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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Apr 08. 2019

밥벌이의 지겨움 中

<필사노트> '밥벌이의 지겨움" 김훈

전기밥통 속에서 밥이 익어 가는 그 평화롭고 비린 향기에 나는 한평생 목이 메었다. 
이 비애가 가족들을 한 울타리 안으로 불러 모으고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아 밥을 벌게 한다.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이것이 진저리 나는 밥이라는 것이다.
밥벌이도 힘들지만, 벌어놓은 밥을 넘기기도 그에 못지않게 힘들다. 

술이 덜 깬 아침에, 골은 깨어지고 속은 뒤집히는데 다시 거리로 나아가기 위해
김 나는 밥을 마주하고 있으면 밥의 슬픔은 절정을 이룬다. 
이것을 넘겨야 다시 이것을 벌 수가 있는데 속이 쓰려서 이것을 넘길 수가 없다. 
이것을 벌기 위하여 이것을 넘길 수가 없도록 몸을 부려야 한다면
대체 나는 왜 이것을 이토록 필사적으로 벌어야 하는가. 
그러니 이것을 어찌하면 좋은가. 대책이 없는 것이다. 

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싯바늘을 함께 삼킨다. 
그래서 아가미가 꿰어져서 밥 쪽으로 끌려간다. 
저쪽 물가에 낚싯대를 들고 앉아서 나를 건져 올리는 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 자가 바로 나다. 이러니 빼도 박도 못하고 오도가도 못한다. 
밥 쪽으로 끌려가야만 또 다시 밥을 벌 수가 있다.

<필사노트> '밥벌이의 지겨움"中  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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