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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May 09. 2020

오늘은 젖은 휴지같이 지낼래

1일 1글 시즌4 [episode 41]

새벽에 두 번이나 깼다가 다시 잠이 든 탓에 아침 기상은 영 찌뿌둥했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비 오는 날 듣기 좋아"라는 친구의 카톡과 함께 몇 곡의 노래 링크가 도착해있다. 


Rain OST  "A tail only the rain knows"

Finding hope "3:00 am"

Elaine Kim "Raindrops"


가만히 누워서 친구가 보내온 음악을 하나씩 들었다. 

아~ 너무..... 좋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기 싫다. 

비에 젖은 어젯밤 귀갓길에 그만 마음마저 젖어버려

오늘은 그냥 젖은 휴지처럼 축축하게 침대에 붙어 있을래.

간절기용 오리털 이불을 발치로 밀어내고 보드라운 얼룩말 무늬 극세사 담요를 턱밑까지 끌어올리고

친구의 또 다른 선곡 George winston의 Rainsong의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정오가 다 되어 참다못한 아들이 스파게티를 만들고

식탁에 포크만 들고 달랑 앉아 그릇을 싹싹 비운 나는


"오늘은 엄마가 아무것도 하기 싫다. 그래서 아들 밥도 못 챙겼네...

이렇게 쳐져 있으면 안 되는데..."라고 하자


"그런 날도 있어야지 엄마, 괜찮아"


짜르르해지는 내 마음을 아는지 아들이 사 온 카네이션 바구니의 핑크빛 꽃잎들이 살랑거린다. 


하루 종일 빗소리와 바람소리, 사람들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누워있다가 

가까스로 밀린 설거지를 하고, 이렇게 마음을 놓아버리면 안 되는데... 자괴감도 좀 느끼다가

문득 구원같이 떠오른 영화 '인터스텔라'


오늘 밤엔 인터스텔라를 다시 봐야겠다. 

그리고 내일은 다시 나의 우울과 나약함에 저항해야지. 



영화에 나왔던 딜런 토마스의 시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시오 - 딜런 토마스(1914~1953)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시오

노인들이여 저무는 하루에 소리치고 저항하시오

분노하고 분노하시오, 꺼져가는 빛에 대해.



지혜로운 자들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어둠의 순리를 깨닫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더 이상 번개처럼 번쩍이지 않기에

밤이 편안하다고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시오.



선한 이들은 마지막 파도가 지난 후,

좋고 나빴던 나약한 행적들이

푸른 바다에서 얼마나 빛나게 춤출 수 있었는가를 한탄하며

분노하고 분노하시오, 꺼져가는 빛에 대해.



떠나가는 태양을 붙잡고 노래하던 자유로 운자들은,

태양이 떠난 것을 보고 비로소 슬퍼하고 있음을 깨닫지만

슬퍼하면서,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시오.



죽음을 앞둔 채 눈이 멀어 수심에 찬 이들은,

그들의 먼 눈에 빛이 별처럼 불타고 화사할지 모르지만

분노하고 분노하시오, 꺼져가는 빛에 대해.



그리고 당신, 저 슬픔의 높이에 있는 내 아버지,

이제 당신의 성난 눈물로

나를 저주하고 축복하기를.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시오

분노하고 분노하시오, 꺼져가는 빛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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