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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May 18. 2019

소설가의 일

<필사노트> 김연수 "소설가의 일"

친구의 추천으로 드라마 몰아보기 한 주말

박해영작가의 '나의 아저씨'


글을 쓴다는 것은 사람들의 상처를 글로 쓰다듬는 일인것 같아...



<필사노트> 김연수 "소설가의 일"

그래서 소설가에게 필요한 동사는 세가지다. '쓴다' '생각한다' '다시 쓴다'. 소설가는 제일 먼저 '쓴다' 그다음에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쓴다'. 소설가란 어떤 사람들인가? 초고를 앞에 놓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자기가 쓴 것을 조금 더 좋게 고치기'가 바로 소설가의 주된 일이다. 소설쓰기라는 동사가 있다면, 그런 뜻이여야만 한다. 누군가 '소설쓰고 있습니다'라고 한다면 '먼저 글을 썼고, 지금은 그 글에 대해 생각하면서 다시 쓰고 있습니다' 라는 뜻이어야만 한다.이렇게 생각하고 다시 쓰는 게 소설가에게 중요한 이유는 우리를 둘러싼 언어의 세계가 여러 겹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제일 바깥쪽을 추상적이고 큰 단어들, 예컨대 평화, 정치, 슬픔, 절망 따위의 단어들이 단단하게 감싸고 있고,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구체적이고 작은 단어들이 숨어 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쓸 때 우리는 대개 제일 바깥에 있는 단어들로 글을 쓴다. '5월을 보내는 마음이 슬프다'느니, '그녀는 질투심이 많다'느니. 자기가 쓴 초고를 보면 누구나 약간의 구토증세를 느끼는데,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이 우주가, 아니, 우리를 둘러싼 언어가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좀 쓸 만한 단어는 그런 너저분한 단어들을 뚫고 가야 나온다.


...


서사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인생을 두 번 산다. 처음에는 그냥 닥치는 대로 살고, 그 다음에 결말에 맞춰서 두 번의 플롯 포인트를 찾아내 이야기를 3막 구조로 재배치 하는 식으로 한번 더 산다. 인생이 그렇다면 소설도 마찬가기겠지. 그렇게 해서 소설은 원래 두번 쓰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런데 강연에서 이런 말을 하자, "처음 부터 잘 쓰지 그랬냐?"라는 사람도 있더라. 그런 말을 들으면 그런가 싶어서 그 사람 얼굴을 쳐다본다. 인생 처음 살면서 '지금이 내 인생의 첫번째 플롯 포인트로구나. 이 불타는 다리를 지나면 돌이킬 수가 없으니 최선을 다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여기 있구나 싶어서. 처음부터 잘 쓰지 그랬냐고? 아직 결말을 모르는데 어떻게 처음부터 잘 쓰나? 마찬가지다. 내 인생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무슨 수로 처음부터 잘 살겠나? 소설을 쓰는 일은 '인생이라는게 원래 뭐 그따위'라는 사실을 깊이 이해하는 일로 시작하다는 말은 이런 뜻이다. 처음부터 잘 사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 그건 소설도 마찬가지다. 모든 이야기가 끝난 뒤에야 비로소 소설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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