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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Apr 04. 2020

날카롭게 나를 베고 달아나는 봄바람

1일 1글 시즌4 [episode 06]


강원 삼척시가 코로나 19 확산을 막으려고 '맹방 유채꽃밭'을 갈아엎었다고 한다. 

5.5헥타르, 그리니까 평수로는 16,637평에 달하는 면적이다. 2003년부터 18년간 매년 열렸던 ‘삼척 맹방 유채꽃 축제’는 2020년엔 트랙터로 꽃밭을 모두 갈아엎으며 축제를 취소한 유일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상춘객 몰려들자 유채꽃 통째 갈아엎은 삼척시(사진: 삼척시)


이런 일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기술이 발전하며 우리가 예측하는 세상의 변화 중 일부는 생각보다 빨리 우리 앞에 도달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예상을 빗나가는 결과로 그저 기록의 형태로 남아있겠지만, 2020년 이 지구 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과연 적은 확률로라도 예상했던 일들일까 궁금하기 짝이 없다. 


하물며 인간의 일들은 오죽하랴. 개인의 인생사는 사실 예측 가능한 일보다 그렇지 않은 일들이 훨씬 많다. 좋은 직장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것이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설사 정년을 다 채우고 퇴직을 한다 해도 일터에서 보냈던 시간보다 무소속으로 살아가야 하는 더 많은 시간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다.


젊은 나이에 반짝 돈을 벌었다고 해도 그것이 계속될 수 있다는 보장이 없고 나의 건강도, 정신적인 상태도 그 어느 것도 지금과 같으리란 보장이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늘 당장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일에 매몰되고 나의 미래만큼은 희망적일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고백하건대 모두 나의 이야기다. 잠깐의 멈춤 기간이 2주 더 늘어난다는 소식을 듣고선 마음이 착잡하여 동네 뒤편 한적한 산책길을 걸으며 2020년의 이런 잔인한 봄을 그 누가 예측이나 했을까 생각하니, 결코 나의 삶 또한 나의 예측대로 흘러가지 않을 거란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매일이 평일 같고, 그 와중에 주말은 너무 자주 돌아오는 것 같고, 아무 일도 안 하며 빈둥대다가 주말엔 주말이니 쉬어야지라며 스스로에게 무한히 관대 해지는 요즘이다. 


그러다가도 갈아엎은 유채밭 뉴스를 들으며 어쩜 이대로 나를 방치하다가는 나의 인생 또한 무참하게 갈아엎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쌀쌀맞은 봄바람이 칼바람처럼 나를 긋고 도망가는듯하여 정신이 번쩍 드는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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