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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Apr 09. 2019

허공 위의 성

스카이 캐슬과 마그리트의 피레네 성 

                                                                                    

 대한민국 최고 명문 사립대학의 초대 이사장이 서울 근교의 숲 속에 럭셔리한 타운하우스를 세웠다. 그 주택단지에는 그 사립 대학병원 의사들과 판·검사 출신의 로스쿨 교수 들이 모여 산다. 집안 대대로 부를 이어가며 대한민국의 상위 1%의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그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자식들의 성공! 



 금수저로 태어나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자세로 살아가는 한 남자는 아버지와 자신의 뒤를 이어 딸이 3대째 의사가 되기를 바라며 아이의 생일선물로 아이의 이름이 새겨진 의사 가운을 선물하고, 장인어른의 세 번째 정치계 입성을 돕다 실패해 차장검사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물러나 로스쿨 교수로 지내는 남자는 커다란 피라미드 조각을 거실 중앙에 세워놓고 자식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세상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오르는 것이 성공한 삶이고 그러기 위해 명문대를 가야만 한다고 채근한다.



쌍둥이 아들에게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오르는 것 만이 성공이라고 강요하는 아버지 (드라마 스카이캐슬)



 입시 스릴러라는 장르로 불리며 비지상파 드라마의 시청률 최정상에 올랐다는 드라마 ‘SKY 캐슬’의 이야기다. 기획단계에서의 제목은 프린세스 메이커였지만 등장인물들이 거주하는 고급 타운하우스의 이름인 ‘스카이 캐슬’로 바뀌었고, 최종단계에선 한글 스카이가 영문 SKY로 바뀌었다. 서울대, 연대, 고대를 일컫는 ‘SKY’의 중의적 의미를 담았다고 했다.




 그들은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은유하는 하늘 같은 곳에서 자신들만의 성 SKY캐슬을 쌓고 살아가고자 한다. 드라마는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우리의 감추어진 욕망을 파헤친다. “인생에서 중요한 건 우정·의리가 아니야. 니들 위치야. 피라미드 어디에 있느냐라고. 밑바닥에 있으면 짓눌리는 거고 정상에 있으면 누리는 거야.”라고 외치는 교수의 대사를 듣는 순간 적당히 감추어졌던 나의 속마음이 들통나듯 반박할 수 없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며 이 드라마의 인기가 하나의 사회현상으로까지 확대되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수십억의 입시 컨설턴트는 자신이 관리하는 아이의 전과목 100점을 위해 학교 시험문제를 빼돌리고, 친구의 죽음에도 슬퍼할 틈도 없이 중간고사 준비를 해야 하는 아이들, 억울한 누명으로 수감되어 있는 친구를 위해 탄원서를 받아주는 아이는 경쟁자가 줄었음에 기뻐해야 한다고 말하는 부모를 보며 허탈해한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대한민국의 부모라면 그 누구도 자식의 명문대 합격이라는 목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모 기자는 이 드라마의 성공 비결을 실패한 낙원을 탁월하게 묘사한 결과라고 했다. 닿을 수 없는 하늘에 있는 그들 만의 낙원.



 하늘에 떠있는 실패한 낙원은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피레네 성>을 떠올리게 한다. 초현실주의(surrealism, 超現實主義)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의 세계 내지는 꿈의 세계의 표현을 지향하는 20세기의 문학·예술사조다. 요새 모양의 성곽이 솟아 있는 육중한 바위는 거칠게 몰아치는 파도 위의 허공에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은 듯 둥둥 떠있다.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사물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기이한 환경에 놓음으로써 감각에 충격을 주는 '데페이즈망(dépaysement)'기법이다.


 4 식구가 사는 4층짜리 저택, 거실에 놓인 거대한 피라미드, 스터디 큐브라 불리는 1인용 독서실 부스, 아이들의 독서토론 책인 플라톤의 ‘국가론’과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공부방 한가운데 놓인 시계 초침 소리를 내는 메트로놈. 이런 일상적인 요소들은 드라마의 맥락 속에 놓이며 일종의 데페이즈망 효과를 낸다. 마치 초현실주의의 그림처럼.




 마그리트의 캔버스 속 초현실(超現実)의 세상처럼 그들이 사는 세상이 우리에게는 현실 너머의 세상처럼 느껴지지만 많은 사람들이 결코 허구가 아닌 팩트라고 말한다. 교육부 장관마저 "과도한 부분이 있지만 어쨌든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올해 고3이 되는 아들은 지난 1년간 매주 토요일마다 소논문 클러스터 과정에 참석하느라 주말을 만끽하지 못했다. 성적관리와 스펙관리 하나도 소홀할 수 없다며 혼자서 분주하게 준비하는 모습을 보니 수십억 대의 입시 컨설턴트가 나오는 드라마는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직장맘으로 아이의 대입에 직면하게 되자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동안 나름의 소신대로 아이를 키워왔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무관심했던 건 아닌지 나의 교육관이 잘못된 건 아닌지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조금 더 일찍 성적관리를 하지 못한 것, 조금 더 좋은 환경 속에 넣어주지 못한 것, 공부 말고도 중요한 것이 많다는 생각에 고등학생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다닌 것. 초조함이 밀려오자 나를 지탱하던 가치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드라마 속 등장인물은 자신이 겪게 된 비극적 사건 앞에서 오열하며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 이제 어떻게 할까요? 어머니가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해서 학력고사 전국 1등까지 했고, 어머님이 의대 가라고 해서 의사 됐고… 낼모레 쉰이 되도록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놈을 만들어 놓았잖아요. 어머니가.”




 무엇으로도 부술 수 없을 것 같이 단단한 돌덩어리의 성곽, 그러나 그 성곽은 하늘 위에 떠있어 세상과 단절되어 있다. 스스로 만든 성 안에서 자신들만의 삶을 위해 자발적으로 단절을 선택한 SKY캐슬의 사람들은 마그리트의 <피레네 성>이 실현될 수 없는 백일몽을 뜻하는 프랑스식 관용어 '허공 위의 성곽'이라는 것을 알까?




 실제로 철학에 조예가 깊었던 마그리트는 화가라는 이름보다 ‘생각하는 사람’으로 불리길 원했다고 한다. 그의 그림들은 끊임없이 존재에 대해 질문하고, 그것을 시각적으로 재현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육이란 질문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좋은 질문을 만들고 그 질문에 답을 찾아가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내 아이에게 주고 싶은 삶의 방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그리트의 그림은 매우 훌륭한 교육 컨설턴트다.



이 글은 <건설경제신문>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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