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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May 20. 2019

강요당한 선(善)

한산한 지하철, 앉아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있고, 군데군데 서있는 사람들도 인터넷 탐색과 빈 좌석 탐색을 위해 스마트폰과 지하철 내부를 번갈아 바라보며 분주히 시선을 움직이고 있다.


원래라면 있었을 노약자석이 휠체어나 유모차를 위해 빈 공간으로 만들어진 신형 열차는 소음과 흔들림이 적어 승객들이 스마트폰에 집중하는데 최적화되어있다. 그러니 나 또한 스마트폰에 푹 빠진 채 목 뼈를 원래의 상태와는 반대의 C자 모양으로 만들고 있었다. 


건너편 좌석의 맨 오른쪽엔 30대 정도의 여성이, 그녀의 오른쪽엔 20대 정도의 남학생이 앉아 있었다. 남학생은 책을 들고 공부를, 여성은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30대 여성의 왼쪽엔 열차의 4-1번 문이 있고 문과 좌석 사이의 기다란 봉을 잡고 있는 40대 초반의 남성이 갑자기 큰 소리로 말한다.


"여기 여자 손님과 남자 손님. 저기 할머니께 자리 양보 좀 해주시죠!"


조용하던 지하철의 적막을 깨는 소리에 모든 승객의 시선이 그들을 향한다. 

할머니는 4-1번 문의 오른편 그러니까 원래라면 노약자석이 있었을 자리에 유모차를 잡고 있는 젊은 부부 옆에 서 있었다. 앉아있던 여성과 남학생이 일부러 고개를 들어 지하철 내부를 둘러보지 않았다면 할머니가 서있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여성과 남성이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들의 표정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40대 남자는 할머니를 불러 자리로 오게 했다. 할머니는 겸연쩍어 그럴 필요 없다고 계속 중얼거리시며 자리에 앉으셨다. 그런데 이 정도까지였다면 40대 남자의 나름대로 '정의구현'정도로 마무리 되었겠지만, 그는 계속 앉아있던 두 사람에게 훈계조로 "어른들에게 자리를 좀 양보하고 그러고 삽시다"라고 말한다. 얼떨결에 자리를 양보한 여성은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고 함께 일어난 남학생은 자기가 일어선 바람에 비어있게 된 자기의 자리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시선을 바삐 움직였다. 마침 할머니가 남학생에게 다시 앉으라고 이야기하는 바람에 남학생은 다시 자기 앉았던 자리에 앉아 책을 보며 공부를 이어나갔다.


잠시 후 그 남자는 다시 말한다.


"애기야! 좀 조용히 할래?"


맥락이 없어 보이는 큰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유모차와 함께 서있던 젊은 부부와 서너 살가량의 아이를 향해 한 소리였다. 유모차에는 신생아가, 엄마의 품에는 둘째 아이가, 외국인 아빠는 유모차를 잡고 서있었고 아이는 뭔가 불만이 있었는지 엄마 아빠를 향해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소리에 민감한 나도 그다지 인지하지 못했을 정도의 소리였다. 


위협적인 남자의 소리에 여자아이는 아빠의 뒤편으로 숨었고, 아빠가 외국인인 것을 확인한 그 남자는 아이에게


"하우 올드 아 유?"... "하우 올드 아 유?"..."너 몇 살이니?"라고 재차 물었다.


엄마와 아빠는 위협적으로 아이에게 훈계를 한 그 남자를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보았고,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손가락 네 개를 들어 보이며 그 남자로부터 뒷걸음을 쳤다.


어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일, 지하철 같은 공공시설에서 조용히 하는 일은 도덕적이거나 타인을 배려하는 선한 행위임엔 틀림없다. 그런데 그것이 남으로부터 강요당한 것이라면 어떨까?  아니 도덕이나 선이란 것이 타인에게 강요할 수 있는 것일까? 제안이나 요청 수준이 아닌 강요라면 이것이야 말로 선을 가장한 폭력이 되는 것은 아닐까? 


지하철의 30대 여성과 20대 남학생, 그리고 네 살짜리 여자아이는 생면부지의 남성에게 선(善)을 강요당한 오늘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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