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수정 May 31. 2020

제사 상 안차려줄까봐 그랬어? 보고싶어, 할머니.

1일 1글 시즌4 [episode 63]

친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3년 동안 치매를 앓았다. 큰 며느리인 엄마가 치매 수발을 했다. 그 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치매간호을 한 사람에게 어떤 훈수도 두어선 안 된다. 아니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도 그 의도가 동정이건 타박이건 교육이건 간에 절대 일정한 선을 넘으면 안 된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작은 집과는 절연했다. 치매를 앓던 3년 사이에 몇 번 작은 집에 머무시는 동안 두 형제와 며느리 사이를 완전히 갈라놓으셨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할머니는 어느 날 작은 집에 가시고 싶다고 떼를 쓰신다. 말릴 수도 없고, 며칠이라도 다녀오시면 엄마가 조금은 쉴 수 있겠다 싶어 필요한 짐을 싸드린다. 할머니는 꼭 자신이 사용하던 이불을 싸서 가야 한다고 고집을 피우신다. 어쩔 수 없이 이불을 싸서 같이 보내드리면 작은엄마는 시어머니에게 이런 거 까지 뭐하러 싸 들고 오셨냐고 타박을 한다. 그러면 할머니는 '큰며느리가 억지로 싸서 보내더라. 여기서 살라는 말인가 보다'라고 말한다.


치매 환자는 자신이 먹는 음식의 양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정확한 시간에 정해진 양만큼 밥을 차려 드려야 한다. 그래도 늘 배가 고프다고 한다. 어느 날 친척들이 안부 인사를 하러 집에 오면 할머니는 큰며느리가 밥을 안 차려 준다고 읍소하며 친척들의 동정표를 얻는다. 어느 날 미국에 사는 손녀, 그러니까 내 사촌 언니가 전화를 해서 이렇게 말한다. "지난 밤 꿈에 할머니가 나와서는 배고파 죽겠다고 하소연하더라" 작은집 식구들로부터 전달된 정보가 꿈의 원인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막 결혼을 한 내가 남편과 친정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할머니가 새벽에 화장실에 다녀오시다 넘어지는 바람에 얼굴에 상처를 입으셨다. 마루에서 자고 있던 손주사위에게 다가가 그를 흔들어 깨운다. 남편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눈을 뜨니 피를 뚝뚝 흘리는 백발의 할머니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소스라치게 놀라 단발의 비명을 지르자 오히려 할머니가 손주사위를 보고 "너 누구냐? 도둑이지!!!"라고 외쳤다.


어릴 적 할머니는 나를 아꼈다. 동네 할머니들과 꽃놀이 갈 때도 나를 데리고 갔고 우리 아빠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삼촌의 군대에 면회를 하러 갈 때도 나를 데리고 갔다. 할머니의 고향인 부산에 내려가 장사를 하시겠다고 결정하시곤 나를 데리고 가 몇 년을 부산에서 사셨다. 그리고는 어느날 시장통에서 나를 잃어버렸다 찾는 바람에 서울의 아들 내외를 볼 낯이 없었는지 대번에 다시 서울로 나를 데리고 왔다. 양력 7월, 음력으로 하면 5월 28일에 태어난 나를 영특한 아이라고 우기며 동사무소에 담배 한 보루 사가지고 가서 기어이 7살에 취학 통지서가 나오게 만들었다.


우리 손녀 학교 졸업하는 거 보고 죽어야지, 우리 손녀 대학교 갈 때까지만 살아야지, 우리 손녀 시집가는 거 보고 죽어야지... 하셨다. 결혼하기 전, 나는 가끔 할머니 혼자 주무시는 게 안타까워 내 방이 아닌 할머니 방에 가서 잤다. 할머니의 길고 외로운 밤의 유일한 친구였던 담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면 내 목이 칼칼했다. 그래도 할머니는 내가 자기 옆에서 잔다는 것이 내심 좋으셨던 모양이다. 가끔 친척 할머니들이 오면 내 이야기를 하시며 우리 손녀가 속이 깊다고 자랑하셨다.


내가 결혼을 한 첫해 5월, 지방 연수원에 워크샵을 갔다.  내가 해야 할 강의는 2박 3일짜리 과정 중 첫날과 둘째 날의 오전에 들어있었다. 둘째 날 새벽에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 오전 강의를 후배 강사에게 맡기고 청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고속버스를 탔다. 이른 시간이어서 버스에서 내내 눈물을 흘리는 나를 쳐다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할머니가 떠나셨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오래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던 친척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울다가 한숨 쉬다가 술을 마시다가 그렇게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까만 상복을 입은 우리 엄마는 두 뺨이 움푹 패인 채 피곤해 보였지만 또 한편으론 평온해 보였다.


그런 엄마가 내게 말했다.

"당신 제사 날 잊어버려 제사상 안 차려 줄까봐 손녀 딸 생일날 돌아가셨어? 하여간 노인네... 참..."

음력 5월 28일, 그렇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돌아서는 엄마의 눈에 눈물이 반짝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천천히, 걷다 부끄러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