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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May 05. 2020

매일 매일

1일 1글 시즌4  [episode 37]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감당할 수 없을만큼 많아졌다. 주업이 강연인지라 3, 4월의 모든 스케쥴은 취소가 되었고, 이제 막 대학 신입생이 된 아이도 집에서 온라인으로 대학생활을 시작했으니 하루에 세 끼를 집에서 해 먹을 수 밖에 없었다.


아이가 둘인 전업주부 친구는 싱크대앞에서 전사할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고, 살림에는 문외한인 나 마저도 싱크대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밥을 해 먹고 설겆이를 하고, 물기있는 그릇을 식기 건조대에 나란히 올려놓고, 시간이 지나 그릇에 물기가 사라지면 씽크대 상부장에 그릇을 가지런히 넣어 놓는다. 이 행동을 하루에 세 번 이상 반복한다.


오늘도 건조대 위에서 물기가 마른 접시와 대접을 씽크대 상부장에 넣다가 문득 '또 꺼내어 사용하게 될 것을 구지 집어넣을 필요가 있는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따. 그러면서도 '또 안 집어넣으면 어쩔껀데? 그릇 안 쓰고 밥 먹을 수 있나? 아니 밥 안먹고 살수 있나?' 이렇게 스스로에게 항변하고 나니 이와 비슷한 일들이 내 주변에 널렸다는 걸 알게되었다.


목욕탕의 수건도, 매일 갈아입는 속옷도, 빨아서 말렸다가 개어 서랍장에 넣고, 다시 꺼내 사용하는 패턴의 반복이 아니던가? 수건과 속옷뿐일까? 책상위에 늘어놓은 문구류들도 책상서랍에 들어갔다가 다시 책상위에 나뒹굴고 또 다시 서랍장으로 들어갔다 다시 나온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아주 중차대한 일까지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많은 일들은 빈도와 주기만 다를 뿐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 신화의 시치푸스는 제우스와 하데스를 기만한 죄로 거대한 바위를 산꼭대기에 올려놓아야하는 벌을 받았다. 산꼭대기에 도착한 바위는 다시 산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시치푸스는 다음 날 다시 그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올려야 한다. 어쩜 우리도 시치푸스와 같이 알 수 없는 천형으로 매일 매일을 반복하며 살고 있는것은 아닌가?


힌두교에서는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 더이상 태어나지 않는것을 해탈이라 이야기했고, 불교에서는 속세적인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되는 것을 해탈이라고 했다. 기독교 또한 고통의 세상을 벗어나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구원이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매일 하는 설겆이, 빨래, 직장생활 같이 늘 반복되는 지리한 이 삶에서 벗어나는것이 해탈이요 구원일까?


사랑의 블랙홀 이라는 영화가 있다. 어느 하루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남자의 이야기다. 반복되는 날을 이용해 여자를 유혹하거나 돈가방을 훔치고 축제를 엉망으로 만든다. 그러나 그것도 하루이틀 절망한 주인공은 자살을 기도하지만 결국은 다시 똑같은 날을 맞이한다. 그 반복되는 날들은 주인공에게 무엇을 원했던것일까? 이기심과 자만 가득했던 주인공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고 세상을 향한 인간애를 경험하자 그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 펼쳐진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다. 하루가 반복되고, 일주일이 반복되고, 한달이, 일년이 반복된다. 삶은 우리에게 이 반복을 통해 무엇을 가르치고 싶은것일까? 영화에서마냥 진정한 사랑을 찾기를? 아니 나아가 보편적 인간애와 세계 평화에 기여하기를? 그러나 나는 두 달간의 반복되는 설겆이를 통해 느낀것이 있다.


반복되는 삶은 그대로 반복될지언정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의 반복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실 변화를 기대했던 주변과 환경이 아닌 진짜 변화는 나를 통해 이뤄진다는 것이었다. 지금의 나는 분명 어제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다. 우리의 세포가 그러하고 우리의 생각이 그러하다. 나는 분명 어제 보다 조금 더 성숙해졌을거고 나는 분명 어제보다 조금 더 현명해졌을거고, 나는 분명 어제보다 더 숙련되어졌을거고(설겆이에), 나는 분명 어제보다 더 너그러워졌을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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