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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Apr 07. 2020

사실 우리는 예술 속에서 살고 있다.

1일 1글 시즌 4 [episode 09] 미술감상은 처음인데요_01

올해 28살인 A 씨는 정동에 위치한 회사에 입사했다. 아침 8시 지하철을 타고 광화문역에서 하차하여 새문안로를 따라 올라오다 흥국생명 건물을 지나 좌회전을 한다. 오늘도 거대한 사람 모양의 조각이 망치를 들었다 내렸다 한다. 워낙 거대한 조각인 데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인상적이다. 


사무실로 들어가기 전 근처에 있는 엔젤리너스 커피숍에 들러 카페라테 한잔을 테이크 아웃한다. 이어팟을 통해 들리는 콜드플레이의 비바 라비다는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다. 스마트폰에 뜬 앨범 재킷 속 프랑스 국기를 들고 사람들을 이끄는 여자의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한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동기 한 명이 오늘이 화이트데이라며 출근한 사람들에게 츄파춥스 한 개씩을 전하고 있다. A씨도 사탕 하나를 받아 들고 자리에 앉았다. 운 좋게도 라임 레몬맛! 오늘 하루는 왠지 상큼할 것 같다. 


어느덧 퇴근시간, 얼마 전 가입한 독서모임 오프에 참석하기 위해 시간을 보니 저녁 먹을 시간이 빠듯하다. 분식집에서 간단히 라면 하나 먹고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한산한 분식집엔 TV가 켜져 있지만 혼자 앉아 저녁을 먹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밥 먹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 TV 화면 속에선 공효진이 공유에게 “영어 좀 하죠?” 라며 SSG가 쓰여있는 타블릿을 내민다. 공유는 “쓱”이라고 답하고 공효진은 “잘하네”라고 말한다. 


혼자 큭큭거리며 물컵을 가져다준 주인을 향해 라면 하나를 주문한다. 주방을 향해 라면 하나를 외치자 주방장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라면봉지를 꺼낸다. 샛노란색 포장의 진라면이다. 이전에 알고 있던 진라면의 포장지가 아니라 새로 나온 라면이냐고 물었더니 주인아주머니는 30주년 행사상품이라고 말한다. 


꼬들꼬들 잘 끓여진 라면을 먹고 계산을 하는데 계산대에는 막대풍선을 꼬아 만든 강아지 모양을 한 은색 장식품이 하나 있다. 손으로 톡톡 쳐 보았더니 풍선이 아니라 메탈처럼 도장이 된 플라스틱이다.


분식집을 나와 독서모임 장소를 향해 가기 위해 전철을 탔다. 15분만 가면 되는 거리인데 운 좋게 자리가 났다. 앉아서 오늘의 토론 책인 서머셋 모옴의 “달과 6펜스”를 꺼낸다. 책 표지에 그려진 남자가 A 씨를 흘겨본다. 인상이 별론데… 하며 책을 휘리릭 넘기며 형광펜으로 표시해 둔 부분들을 다시 한번 읽어본다. 



위의 이야기는 가상의 상황 속에서 A 씨는 하루를 꾸며본 것이다. 이유는 A 씨가 과연 그의 일상 속에서 몇 개의 예술작품과 조우했을까 하는 질문을 해보기 위해서다. A는 과연 위의 상황과 같은 하루 동안 몇 번이나 예술작품 또는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들과 만나고 지나갔을까?



A 씨가 맨 처음 흥국생명 앞에서 만난 거대한 조각품은 미국의 조각가 조나단 보로프스키(Jonathan Borofsky)의 작품이다. 해머링 맨(Hammering man, 망치질하는 사람)이란 이름의 이 조각은 높이 22미터 무게 55톤의 강철로 전 세계 11개 나라에 설치되어 있다. 이 중 서울의 해머링맨이 가장 크다. 조나단 보로프스키는 망치질이라는 행위를 통해 삶에 있어 노동의 가치가 얼마나 고귀하고 위대한지를 표현하고자 했다. 사용하는 도구는 다를지언정 각자의 망치(도구)를 들고 일하는 세상 모든 근로자에 대한 존경이 담겨있는 서울 속 공공미술의 백미다.




 A 씨가 카페라테를 사기 위해 들린 커피숍 엔제리너스, 이 커피숍을 이용해본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브랜드 로고 속 앙증맞은 천사가 우리들의 눈길을 끈다. 별다방, 콩다방처럼 천사다방이라는 닉네임을 유도하고자 했지만 이는 실패했다고 마케팅 쪽에선 평가한다. 아무튼 엔제리너스 커피숍의 상징인 장난기 가득한 천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와 더불어 르네상스 3대 거장 중 한 명인 라페엘로 산지오의 아름다운 걸작 ‘시스티나 성모’에 등장하는 아기천사를 모티브로 하여 일러스트레이터 이우일이 만든 심벌이다. 





A 씨가 출근길에 들었던 노래 비바 라비다(Viva la vida)는 콜드 플레이라는 영국의 락그룹의 노래로 한국 팬들이 특히나 사랑하는 곡인데 이 노래는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과 스페인의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의 작품에 영향을 받아 완성한 곡이다.  힘이 있는 자가 권좌에서 내려오는 혁명을 노래하고 있는데 그 내용에 걸맞게 재킷에는 프랑스 7월 혁명을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위에 흰색의 거친 붓터치로 쓰여 있는  Viva La vida라는 타이틀은  ‘인생이여, 만세’라는 의미로 전 생애를 고통과 절망 속에 살다 간 스페인 화가 프리다 칼로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의 제목이다. 




다음은 어떤 작품일까? 설마라고 생각하겠지만 빙고! 추파춥스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본사를 두고 있는 사탕 회사 츄파춥스는 이전에는 없었던 막대를 꽂은 사탕을 만들어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그러나 초반에는 이 사탕의 포장지 디자인을 못해 고민을 했다는데 이 회사의 사장 베르나트는 친구인 예술가에게 고민을 털어놨고 그 화가는 베르나트를 만나고 있는 커피숍에서 즉석으로 스케치를 해 주었다고 한다. 그 화가가 우리에게는 초현실주의 화가이자 특이한 수염 모양으로 유명한 살바도르 달리다. 사탕의 포장지 옆면이 아닌 사탕의 윗면에 꽃잎 모양을 그리고 그 안에 로고를 집어넣은 초기 로고는 글자의 모양만 살짝 바뀐 채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살바도르 달리와 그의 작품 [기억의 지속]
1969년 로고가 달리가 디자인한 로고


 A 씨가 김밥집에 들어갔을 때 TV를 통해 방영되던 SSG의 론칭 광고는 색감과 분위기가 매우 특이한데 이 광고의 미장센은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한다. 영화 ‘뷰티 인사이드’의 백종열 감독이 연출했다. 


사진 출처: https://blog.naver.com/vipmkt/220621762648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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