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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Apr 10. 2020

고마워요, 임영웅

1일 1글 시즌4 [episode 12]

작년에 퇴직하신 선배와 저녁을 먹다가 '미스터 트롯'이야기가 나왔다. 본인은 TV에서 방송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가끔 보는 프로그램이 골프나 다큐멘터리 정도였다고. 그런데 우연히 채널을 넘기다 방영 중인 미스터 트롯을 보게 되었고 임영웅이란 친구가 노래를 부르는데 그만 꼼짝도 못 하고 계속 듣게 되더란다. 가슴이 울컥해지고 눈물이 핑 도는 자신이 너무나도 생경했지만 한편으론 자신에게도 아직 감성이란 게 남아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고 한다.


나이가 서른밖에 안된 친구가 어떻게 그렇게 노래에 감정을 담아 듣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대는지 놀랍기만 했다고 자꾸자꾸 반복해서 말한다.


"아니... 어떻게 서른밖에 안된 친구가...."


나는 웃으며 말했다. 선배님 나이 서른엔 무엇을 했는지 기억해보라고. 결혼을 했고, 막 시작한 직장생활에 치이며 찌들 대로 찌들어 하루하루 얼마나 힘겹게 살았냐고. 육십이 다 된 선배의 입장에선 서른이 마냥 아이처럼 보이겠지만 서른이라는 나이는 나름대로 많은 세상 경험을 했을 그래서 인생의 쓴맛 단맛을 어느 정도 맛보았을 나이라고.


그리고 중요한 건 서른이든, 마흔이든 누군가의 나이란 언제나 그가 가져보았던 나이 중 가장 많은 나이라는 것.


서른 해를 살았어도 인생의 깊은 맛을 알아버린 청춘도 있을 거고, 일흔 해를 살았어도 여전히 세상을 모르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나이에 걸맞은 절대적인 행동이란 없는 걸 거라고. 어쩜 임영웅은 다른 사람이 살았을 3~4년을 1년간 농밀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내 나이 오십이 되어서야 무언가를 잘하기 위해서는 "힘을 빼는"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임영웅은 그의 나이 서른에 온 힘을 다해 자신을 가장 잘 보여야 하는 무대에서마저 힘을 뺄 줄 알았다.


옆 테이블에선 얼굴이 벌게진 어르신 세 명이 가게가 떠나갈듯한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주변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에 우리는 조금 불쾌해졌지만 나이를 먹었다고 인격이 비례해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니 그냥 안타깝게 바라봐주자고  합의했다. 그리고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며 "나이에 걸맞은"이라기보다는 "인격에 걸맞은" 모습으로 살아가자며 소주잔을 부딪혔다.


고마워요! 임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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