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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May 14. 2018

내 선택을 사랑한다는 것

확신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개인적으로 인간관계를 넓게 맺는 편이 아니어서 친구가 많지는 않다. 지금도 동창회 같은 데는 나가본 적이 없다. 오래도록 만나온 친구들을 만나는 편이 편하고 좋다. 물론 새로 사귀는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번 만난 사람들 모두를 핸드폰에 저장해놓고 인맥관리란 이름으로 단체 문자 발송 같은 건 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면 각자 그들 주변의 새소식 들을 나눌 때가 있다. 주로 건너 건너 친구들의 이야기다.


"너 아무개 알지? 단발머리에 마르고 키컸던..." 

"아~ 알지! 말이 너무 없어서 친해질 기회가 별로 없었어" 

"걔 말이야 암에 걸렸다더라" 

"정말? 어떻게 해... 심한 상태래?" 

"아니 그것까진 잘 모르겠어" 

가끔은 날벼락같은 소식이 들려오기도 하고, 


"너 5반 반장 기억나? 아빠가 판사였던" 

"당연히 알지, 나랑 친했는데" 

"걔 신랑도 판사라더라, 지 아빠가 소개하여줬데" 

"아이고 판사 사모님이야? 떵떵거리고 살겠네?" 

부러움인지 핀잔인지 모를 이야기도 오가고 


고등학교 때의 모습으로 전혀 상상할 수 없도록 변한 친구들의 이야기로 우리는 한참을 보낸다. 남편 잘 만나 좋겠다는 이야기, 학교 다닐 땐 공부도 못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사업가로 성공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이야기, 어릴 적엔 이쁜 줄 몰랐는데 지금은 너무 이뻐져서 알아볼 수 없다는 이야기며 매번 만날 때마다 우리는 했던 이야기 우려먹기는 물론, 새로운 소식까지 더불어 늘 만남의 시간이 모자라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가 오가고 나면 늘 마음에 남는 것은 아프거나 힘든 친구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소위 잘 나가고 있는 친구들의 이야기다. 자연스럽게 그들과 나를 비교하며 분명 학교 다닐 땐 내가 나았던 것 같은데 지금 내 모습은 뭐지?라는 일종의 자기비하다. 


일단 자기비하의 문을 열고 발을 내딛는 세상은 먹구름이 가득한 곳이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 게 사는데 나는 혼자 덩그러니 수렁에 빠져있는 것 같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내가 했던 그 선택은 과연 옳았던 것일까? 내가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야 지금 이런 불만족스러운 인생을 되잡을 수 있을까? 지나온 시간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은 스크 루찌가 그랬듯이 나를 지내온 시간을 부영 하게 하며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라고 강요한다. 결국 나는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워지고 내 삶이 정말 별 볼 일 없다는 것에 대해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게다가 중년에 들어서자 후회와 아쉬움뿐만이 아니라 초조함과 의구심까지 더해져 나의 자기비하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처절함의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좋아질 수 있을까? 돈을 벌 수 있을까? 성공할 수 있을까?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1998년 제작된 영화 '슬라이딩 도어즈'는 '선택'에 관한 영화다.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 헬렌(기네스 펠트로)은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다른 날에 비해 일찍 집으로 돌아간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던 헬렌은 플랫폼에 정차하고 있는 지하철을 잡아타기 위해 분주히 내려가지만 결국은 지하철을 놓치고 만다. 그러나 잠시 후 다른 한 명의 헬렌이 등장하고 문이 닫히는 지하철에 가까스로 올라타게 된다. 이후 2명의 헬렌이 동시에 스토리를 이어나간다. 관객의 입장으로 보면 두 명의 헬렌이 겪게 되는 일들은 단지 그것 자체만으로 좋은 상황인지 나쁜 상황인지를 판가름할 수 없었다. 그게 나았을 것 같다가도 또 아니었구나 하게 되고, 어쩜 저 선택이 나았겠구나 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도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결국 영화는 지하철에 올라탄 헬렌이 너무 일찍 집에 도착한 바람에 남자 친구의 불륜을 목격하게 되고,  그 지하철 옆자리의 남자를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며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진정한 사랑을 찾게 되는 결말이다. 지하철에 올라탄 것이 다행일 수 있지만, 이것은 남자 친구의 불륜을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되고, 남자 친구의 불륜을 알게 되는 것은 커다란 마음의 상처였지만, 이것이 진정한 사랑을 찾게 하는 계기가 되었듯 우리의 선택은 그 자체만으로 좋고 옳았던 선택인지, 잘못된 선택인지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다시 돌아가 어느 시점에서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 하는 질문에 달라졌을 수 있을 거야 라는 답을 할 수는 있지만, 지금보다 나아졌을 거야 라는 답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박웅현은 "책은 도끼다"에서  "옳은 선택은 없다. 선택을 옳게 만들어 나가는 과정만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 어떤 선택도 선택 자체만으로 최선의 것은 없다. 그 선택에 따르는  행동, 믿음, 관계 등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그리고 그 선택의 주도권을 결코 빼앗기지 말고 믿는 것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하나 더!  헬렌의 대사처럼 지난 선택에 대한 무한 사랑, 내가 아니면 내게 할 수 없는 내 선택을 사랑하는 일.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은 더 잘되기 위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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