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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May 06. 2020

계속 뻔뻔하고 부끄럽겠습니다

1일 1글 시즌 4 [episode 38]




초등학교 몇 학년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국어시간에 시(詩)를 배웠다. 시 수업이 끝나갈 때 즈음 직접 시를 써서 제출하라는 선생님의 주문에 '청소시간'이라는 시를 써서 제출했다. 다음 국어시간이 돌아오자 선생님께서는 "우리 반 친구 중에 아주 시를 잘 쓴 친구가 있으니 오늘은 그 친구의 시를 가지고 수업을 하자"라고 하셨다.


칠판에 그 시를 옮겨 쓰시는 선생님. 제목 '청소시간'


그 날은 내가 쓴 시가 수업의 텍스트가 되었고, 구구 절절 이 시가 잘 쓰인 이유를 선생님께서 설명하셨다. 아이들은 끄덕끄덕거리며 내 시를 자신의 노트에 옮겨 쓰고 군데군데 줄을 긋거나 네모로 꽉 묶고 별표를 치기도 했다. 물론 너무 오래전 일이라 시의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80년대 초반이었나? 삼성전자에서 포터블 카세트 플레이어 "마이마이"를 출시했다. 당시 돈 좀 있는 친구들은 소니 '워크맨'을, 일반적으로는 삼성 '마이마이'를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마이마이도 꽤 비싼 금액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삼성에서 마이마이의 새로운 모델이 출시되었는데 마케팅의 일환으로 '노래 가사 공모전'이 열렸다. 대상으로 뽑힌 가사는 상금은 물론 당시 가장 핫한 그룹 '들국화'가 곡을 붙여 음원(?)으로 출시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들국화가 곡을 써준다니! 나는 며칠 간 꿈에 부풀 가사 공모에 지원했지만 대상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순위권 안에 들어 상품으로 '마이마이' 의 새 모델을 경품으로 받았다.


나이가 들어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었을때 즈음 언론진흥재단에서 '신문논술대회'라는 것이 열렸는데 종이 신문이 일상생활에 어떤 의미인지를 에세이형태로 공모하는 것이었다. 지원분야는 일반부와 학생부. 일반부와 학생부의 최고상은 각각 대상, 그리고 두 개의 부를 통합하여 '최우수상'을 뽑는다고 하였다.


어느 날 02로 시작하는 낯선 전화번호가 발신자로 찍혀 전화가 왔다. 마케팅 전화겠거니 생각했는데, 왠걸 내가 공모전에 제출한 글이 일반부 대상이란다. 상금이 무려 100만원!!! 마침 그 당시 참여하고 있던 글쓰기 모임에 우연히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되어 상금 중의 일부는 '소고기'로 날라가 버렸지만 기분은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아니 좋아한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지만 글 쓰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이 들수록 글을 쓴다는 것이 무척이나 지난한 일이며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역량을 갖는 일이 수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글쓰기 관련 책을 읽어 보지만 저자의 비법(?)들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 하나같이 공통되게 이야기하는 기본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그것은 "일단 쓰는 것"이다. 그것도 규칙적으로! 질보다는 양!  


생각이 고이도록 시간을 가진 후 좋은 글감이 떠오를 때 쓰는 게 아니라 일단 무조건 쓰는 것. 글은 머리로 쓴다기보다 손가락으로 엉덩이로 쓴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쓴다는 계획을 브런치에서 실천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브런치는 매우 감사하고 유용한 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나의 이 다듬어지지도 않은 신변잡기의 글들을 누군가 읽고 '라이킷'을 누르고 '공유'를 한다는 사실이다. 아! 그럴 때마다 나는 부끄럽다. (그렇다고 라이킷이 없으면 그건 또 왜 이리 서운한지)


나는 브런치의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어볼 때마다 생각의 깊이와 표현의 유려함에 놀란다. 정성껏 시간을 들여 좋은 정보와 의미 있는 사유의 시간을 제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글 속에 담겨있다. 그런 글을 읽으면 감사함의 표시로 라이킷을 누른다. 그래서 나는 나의 글에 라이킷을 눌러주는 분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아 감사하면서도 더불어 부끄럽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작가의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재능을 연마하기 전 뻔뻔함부터 기르라고 말하고 싶다."라는 하퍼 리의 말을 조언 삼아 계속 뻔뻔하고 부끄러울 예정이다. 나의 이 뻔뻔함이 어느 순간에는 밀도 있고 아름다운 나만의 문장으로 부활하기를 바라고, 나의 이 부끄러움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연민의 힘으로 진화하기를 바라면서 나는 오늘도 손과 엉덩이로 글을 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역방향 좌석에 앉아 나는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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