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글 시즌4 [episode 39] 필사노트 '김선우의 사물들'
나는 이 세계에 우연히 오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모든 우연은 필연이 몸을 감추는 방식이며 또한 몸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까마득한 시간 여행을 통과해,
기나긴 인과의 여정을 거쳐 우리는 지구라는 이 별에 다다른 것이 아닐까.
내가 당신과 만나거나 혹은 스쳐갈 때,
하나의 사물이 다른 사물의 옆에 가지런히 놓이게 되거나 혹은 포개질 때,
그 모든 순간들 속에서 생의 지도가 들숨과 날숨을 쉬며
그 어딘가를 향해 조금씩 뿌리를 뻗고 있는 중인 것이다.
매일 매 순간 조금씩 변하면서 아주 오래전부터 그려져온
몸의 지도, 마음의 지도, 영혼의 지도, 계절의 지도, 인생의 지도, 우주의 지도...
우주를 이루는 모든 질료들이 당신과 내 몸에서 그대로 발견되는,
어느 날 문득 발견한 내 몸의 점 하나가 별을 부르고
풀씨 하나가 지구를 떠받치며
당신의 몸이 우주가 되는 지극한 비밀을 갖지 못한다면
생은 얼마나 밋밋하고 팍팍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