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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Apr 30. 2019

다크서클이 미인의 조건이었던 시절

켈러 백작부인의 초상

오랜만에 만난 사람이 "얼굴 좋아 보이네요"라고 인사를 건네면 그 말은 살이 쪄 보인다는 뜻일까? 요즘 들어 나는 그 인사말을 그렇게 해석하지 않지만 내가 2-30대 때만 해도 얼굴이 좋아 보인다는 것은 볼 살이 통통하다는 의미와 동일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8-90년대만 해도 여리여리하고 가냘파 보이는 여자, 특히 흰 피부에 수척해 보이는 외모를 지향하는 여성들이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 건강하고 탄탄한 몸매와 균형 잡힌 얼굴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바람직한 현상인 것 같다.


가냘프고 수척해 보이는 외모는 비단 20세기에만 각광받았던 것은 아니다. 19세기 후반, 유럽에서도 가냘프고 병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여자를 최고의 미인으로 꼽았다. 당시 오베르 박사라는 사람의 저서에 의하면 "죽어가는 환자처럼 창백하고 초췌하며 안색이 납빛이고 볼이 움푹 들어간 화장술이 유행했다. 그런 얼굴은 고상하고 품위 있는 예술적인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1873년에 알렉상드르 카바넬이 그린 초상화 속 백작부인은 하얀 석고 조각 같은 피부에 높게 올린 머리는 고급스러운 액세서리로 장식을 하고, 눈보다도 큰 진주 귀걸이에 담비 모피의 숄을 두른 채 부유함을 강조하고 있지만 왠지 깊게 드리운 다크서클과 붉은 입술이 그녀의 창백함을 강조하는 듯하여  보는 이를 살짝 섬뜩하게 만든다.


생-이브 달베이드르(Saint Yves d'Alveydre)의 부인이었던 켈러 백작 부인의 초상화이다.


켈러 백작 부인의 초상(1873년), 알렉상드르 카바넬, 캔버스에 유채, 99.2 x 76 cm, 오르세 미술관



도니미크 파케의 <화장술의 역사>에 의하면 당시 여성들은 창백한 미인이 되기 위해 기발한 방법들을 고안하곤 했는데, 특히 다크서클을 만들기 위해 늦게까지 자지 않고 책을 읽는 방법을 쓰기도 했단다. 흰 피부를 더욱 창백하게 강조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아무튼 지금 보기에 켈러 백작은 왠지 잘 못 먹어 꺼칠해진 얼굴에 신경쇠약의 지경에 까지 이른 모습처럼 보이지만 당시 ‘과시용 초상화(parade portrait)의 대가였던 카바넬의 작품이니 주문자의 마음에 쏙 들만큼 미인으로 그려졌을 것이 확실하다.


특히 이 그림은 이미 큰 성공을 거둔 카바넬이 돈보다는 유력인사들과의 친교를 위한 선물용 그림이었다고 하니 백작부인을 당시의 미인에 부합하는 이미지로 그리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1873년에 그려진 이 그림은 켈러 백작 부부에게 선물되었다가 1909년에 국가 소유로 귀속되어 현재 오르세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한 가지 더! 이보다도 훨씬 오래전, 노스트라다무스가 쓴 <화장술로 얼굴을 아름답게 만드는 비법 개론>이라는 책에서는 얼굴에 잡티와 주근깨를 없애기 위한 방법을 소개했다는데 그 방법은 우유 2파운드에 살모사 한 마리를 으깨어 넣고 황산염 1온스를 첨가해 증류시키는 것이었다. 1552년의 일이다.


만약 내가 노스트라다무스의 이런 이론을 21세기가 되기 전에 알았다면 1999년 지구종말예언 같은것에 잠시라도 쫄지 않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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