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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Apr 12. 2019

나이들수록 빨리 흐르는 시간

시간에 무엇을 담을까

  2019년의 첫 번째 분기가 지나갔다. 말 그대로 쏜살같이 흘러갔다. 나이 들수록 시간은 더 빨리 흐른다는 인생의 신비를 온몸으로 체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4월이 되면 SNS에는 ‘벌써 4월!’류의 한탄들이 난무한다.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폴 자네(Paul Janetㆍ1823~1899)는 10세 아이는 1년을 인생의 10분의1로, 50세의 사람은 50분의1로 느끼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으로 지각한다며 이를 ‘시간 수축효과(Time-Compression Effect)’라고 불렀다.


 이후 네덜란드의 심리학자 다우베 드라이스마(Douwe Draaisma)는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지각하는 것은 인류의 공통적인 심리현상임을 그의 저서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를 통해 증명하며 시간 수축효과의 원인을 세 가지로 분석하였다.



  첫째, 망원경 효과다. 얼마 전 해외로 장기 출장을 간 선배가 한국에 잠시 들어와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출장을 간 게 언제였죠라는 질문에 3개월 전이라는 답변이 돌아왔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분명 한 달 전쯤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한 것 같은데 벌써? 하며 함께 기억을 되짚어 보니 확실히 3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경험을 실제보다 최근의 일로 기억한다고 한다. 마치 망원경으로 사물을 보면 실제 거리보다 가깝게 보이는 것과 같다고 하여 이를 망원경 효과라고 한다. 시간적인 거리가 축소되어 시간이 실제보다 빨리 흘렀다고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생체시계 효과다. 미국의 신경학자 피터 맹건(Peter Mangan)의 연구에 따르면 연령대에 따라 감지하는 시간의 속도가 다르다고 한다. 연령대별로 3분이란 시간을 마음 속으로 헤아리게 한 후 실제로 흐른 시간과 비교해 보니 20세 전후의 참가자들은 3초 오차 이내로 3분을 지각하였지만 중년층은 3분6초를 3분으로, 60세 이상은 3분40초를 3분으로 지각했다고 한다. 노화는 생체 시계도 느리게 만들어 실제 시간과 비교했을 때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으로 지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회상 효과다. 우리는 과거의 사건을 회상할 때 ‘내가 그 회사를 다닐 때’라던가 ‘어디로 여행을 갔을 때’처럼 기억하기 쉬운 사건을 지표로 사용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지표로 활용할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이 줄어들고, 평범한 일상이 반복되며 새로운 기억이 줄어들게 되므로 시간의 흐름이 빠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렇듯 사람들마다 심리적인 시간의 속도는 다르지만 다행히도 물리적인 시간만큼은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다. 이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안인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한 ‘인타임’이란 영화를 보면 시간의 평등성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인타임’은 시간이 화폐를 대신한다는 신선한 소재의 영화로 2011년 개봉했다. 모든 인간은 25살이 되면 신체적인 노화가 멈추고 왼쪽 팔목에 새겨진 카운티 바디 시계에 1년의 시간을 제공받는다. 노동을 통해 시간을 벌고, 그 시간은 생체시계에 충전된다. 커피 한 잔은 4분, 버스요금은 2시간, 권총 한 자루는 3년, 스포츠카 한 대를 사려면 59년을 써야 한다. 그리고 손목 위 13자리의 시계가 0이 되는 순간 사람들은 심장마비로 죽게 된다. 영화 속 부자들은 어마어마한 시간을 소유하고 유유자적하게 살아가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시간의 부족으로 하루하루를 조급하게 이어간다.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0이 되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 시간을 벌어온 가족으로부터 시간을 보충해야 하지만, 빠르게 상승하는 물가 때문에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자신의 시간을 다 써버려 죽어가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이에 반해 영화에 등장하는 한 부호는 생체시계에 휴대하고 있던 시간만 9820년이었고, 백만 년 이상의 시간을 보관한 금고도 여러 대 가지고 있었다. 문득 영화를 보다 시간을 돈으로 대체해 보니 이는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의 이야기와 똑같았다. 영화는 ‘시간은 금이다’의 내러티브 버전이었다.



 

  인간에게 시간은 중요하다. 특히 나이 들수록 그 흐름은 더욱 빠르게 지각되기에 일분 일초가 정말 금쪽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은 금이나 돈으로 살 수 없듯 시간의 흐름도 마찬가지다.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미래를 함께 그려보는 일, 커피 한 잔을 들고 동료와 마음을 나누는 일, 나이 든 부모님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산책하는 일, 그냥 멍하니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일 등 돈으로 환산할 수 없어 보이는 일들을 시간의 흐름 속에 담지 않으면 우리는 영화 인타임의 등장인물들처럼 물리적인 시간이 없어지는 순간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바쁘다를 입에 달고 사는 우리는 어쩜 이미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시간을 돈처럼 소비하며 불안에 떨고 있는 건 아닐까? 잠시 고개를 들어 돈으로 살 수 없는 그 무엇을 지금 이 시간에 담아보면 어떨까? 




*이 글은 건설경제신문, 4월12일 시론에 기고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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