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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Mar 31. 2020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1일 1글 시즌4 [episode 02]

어느 맥주집에 장식되어 있는 다육이 화분 중 하나가 길게 새 순을 내민 것을 보고, '다육이는 이런 식으로 새순을 내나 보다' 하고 신기해하며 들여다보았다.


조심스럽게 만져보다가 그만 '엇'하고 놀라고 말았다. 가짜였다.


그 왼쪽에 놓인 두 개의 화분 모두 가짜였다. 벽에 붙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문구가 "속으니까 사람이다. (네롱~)"라고 쓰여있는 것처럼 보였고 내심 눈썰미 부심을 가지고 있던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요즘은 가짜를 정말 진짜처럼 만드는구나...'


500cc 맥주잔이 한 개, 두 개 비워져 가자 옆에 있던 화분들에게 심통이 나기 시작했다. "진짜도 아닌 것들이 진짜 행세를 하고 있네"하며 함께 맥주를 마시던 지인에게 투정을 부리자 마침 옆을 지나가던 맥주집 사장님이 거든다.


"하하하! 그거 가짜예요~ 진짜 가짜! 아니 진짜 같은 가짜! 요즘은 그렇게 잘 만들더라고요" 사장님의 목소리엔 뭔지 모를 자신감이 묻어있었고 마치 자식 자랑을 하듯 의기양양했다. 그 순간 울 엄마의 모습이 겹쳐졌다. '딸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엄마'라는 별칭이 친척들 사이에 붙여질 만큼 나와 내 동생을 끔찍이 아껴 키운 우리 엄마.


내 나이 50이 넘은 나이임에도 엄마 집에 가면 이불을 손수 깔아주시고, 설거지마저도 못하게 하는 엄마. 기껏 석사 학위자인 나에게 꼭 '박사님'이라고 부르는 엄마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식농사 잘 지은 사람으로 불려진다.


문제는 농사가 결코 잘 지어진 것 같지 않다는 자평 때문이다. 겉으로만 번지르르한 모습, 말로 많은 것을 때우는 시크한 장녀, 무뚝뚝하고 잔 정 없는 나는 마치 맥주집의 가짜 다육이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의 삶을 살고 있는 나는 어느새 그 가짜 모습이 내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괜찮은 사람, 나는 열심히 사는 사람, 나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는 오래된 가짜 내 모습은 어느새 주객이 전도되어 진짜 내 행세를 하고 있었기에 나도 모르게 가짜 다육이에서 투사된 나를 발견해 화가 난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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