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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May 19. 2018

거짓말의 발명

빅브라더 앞에 당당한 모든 이를 위한 경배

아들이 막 글을 깨우치면서 동화 <피노키오>를 읽었다.

어느 날 아랫집 아이와 함께 놀고 난 후 장난감을 정리하지 않고 있길래 

“다 놀고 나면 장난감은 스스로 치우기로 약속했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더니

"엄마. 이거 내가 그런 게 아니라 아랫집 OO이가 그런 거야"라고 대꾸한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구실을 만들어내는구나라는 생각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어머, 어떡해... 너 지금 코가 조금씩 길어지고 있는 것 같아. 피노키오처럼… 어쩜 좋니?”


나의 다소 과장된 호들갑에 아들은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그만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마터면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짐짓 엄한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거짓말이 필요한 나이가 되었구나!




중세 신학자 토머스 아퀴나스는 인간세상의 거짓말을 목적에 따라 악의적인 거짓말, 선의의 거짓말, 유용한 거짓말로 나누었다. 악의적인 거짓말이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 선의의 거짓말은 상대의 이익이 당사자보다 더 큰 것, 즉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여 그를 기쁘게 하거나 걱정과 근심을 덜어주기 위해 하는 말들이다. 유용한 거짓말이란 서로에게 손해가 되지 않으며 상황을 유용하게 넘기려는 의도에서 나온 거짓말이다.

이런 구분이 아니더라도 거짓말의 종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고 정교하다. 결과적으로 상대를 깎아내리거나 피해를 준다면 그것은 나쁜 거짓말이 될 것이고, 다른 사람을 돕는 결과라면 선의의 거짓말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선의의 거짓말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필요악’(언제부터 거짓말은 '악'의 편에 선 개념이 되었을까?)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2009년 리키 저베이스와 매슈 로빈슨이 연출한 코미디 영화 ‘거짓말의 발명’의 초반부에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거짓말이 없는 세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거짓말이 빠진 TV광고, 과장된 스토리가 없는 영화, 데이트하는 남녀의 대화는 100% 진심이다. 

                                                                                                                         

영화 <거짓말의 발명> 중; 거짓말이 없는 세상의 펩시콜라 광고 "펩시-코카콜라가 다 떨어졌을 때"



 "지금 이렇게 당신과 밥을 먹고 있어도 저는 토할 것 같아요. 저는 당신과 결혼도 하지 않을 거예요. 왜냐면 2세도 분명 당신처럼 엄청 못생겼을 거 아니에요?"  그녀의 진심이다.

                                                                                                          

첫 데이트에서 이런 말을 듣게 된 주인공 마크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회사에서 해고를 당한다. 그녀를 붙잡을 수 있는 기회는 더 멀리 날아가 버린 것 같다. 은행 잔고는 300달러가 전부니 더 이상 월급을 받지 못하면 아파트에서도 쫓겨날 판이다. 어쩔 수 없이 더 싼 집으로 이사를 가야만 하는 마크는 남은 잔고를 모두 찾기 위해 은행에 간다. 마침 전산 시스템이 다운되어 창구의 직원은 컴퓨터로 잔고를 확인할 수 없게 되자 마크에게 묻는다. 


 “선생님 잔고가 얼마 남아 있으시죠?” 


잠시 머뭇머뭇하던 마크는 자신도 모르게 800달러라고 말한다. 바로 그때 은행 시스템이 복원되었고, 마크의 계좌를 조회한 직원은 잔고가 300달러밖에 남지 않았음을 확인했지만, 거짓말이란 것이 없는 세상이었기에 이를 기계의 에러라고 생각하고 마크에게 800달러를 내어 준다. 얼떨결에 한 거짓말이지만 그로 인해 마크는 세상에서 점점 더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간다. 더불어 그의 거짓말 능력은 빠르게 발전한다.


거짓말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 유일하게 거짓말하는 능력을 가진 마크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거짓말은 그 자체로 부정적인가? 인간은 어떤 이유로 거짓말을 만들어 냈을까? 선의의 거짓말이 악으로 변화되는 시점은 어디인가?


확인되지 않은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SNS를 통해 퍼져나가고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거짓말이 '뉴스'라는 가면을 쓰고 집단과 집단을 분열시키는 시대. 거짓이 권력의 가면을 쓰고 행해질 경우 그 영향력의 파워는 걷잡을 수 없음을 이미 오래전 조지 오웰은 경고했다. 


그의 소설 <1984>에서 국가의 공식 선전기관인 ‘진리부’는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이라든가, 둘 더하기 둘은 다섯이라는 가짜 지식을 주창한다. 그리고 가짜 지식을 심기 위해 기존 언어 대신 ‘신조어’를 만든다. 1945년에 써진 소설은 1984년의 모습을 상상한 것이 아니라 어쩜 지금의 모습까지도 정확하게 예측한 것 같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 참여 인원이 역대 최대라는 발표는 명백한 거짓이었음에도 켈리앤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은 그것을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이란말로 표현했다. 소설 속 '진리부'가 만들어낸 '신조어'의 '현실편'을 보고 있는 듯했다. 

신경 과학자이자 인지 심리학자인 대니얼 J. 레비틴 박사는 거짓말이 사회,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되고 그것을 다수가 의심 없이 확신할 때 그 거짓말은 말이 아닌 무기가 된다고 경고한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얻은 정보일수록 검증에 시간을 투자하라고 조언한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복사하기+붙여 넣기로 옮겨놓은 수많은 정보들이 오타마 저도 그대로 카피되어 퍼져나간다. 옵션 열기처럼

IT강국이라 불리는 대한민국, 그 위상에 걸맞게(?)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들, 그 안에서 정보를 검증하는 수고는 결국 국민 개인의 몫이 되어버렸다. 거짓말을 신조어라는 말로 포장해 우리를 감시하고 조종하는 빅 브라더 앞에 무릎 꿇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든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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