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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Apr 02. 2020

아주 작은 자부심 1을 획득했습니다.

1일 1글 시즌 4 [episode 04]

1일 1글 쓰기를 시작한 후 4일 만에 위기가 찾아왔다. 지난주까지는 감당할 수 없는 시간적 여유에 '나의 본성은 역시 놀고먹는 게 딱이야'라며 철없이 상황을 즐겼는데, 이번 주는 그간 밀린 약속이 한꺼번에 밀려와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우스개 말을 몸소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이 가기 전에 '1일 1글 ep.04를 완성할 수 있을까?'


점심과 저녁 약속 두 건이 있었고, 사이사이 아이의 밥을 챙기고, 장을 보고 집안에서의 생산성 낮은 자잘한 일들을 쳐내고 약속 장소에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니 밤 열 시. 오늘 꼭 해야 하는 일 중 브런치 글 한 편과 저녁 운동 2개, 3일간의 해독주스 재료 준비등이 남아있었다. 만 보 걷기 중 5 천보 밖에 걷지 못한 것은 너그럽게 완료로 인정하기로 했다.


싱크 대위엔 낮에 장을 보고 대충 던져둔 장바구니 속에서 비닐랩에 싸여 산소포화도 제로를 향해가는 빨간 토마토가 어서 포장을 풀어달라며 아우성치고 있었고 세척을 위해 오후 내내 양푼에 담아놓은 브로콜리가 애처롭게 물 위를 유영하며 나를 흘겨보고 있었다.

'아... 브로콜리 너마저....'




그러나 그들을 애써 외면하고 책상에 앉은 이유는 가장 골칫거리인 '오늘의 글 쓰기'를 완료하기 위해서다. 무엇을 써야 할지 글감도 준비하지 못했고 오늘은 딱히 감성적인 자극도 없었고 게다가 저녁 모임에서 마신 맥주 탓에 불편하게 부른 배와 어정쩡한 두통은 나를 더욱 초조하게 만들고 있었다.


어느 누가 나의 이런 계획에 관심이 있어 약속을 지켰네 못 지켰네 할까마는 이 나이가 되니 타인의 시선보다는 스스로의 평가가 더 중요한 채찍이 되어버린 탓에 정해진 시간 안에 조잡스러운 글 하나라도 써야 편한 맘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성격이 점점 못되지는 건가?라고 생각하다가도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이 되는 것이 느지막이 수립된 내 삶의 방향이란 생각에 잘하고 있는 거야! 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노트북 화면에 집중한다. 


'나는 쓰는 데로 이루어진다'의 저자 한명석은 이렇게 말했다.



"'무'에서 시작한 내 글이 '유'로 나아가는 전 과정을 즐겨야 한다. 
뜻하지 않게 튀어나온 문장에 감탄하고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 낸 해방감을 만끽하며
해냈다는 자부심에 뿌듯해야 한다."


그렇다. 오늘의 나는 혼자 감탄할 문장도 만들지 못했고 표현의 해방감도 느끼지는 못했지만 '1일 1 글쓰기 시즌4'의 첫 번째 위기를 다행히도 극복하는 잡설 하나 써냈다는 아주 작은 자부심 하나를 건지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브로콜리야! 내가 간다~~~




+1~ 이수정 님께서 아주 작은 자부심 1을 획득했습니다. 




*문득 누군가는 '2주간의 멈춤'과 상관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걸까 의아해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현재 최대한 모임을 자제하고 불가피한 상황에서만 짧게 외부 활동을 하고 있음을 알려야 할것같아 부랴부랴 첨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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