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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Apr 09. 2020

"와! 예술이다." 라고 말할 때

1일 1글 시즌4 [episode 11] 미술 감상은 처음인데요-03

자~ 레드썬!!!


당신은 지금 핀란드 사리셀카에서 밤 하늘오로라를 보고 있다.

당신은 지금 미국 콜로라도 강의 급류가 기나긴 시간 동안 만든 협곡 그랜드 캐니언의 마더포인트에 서있다.

당신은 지금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앞에 서있다.

당신은 지금 루브르박물관에서 자크루이다비드가 그린 대작 나폴레옹대관식 앞에 서 있다.

당신은 지금 하이에나의 남자 주인공 주지훈(여성버전으로 교체 가능)앞에 서있다.



이 다섯개의 상황에서 동일하게 나올 수 있는 감탄사는 무엇일까?


"와! 예술이다!!!"


감정이 수 있는 최고치의 긍정적인 자극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자주 "예술이다"라는 표현을  쓴다. 그런데 과연 저 다섯 개의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써의 "예술이다"는 모두 적절하게 사용되었을까? 이 중 예술이다라는 말을 사용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상황은 무엇일까?


참고가 될 만한 내용을 소개하자면 <절규>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에드바르드 뭉크는 "예술은 인간의 신경, 심장, 두뇌, 눈을 통해서 창조된 영상이며 예술작품은 오직 인간의 내면에서만 발원 한다"고 말했고, 미국의 철학자이자 교육자인 존 듀이는 "예술가가 없는 예술은 존재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정리하자면 아무리 미적으로 아름다운 것이라해도 예술가의 손을 거치지 않은것은 예술이라고 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오로라나 그랜드 캐니언을 보고"예술이다"라고 말하는것은 적절하지 않다. 물론 "예술같다"라는 변형된 표현이라면 문법상 틀린말은 아닐것이다. 혹 누군가가 "아니 왜 오로라와 그랜드 캐니언을 만든 예술가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엄연히 하느님(하나님)이라는 창조주가 계신데..."라고 말 한다면... (따라오세요!)


마지막 주지훈의 경우는 예술일까 아닐까? 엄마, 아빠가 만들었으니, 만약 의느님의 손길로 재탄생 되었다면(그렇다는 뜻이 아니라 예를 든것입니다. 저는 주지훈 왕 팬입니다) 예술이라고 볼수 있다? (아! 네 그렇군요.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예술인게 맞네요~)요건 논외로 하자.


플라톤이 말한 참된 예술이란 이상적 형식, 전형적으로서의 미를 표현함으로써 정신세계의 훌륭한 조화를 가져다주고, 그리하여 선으로 향하는 습성을 만들어 내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고, 인간의 활동을 세 가지(탐구, 행위, 제작)로 나누어 그중 제작의 활동을 예술이라고 보았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참된 예술이란 의식적이고 지식에 근거를 두었을때만 그러하다고 말했다.


오래된 철학적 담론은 차치하고 예술이란 인간의 감정, 즉 표현하는 사람의 감정을 시각이나 청각 또는 상상력을 통해 지각하게 하는 형식과 내용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까지는 천천히 곱씹어 보아도 문제가 없어보인다. 그러나 여기에 '미적 가치의 창조'라는 정의가 포함되는 순간 우리의 머리속은 복잡해진다. 예술작품은 예술가가 미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한 형식과 내용이니 그저 느끼는데로 감상하면 된다는데 우리는 가끔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 예술작품 앞에서 당혹감을 느낄 때가 많지 않은가? 이런 딜레마가 예술감상을 방해하는 가장 큰 난관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에 마당놀이를 연극계에 정착시킨 최고의 극단 미추(美醜)는 도올 김용옥선생이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아름다움은 추함이 없으면 드러나지 않기에 예술은 미와 추를 다 포함하는 개념이어야 한다는 것. 극단 미추란 아름다움과 추함을 동시에 표출하는 우리 몸의 느낌을 일컫는 것이라고 극단 창단 선언문에 명시하고 있다. 그렇다 '예술은 미(美)'라는 명제야 말로 오해의 시작이고 이는 예술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실족하게 만드는 이유라고  <예술감상 초보자가 가장 알고싶은 67가지>의 저자 김소영은 말했다. 또 아름답지 않은 다른 예술의 속성은 즉각적이라기 보다는 충격과 사색의 과정을 거친 후에 비교적 더딘 속도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대신 더 깊에 오래 머문다고 했다.


나 또한 10대에 보았던 하나의 전시회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토휀에기" 라는 제목의 그룹전(제목이 정확하지는 않다)이었는데 의미는 "토해내기"정도였던것 같다. 뻘건 피 같은 붉은 페인트와 거칠게 휘갈겨쓴 커다란 글자들. 마치 인간의 내장들이 튀어나온것 같은 느낌의 설치물들. 꿈에 부풀어 막 미술공부를 시작했던 내가 어찌나 놀랐었던지 화실에 돌아와 선생님에게 엄청나게 질문을 해댔던 기억이 있다. 왜 아름다움이 아닌 그런 역겨움과 추함을 표현했는지, 그런게 예술이냐고... 당시 선생님께선 도올 김용옥 선생님이 극단 미추의 이름을 지은 이유와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해주셨던것 같다. 인간의 감정엔 항상 긍정적이고 아름다운것만 있는것은 아니지 않냐고...


암울하고 답답한 날들의 연속이다. 이런 날들이 고마운 이유는 찬란하게 빛나는 날들을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면 이 세상에 좋지 않은 날들은 없는것 같다. 모든 날이 좋았다는 도깨비의 통찰이 놀랍다.

                                                        

너와 함께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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