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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Mar 12. 2019

도망가는 게 능사는 아니야

두려움은 마주하는 순간 몸집을 줄인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사는 것이 쉬운가?


아니다. 어렵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산다는 것은 어려움의 연속이다. '고행'이야말로 삶의 디폴트 옵션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이 삶의 목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애써서 노력하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다. 자신과 투쟁해서 얻어내는 전리품이 바로 행복이다. 행복을 거창하게 생각해서 그렇다고? 과연 그럴까?


'행복하기로 마음먹을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라고 링컨이 말했단다. 그런데 세상에 행복하지 않은데 행복하기로 마음먹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행복은 거창한데 있지 않고 사소한데 있다고 하는데, 그 사소한 것에서 진정한 행복을 발견하는 일은 얼마나 더 어려운가? 아무리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욕심을 내려놓기로 해도 쉽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수없이 많은 시도와 실패를 통해 알게 되었다.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찾아 나섰던 행복의 파랑새가 사실은 자기네 집 새장 안에 있었다고 해도, 도로시가 자신의 고향 캔자스로 돌아가기 위해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가지만 사실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자신이 모험 내내 신고 있었던 구두의 뒤 축을 두 번 탕탕 부딪히는 것이었다는 것도 결국은 모든 과정을 겪은 후에나 알게 되었듯, 우리가 행복이란 전리품을 얻는다는 것은 꽤나 치열한 삶의 전투를 치룬 후에나 가능한 것이다. 그게 내면의 갈등이건 관계에서의 대립이건 물리적인 싸움이건 간에.


그러니 그 과정 중에 만나게 되는 문제적 순간들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하는지를 바라보는 일은 꽤 중요하다.


가장 쉬운 방법은 회피하는 것이다. 문제로부터 도망가는 것. 내가 자주 사용했던 방법이다.


흔히 손자병법의 한 계로 알려진 '삼십육계 줄행랑'은 사실 손자병법에 들어있지 않은 이야기지만, 모든 병법을 다 써 본 후에도 안되면 도망가라는 가르침으로 우리들은 알고 있다. 그러나 문제로부터 도망가는 방어기제를 가진 사람은 맞서 싸우는 과정을 생략하고 도망가는 것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나의 도망가기 병법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내 기억으론 내가 대여섯 살 때쯤이었을 거다. 무언가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깼다. 안방에서 들려오는 엄마와 아빠의 소리였다. 아빠의 격앙되고 공격적인 소리와 엄마의 날카로운 소리는 모서리가 무언가에 부딪혀 군데군데 파여있던 빨간 자개 화장대와 함께 나의 마음 깊은 곳에 문신처럼 새겨졌다. 분명 나는 귀를 막고 이불속에 숨어있었지만, 이불도, 귀를 막은 손도 나를 보호하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내가 이불속에 숨어있을 때 두 살 아래 동생은 엄마 아빠한테 다가가 울음을 터뜨리곤 했는데, 중년의 나이가 된 지금도 동생은 문제에 부딪히는 스타일을, 나는 도망가는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나도 안다. 도망가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도망갈수록 흐릿한 유령처럼 나를 짓누르는 삶의 중압감은 가까이 다가가 눈을 크게 뜨고 대들면 부풀리고 있던 몸집을 실제만 한 크기로 줄인다는 것을.


그동안 도망 다녔던 삶의 문제들을 마주하게 된 나이가 오십. 신달자 작가는 나이 마흔이 되어서야 인생의 걸음마를 배웠다고 고백했지만 나는 나이 오십이 되어서야 내가 겪고 있는 삶의 문제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후배 한 명이 남편과의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꽤 먼 곳으로 가서 방을 얻어 살며 카톡으로 이혼하자는 메시지를 전해왔다고 했다. 후배의 문자와 전화를 피하는 그 남자는 고3짜리 딸이 생활비의 부족으로 학원마저 그만둔 사실을 모른 채 하고 있다고 했다. 가정주부로 살며 남편과 딸의 뒷바라지만을 해온 20년만큼 아픔의 강도가 클 것 같아 가끔 문자로 안부를 묻곤 하는데, 오늘 대화의 말미에 보내온 문장이 나를 아프게 했다.


"여기저기 힘든데 영혼이 갈 곳이 없어요"


문제를 회피하며 연락조차 안 되는 후배 신랑을 향해 우리는 의기투합해서 욕을 퍼부었다.

그리고 내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니 신랑 말이야! 어쨌든 연락되는 데로 도망가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 따끔하게 이야기해줘"


전송 버튼을 누르고 나니 내가 나에게 하는 이야기 같아 카톡에 '1'이 없어지기도 전에 내가 먼저 뜨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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