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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May 30. 2020

천천히, 걷다 부끄러워...

1일 1 글 시즌4  [episdoe 62]

어느새

여름 냄새

신호등의 그림자에 숨어 보행신호를 기다린다.

흐린 주말을 지난 도시의 한낮은

뜨겁게 흔들리며 증발하고 있다.   

신호등 그림자는 도심 속 오아시스.

가느다란 그림자 밖으로 

튀어나온 가방 그림자는

낙타의 혹 같아

사자도, 아이도 되지 못하는

삶의 짐, 그래도 잠시

그 그늘에 마음을 내려놓고 입술에 침을 바른다.


나.. 누구에게 그늘이 되었을까?

마스크 속의 갈라진 입술

지치다가 이젠 지치기도 지쳐 무력해진 

난 

이미 메마르고 좁아 

한 사람이 쉴만한 그늘도 만들지 못했을 텐데...  


멈춰 선 사람들은 초록불이 켜질 것을 어찌 알았는지

한 발 앞서 우르르 차도로 뛰어들고

치열한 도시의 열기 속으로 선뜻 발내딛기 두려워

한참을 우물쭈물하다 점멸하는 녹색불에

가까스로 발을 내딛는다.


세상은 뜨겁고

그늘은 좁다.

그래서 모두 그리 바쁘게 뛰어다니는구나

천천히 걷는 내 발걸음이

문득 부끄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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