걔중엔 보물 찾기에 발군의 기술을 발휘하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쪽지를 한 개도 찾지 못한 아이들은 비법이라도 전수받으려는듯 자기의 간식을 나누어주며 그 친구들을 쫓아다니곤 했다. 


나도 보물이 적힌 쪽지를 하나도 찾지 못하는 대부분의 아이들 중 한 명이었는데, 지금도 웬만한 경품행사나 러키 드로우 등에서 행운을 잡아본 적이 없다. 


그때 가장 많은 보물을 찾았던 친구가 했던 말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쪽지가 숨어있는 곳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자신도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숨기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여서 그 당시 내겐 별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난 통찰을 가진 친구였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천상병 시인은 “귀천”이란 시에서 삶을 소풍이라 표현했다.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시인의 말에 동감한다면 우리는 삶이라는 소풍 안에서 보물찾기라는 즐거움을 만끽해야 한다. 내 삶 속 여기저기에 숨겨진 보물들을 찾아내는 모든 과정이 인생일 테니 말이다. 예전엔 보물인 줄 몰랐으나 어느 순간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보물로 우리를 설레게 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처음으로 가족 캠핑을 가서 만났던 비바람과 아이가 자라는 매 순간을 기록했던 벽의 자잘한 눈금들, 노랗게 바래진 인화지의 사진들과 30년 지기 친구들이 서로에게 '넌 정말 그대로다'라고 해주는 예쁜 거짓말들 그리고 인상을 선하게 만들어주는 부모님의 눈가 주름들이야 말로 우리의 소풍을 멋지게 만들어주는 보물들 아니던가?


부디 내가 내 삶의 마디마디와 구석구석을 잘 살펴보기를! 찾아놓은 쪽지가 보물인줄 모르고 버리는 일이 없기를! 어린 시절 보물 찾기의 상품이었던 노트, 지우개, 연필처럼 우리 인생의 보물이 작고 보잘껏 없는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말을 기억하기를! 


그래서 나도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내 삶이 충분히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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