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수정 Mar 28. 2019

1일 1 글을 하고 있습니다.

나름대로의 배수진

1일 1 글! 


하루에 글 한 편씩을 쓰겠노라고 호기롭게 출사표를 던졌다. 그것도 페이스북에.

SNS를 잘하지 않는 탓에, 좋아요 눌러주는 사람은 많아야 10명남짓, 그나마 몇몇 친구들이 상냥하게 응원 댓글을 달아주는 덕분에 이틀에 한 번 꼴로는 무플의 부끄러움을 면하곤 한다.


요즘 같이 빠른 템포로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누가 나의 이 장황하고도 사소한 이야기를 읽어 볼까 싶지만, 가끔 어떤 글들은 운 좋게 포털의 어딘가에 실려 하루에 4만 회가 조회되기도 한다. 부끄럽고 조심스럽지만 사실 기쁜 마음이 더 크다.


글을 잘 쓰려면 일단 잘 써야 한다고 수 없이 많은 작가들이 이야기한다. 앞의 '잘'은 수준이 높다는 의미고 뒤의 '잘'은 자주라는 의미다. 고수들의 충고니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실 내가 바라는 것은 뒤의 '잘'을 대충 하면서 앞의 '잘'을 얻고 싶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도둑놈 심보다. 그런 마음을 갖고 있으니 오래전부터 숙원 사업이던 '내 분야의 책 한 권'은 언감생심! 그래서 모질게 맘먹고 하루에 글 한편을 쓰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자주의 '잘'이 수준 높은 '잘'로 자연스럽게 변화하리라는 철석같은 믿음을 마음과 손에 장착했다. 그런데 사실 그 일이 쉽지 않다. 어떤 날은 글이 안 써져서 어렵기도 하고, 어떤 날은 정말 시간을 낼 수 없어서 어렵기도 하다. 그럴 때마다 에효.. 내가 왜 선언을 해가지고... 고생을 사서 한담? 하며 스스로를 타박한다.


사실 이번 선언이 세 번째다. 두 번의 1일 1 글은 매번 50회 정도를 전후로 해서 막을 내렸다. 딱히 며칠 동안 1일 1 글을 하겠다고 정해놓은 것은 없지만, 그저 내 마음속에선 100회 정도를 목표로 하고 있는 듯하다. 100일 동안 1일 1 글의 약속을 지키면 나 스스로를 기특하다고 칭찬해 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 정도면 글 쓰는 일이 습관이 될 것 같기도 해서다.


오늘로 세 번째 시도의 1일 1 글이 42일째다. 이렇게 숫자를 붙여놓고 보니 어느새 42일이 지났구나 하며 세월의 쏜살같음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1일 1 글을 하며 바뀐 점은 내 삶을 조금 더 따뜻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글감은 거창한데 있지 않고 사소한 내 삶의 군데군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 전 엄마와의 이야기를 담은 글이 하루에 조회수 4만을 찍으며 그동안 써왔던 글의 랭킹 중 2위로 올라갔다. 엄마에게 그 글을 보내었더니 '그런 사소한 일들도 글감이 되는구나'하시며 신기해했다. 글의 랭킹을 보니 대부분 나의 가족이나 내 삶의 소소한 일들을 써놓은 글들이 상위를 마크하고 있었다.


정말 고통스럽게 자료를 찾고 글을 쓰는 '미술'에 관한 글은 아무래도 읽는 층이 한정되어 있는듯 하다. 





매일매일 쓰는 일이 어떨 땐 벅차고, 어떨 땐 무시하고 넘어가고 싶지만, 여태껏 어떤 것 하나도 마음에 쏙 들게 이루어본 것이 없기에 이번 이 프로젝트만큼은 100회라는 나름의 목표에 도달하고 싶다. 

사실 이 글을 쓰는 것도 의도적인 배수진이다. 


'의지에만 의지하면 실패'한다는 것을 알기에 나의 목표를 '시스템'속에 담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특히 브런치를 하면서 고마운 친구들이 있다. 


글을 올리자마자 늘 제일 먼저 라이킷과 댓글을 달아주는 고마운 후배 '가을남자' 내 글의 푸시를 꺼놓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일 거라 생각하며 나중에 가시 없는 생선 회 한 접시 사줘야 겠다. 


또 저 멀리 포항에 사는 친구 '초리' 내 글을 읽어주고, 재미있어해 주고, 정말이지 긴 댓글을 달아주고, 그게 얼마나 큰 원동력이 되는지 알까 모르겠다. 


또 내 글을 공유해주고, 대단하다고 끊임없이 격려해주는 동생 '진이' 네가 링크 걸어줄 때마다 조회수가 팍팍 올라가더라. SNS는 너처럼 해야 하는데, 나는 이기적인 성경이라 누구한테 먼저 다가가 좋아요 누르는 일이 어렵다. 그래서 더 고맙다.


그리고 오늘 이 글을 쓰게 해 준 스웨덴의 '로사' 오늘 아침에 문득 '언니 근데 왜 꼭 1일 1 글 이어야 해요? 정말 궁금해서 물어봐요' 댓글을 남겨 놓았기에 오늘의 글감을 찾을 수 있었다. 댓글로 이유를 간단히 적어 놓았더니무조건 내가 하는 일은 응원한단다. 그만 울컥했다. 우리의 삶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해주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런 면에서 난 행운아다.


보잘것없는 내 글을 대단하다고 치켜세워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 좋아요 눌러주시는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애교라고는 1도 없는 내가 어느 날 큰 맘먹고 '뿌잉뿌잉'투로 누가 내 머리 좀 쓰다듬어 주면 좋겠다고 페북에 올렸더니 기꺼이 '쓰담 쓰담'해주신 분들! 특별히 더 고맙다. 


마지막으로 내 아들, 동동이. 아들이라는 특별한 인연으로 세상에 태어나 준 동동이 덕분에 길을 잃을 때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동동이가 툭툭 던져준 말들은 어느새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준 존재다. 동동이의 '고등어와 갈치 철학'은 나에게도 큰 감명을 주었다. 



1일 1 글을 쓰면서 말라버렸던 마음에 '감사함'이 조금씩 고이고 있다. 매일 그 감사함을 길어 올려 글을 쓰자. 퍼낼수록 풍요로운 우물이 되리라. 



<사족>

울 아들 이름의 첫 자 '東'을 두 번 연속해서 부르는 애칭이 동동이다. 그리고 내 동생 집에서 기르던 유기견을 데려와서 키우고 있는데 그 아이 이름은 '아리'다. 

동동이와 아린 아따맘마의 아들, 딸이다. 그래서 나는 얼떨결에 '아따맘마'가 되었다.

왼쪽부터 아리, 아빠, 아따맘마, 동동이









매거진의 이전글 천국에선 거짓말하지 말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