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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Apr 01. 2020

의지박약인 내가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

1일 1글 시즌 4 [Episode 03]

나란 사람이 워낙 의지박약이라 뭘 해도 작심삼일을 못 벗어난다. 이런 내가 코로나 사태를 빌미로 일이 모두 취소되어 온종일 집에 있는 삶이 한 달 가까이 되어가자 몸이 어찌나 적응을 잘하는지 노트북을 열고 책을 집어 들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가 고갈되어 버렸다. 


가뭄에 콩 나듯 회의라도 잡힐라치면 외출 준비조차도 귀찮아져 화장도 대충하고 모자를 눌러쓴 채 약속 장소를 향해 간다. 열흘 전이었나? 약속 장소였던 숭실대 입구역에 도착해 지상으로 나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숭실대입구역은 다른 역에 비해 지하 깊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꽤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몇 층을 올라가야 한다. 에스컬레이터 위에서도 걷기를 멈추지 않는 많은 사람들, 나 또한 에스컬레이터의 오른편에 빼곡히 선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왼편에서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열 계단이나 올랐을까? 갑자기 허벅지의 근육이 조여오기 시작했고, 숨소리가 거칠어지며 KF94의 마스크가 입술에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뒤에서 따라오는 사람들 때문에 속도를 늦출 수도, 갑자기 멈출 수도 없는 지경. 아직도 백 개는 넘어 보이는 에스컬레이터 계단이 남아있었다. 열 개 정도의 계단을 더 올랐을까? 허벅지와 허리가 도저히 이 사태를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아 오른쪽에 서있는 사람들 사이 비어있는 틈 사이로 잽싸게 끼어들었다. 여전히 마스크는 입 앞에서 들락날락하고 있었고 혹시라도 이런 숨소리를 앞 뒤 사람에게 들킬까 싶어 고개를 숙여 숨을 골랐다.


'이거, 심각한데...?'


나이가 들며 근육량과 기초대사량이 줄어들어 예전에 비해 조금만 먹어도 살이 찌고, 움직임이 적어지니 혈액순환이 안되어 어깨와 목의 통증을 늘 달고 살았던 나는 약 한 달간의 침대 - 책상 - 식탁 - 책상 - 침대의 동선 안에서 급격한 체력 감소라는 보이지 않는 괴물의 공격을 받고 있었고 어느 날 숭실대입구역의 길고 긴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내 몸상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말았다. 


그제야 불현듯 책상에 앉아있을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자꾸만 드러눕고 싶은 마음, 책을 읽어도 통 집중이 되질 않아 2,3분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게 되는 되었던 내 모습이 이해되었다. 


'그래 결심했어! 지난번 상담했다가 코로나 때문에 등록을 주저했던 복싱클럽을 가자. 한낮의 시간엔 거의 사람이 없다고 했으니 혼자 최대한 빠르게 운동하고 샤워나 기타 다른 시설의 접촉을 최소화한 채 오면 될 거야'


부랴부랴 대충 옷을 입고 방문한 복싱센터의 정문에는 A4용지 한 장에 체육관 휴관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내가 방문한 그 날부터 2주간의 휴관이란다. 


터덜 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어쩔 수 없다. 혼자라도 운동을 하자. 운동의 메커니즘 따위는 평소 관심도 없던 나였지만 페이스 북, 브런치 등을 통해 가장 좋은 운동이라고 끝없이 세뇌당했던 플랭크와 스쿼트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삼사 년 전엔 플랭크와 스쿼트 자세를 배웠으니 이제는 규칙적으로 실행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하루에 몇 번을 하는 게 좋을까? 문득 얼마 전 보았던 글의 제목이 떠올랐다 


"하루에 백 번 하면 몸에 나타나는 놀라운 변화" 이런 류의 많은 글들을 막상 읽어보면 과연 이런 동작 몇 번이 몸에 변화를 가져오기는 하는 걸까? 라며 코웃음 쳤었는데, 사실 단 한 번도 규칙적으로 실행해본 적이 없는 '아가리불평러'인 내 모습을 깊이 반성하며 이제는 실행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어떤 자기 개발서에서 보았던 실행을 자극하는 표 만들기가 떠올랐다. 다이어리처럼 날짜 칸을 만들고 매일 해야 할 일을 실행했을 경우 그날의 칸에 가로로 선을 긋는 것이다. 다음날도 실행하면 마찬가지로 가로선을 긋는다. 어제 그었던 선과 이어져 어제보다 두 밸로 길어진 선이 생긴다. 그리고 그 선이 끊어지지 않도록 선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하루에 세 번 1분씩 플랭크, 50회 스쿼트도 하루 세 번, 걷기는 가능하다면 만 보 채우기. 딱 세가지만 하기로 했다. 처음 몇 일간의 1분 플랭크는 지옥의 시간을 선사했다. 이 꽉 깨물고 2분까지 버틸 수 있었던 과거의 내 모습만 기억하며 '1분 정도야... 뭐'라고 호기롭게 플랭크 1분을 도표 안에 써 놓은 내가 바보 같았다.  아침에 1분의 플랭크를 꾸역꾸역 마치고 나면 점심에 해야 할 플랭크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에 비하면 스쿼트는 조금 쉬웠다. 팔을 앞으로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하며 하는 스쿼트는 중심 잡기가 어려워 기다란 봉 하나를 찾아서 어깨에 걸고 했더니 자세가 조금 더 안정적이 되었다. 


3일이 지나니 플랭크가 아주 조금 쉬워졌다. 그러나 여전히 30초가 지나면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배, 허리, 등의 근육들이 살려달라고 요동을 친다. 스쿼트를 하기 위해 어깨에 거는 스테인리스 봉이 목에 닿을 때마다 너무 차가워 버리려고 모아두었던 오래된 붕대를 감았다 그리고 봉의 양 끝에는 파워워킹용 핑커 덤벨 0.5Kg짜리를 붙였다. 1kg 무게 덕분인지 조금 더 운동이 되는 느낌이 들었는데, 조만간 2kg짜리 덤벨을 붙여볼 생각이다. 



소소한 운동을 시작한 지 열 흘, 지하철 환승역의 계단을 오르내리는데 확실히 열흘 전에 비해 몸이 가벼워졌고 허벅지의 통증이 줄어들었다. 숨도 덜 찼다. 고질병 같던 어깨와 목의 통증도 줄어들었다. 


냉장고에 붙어있는 운동 표의 가로선이 아직까지는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내가 쫌 대견스럽다.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어떤 일이라도 의지에만 의지하면 실패한다'


나의 환경을 변화시키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 그 안에 나를 두는 것. 그게 나 스스로를 움직이는 방법이라는 것을 안다.


이 글 또한 '1일 1 글'이라는 프로젝트 안에 나를 세운 후 삼일 째 결과물이다. 별로 활동도 하지 않는 페이스북에 연동을 시키는 것은 누군가는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경각심을 갖기 위해서다. 

첫 글을 올리자마자 포항 사는 친구 녀석이 '다시금 고난의 길로 접어드는구나... 늘 그랬듯 끝까지 건투를 빈다. 파이팅'이란 댓글을 남겼다. 이 녀석 때문에 빼박이다! 난 어쩔 수 없이 백일 간 매일 글을 써야만 하는 운명에 처한 것이다. 자업자득? 그렇다 이게 내가 움직이는 방식이다. 


오늘도 운동 표에 가로선은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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