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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May 10. 2020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사과인가?

1일 1글 시즌4 [episode 42]  필사노트; 호모 아르텍스

(예술의 달인)호모 아르텍스 中 / 채운 지음




무언가를 보고 느끼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도, 자연스럽지도 않다. 우리는 있으니까 보는 게 아니라 '볼 수 있는 만큼'만 본다. 부딪힌다고 다 느껴지는게 아니라 '느낄 수 있는 만큼만'느낀다. 즉, 보고 느끼는 행위는 경험, 환경, 계급, 성(性), 시대 등의 조건속에서만 가능하다. 내가 세계를 보고 느끼는 방식은 사실 '나만의' 것이 아니라 나를 구성하는 모든 타자들의 것이다. 때문에 자신이 보고 느끼는 것을 확신하는 건 위험하다. 지층처럼 이미 단단하게 굳어버린 사회적 관습과 기억의 결과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사과를 그리려거든 네 자신이 먼저 사과가 되어라"라는 세잔의 말을 기억하라. 그는 말한다. 사과 하나를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 자신은 먼저 하얀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는 온갖 견해들과 이미지들을 먼저 물리쳐야 했노라고. 우리는 이미 '사과'가 뭔지, 그 맛이 어떤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 앞에 놓인 '지금 바로 그 사과'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 사람이나 사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견해와 지식들 때문에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자기가 볼 수 있는 딱 그만큼만 본다. 그 '자기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면 타자들의 세계로 진입할 수 없다는, 사과 한 알과도 제대로 만날 수 없다는게 세잔의 깨달음이었다. 무언가가 생성되려면 동시에 다른 무언가는 파괴되고 해체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불변의 자연법칙이다. 우리 역시 그 자연법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세계의 표상이 아니라 세계 자체에 대한 질문이다. 가장 감각적이고 가장 직접적인, 그래서 매개없이 바로 신경체계를 뒤흔드는 강력한 질문이다. 당신이 믿고 있는 가치를 의심하라! 당신의 감각과 감정을 의심하라! 그리하면 당신 앞에 이 세계가 '있어야하는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펼쳐지리라.


시간은 어떤 공간속에서, 어떤 관계와 더불어 펼쳐지느냐에 따라 속도도 굴곡도 다르다. 자,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더 많은 시간을 어떤 식으로 펼칠 것인가. 끝도 없이 욕망을 부추기는 소비의 회로에서 벗어나 지금이야말로 전례없는 무용함을 창조할 때다. 쉴 때조차 더 유용해지기를 압박하는 자본의 회로에서 벗어나 모든 가치로부터 자유로운 낯선 자신을 만나고자 한다면 '무용지용'의 세계인 예술과 접속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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