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수정 Jun 04. 2020

You're so much like me, 미안해

1일 1글 시즌4 [episode 67]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은 남편이 아닌 나를 닮아서 조금 무뚝뚝하다. 가끔 아주 마음 깊은 면모를 보여 나를 감동시키긴 하지만 상냥하고 곰살맞은 면은 없는것이 나랑 똑같다. 지 아빠를 닮았다면 어느 자리, 누구를 만나도 금새 친구가 되어버려 어깨동무를 하고 길을 걸을텐데, 나를 닮은 듯한 시크한 면은 가끔 나를 서운하게 만들기도 한다.  


내가 남편을 만나 1년 6개월 연애를 하고 양가 어른들이 만나 상견례를 하던 날, 남편은 식사 자리가 끝나고 얼큰히 술이 취한 우리 아버지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걸었다. 이후에도 우리 엄마, 아빠와 술이라도 한 잔 걸친날이면 두 분을 모시고 노래방을 가서 탬버린도 흔들고 노래도 부르고, 엄마 아빠의 입에 새우깡도 넣어주었다. 나로써는 엄두도 못내는 살가운 짓을 내 남편이 대신 했다. 


그런데 하나 뿐인 아들은 지 아빠가 아닌 나를 조금 더 닮아 시크하고 매사에 꼬장꼬장하다. 논리적으로 따지고 본인이 이해해야 받아들이는 모습들은 조금 밉기도 하지만 꼭 나와 같은 모습이다. 


Ben folds의 still fighting it 을 들을때마다 눈물이 핑도는 이유는 그 노래의 가사 중 "you're so much like me, I'm sorry. 너는 나를 많이 닮았구나. 미안해"가 너무 공감되기 때문이다. 


그런 아들과 단 둘이 동네에 새로 오픈한 막창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소주를 마셨다. 소주 2병과 맥주 2병. 빈 속에 마시기 시작한 소주는 덩치가 산 만한 아들을 취하게 만들었다. 아들은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내 손을 꼭 잡고 조금은 비틀거리며 괜히 많이 웃었다. 술기운에 딱 나만큼 말이 많아지고 웃음이 조금 헤퍼진 아들은 집에 들어가면 괜찮아질거라 자신하더니 집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져 잠이 들었다.


막창집에서 계산을 하던 사장님이 아들에게 몇 살이냐고 묻더니 스무살이란 아들의 대답에 정말 좋을 때라고 진심을 다한 말에 나 또한 덩달아 그렇다고 맞장구를 쳤다. 정말 좋은 나이 스물! 아쉽게도 그 땐 그나이가 좋은 줄 모르겠지. 그렇게 기다리던 대학생활을 자기 방 안에서밖에 펼칠 수 없는 비운의 20학번. 내일 아침 혹시 느낄 지 모를 숙취는 이제 막 시작하는 진짜 인생의 신호탄이란걸 알게될까 엄마는 안타깝고 애틋하기만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사 상 안차려줄까봐 그랬어? 보고싶어, 할머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