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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Apr 06. 2020

요즘 나의 노동요 '펭수리믹스'

1일 1글 시즌4 [episode 08]


느지막이 펭수에 입덕 하고 아들에게 덕밍 아웃을 했다.


이유는 온라인 수업으로 하루 종일 집에 있는 아들에게 나의 노동요로 선택한 펭수송의 당위성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펭수가 부른 노래와 펭수의 말을 믹스하여 만든 수많은 헌정송은 발라드 버전이며 락 버전, 짧은 버전, 긴 버전 등 콘텐츠 생산자의 기호대로 다양하게 재 생산되어있어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골라 듣는 재미가 있다. 


원래 남들 따라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대세라고 불려지는 많은 것들을 일부러 외면하는 편이었고, 펭수의 인기를 인지하고 난 후엔 유튜브에 자동 추천되는 펭수영상들 또한 일부러 외면했었다. 그러다 우연히 몇 편의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그만... 펭수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펭수의 엣헴송에 맞춰 궁둥이를 씰룩거리며 설거지를 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스무 살의 아들은 "어이 없다"는 타박을 남기고 황급히 제 방으로 들어갔다




고부갈등으로 생활이 힘들었던 울 친정엄마는 장남과 결혼해서 딸 둘을 나았다. 과묵하고 어른스러운 큰 딸인 나와 상냥하고 붙임성이 좋은 동생 이렇게 자매를 키우면서 울 아빠와 알콩달콩 살았지만 친할머니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는 아들을 못 낳은 부족한 며느리로 평가받았다. 그런 상황에서 딸이었던 나는 늘 착하고 모범적인 장녀, 아들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 소위 '착한 아이 콤플렉스'의 피해자로 살아야 했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 하지 않는 건 기본이고 부탁받아도 거절 못하고, 항상 겸손하게 자신을 죽이고 살아야 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가져야 할 나의 권리는 항상 뒷전이었고, 양보를 해도 그것은 당연한 것으로 타인들에게 받아들여졌다. 


그렇게 오십여 년을 살아왔는데 어느 날 알게 된 펭수를 보니 세상에 어떻게 저렇세 살지? 저렇게 하고도 사랑을 받다니... 그만 오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펭수. '못하는 뭐냐'는 질문에 '못하는 걸 못한다'라고 말하고 자신의 의견을 빙빙 둘러말하지 않고 당당하게 전달하며 항상 주눅 들지 않는 모습은 어쩜 내가 꿈꾸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매일 밤 잠들기 전 그동안 못 보았던 펭수 영상 두 세편을 모아 본다. 일종의 힐링 리츄얼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펭수에 관해 써놓은 브런치 글들을 읽어본다. 정말 다양한 이유로 펭수를 좋아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펭수는 펭수로 써 살아가고 그런 펭수의 삶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으로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게 한다. 


요즘은 뜬금없이 '신이나 신이나 엣헴 엣헴 신이나'라며 펭수마냥 몸을 흔든다. 요즘 같은 때 신날게 뭐가 있을까마는 말이라도 그렇게 중얼거리니 나도 모르게 신이 나 버린다. 


그러니...펭수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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