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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May 14. 2020

인간성의 발견

1일 1글 시즌4 [episode 46] 필사 노트 '시각예술의 의미'中






자주 가던 국회 도서관이 개관을 하지 않아서 집 근처의 남산도서관을 머리털 나고 처음 가봤다. 다행히 열람실의 좌석을 한 칸씩 비워서 앉는 형식으로 오픈을 했기 때문. 오래간만에 도서관 냄새 맡으며 책을 읽다가 외부의 휴식공간으로 나오니 남산타워가 바로 눈앞에 서있다. 사진상으론 꽤 멀리 있는 것 같이 보이는데, 실제로 보면 정말 가까이 있다. 그게 왜 그리 신기했던지, 집에서 수업 중인 아들에게 사진을 찍어 보냈다. 남산타워가 너무나도 가까이 있다고. 그랬더니 아들의 답장 "남산 도서관이잖어" 


오늘의 글은 필사 노트로! 

그런데 미술사학자의 글이 왜 이리 아리스토텔레스 같으냐고! 니코마코스 윤리학 읽을 때의 그 뭐랄까 아! 하며 무릎을 치는 느낌...




시각예술의 의미 / 에르빈 파노프스키


역사적으로 인간성(humanitas)이라는 단어는 확연히 구별되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 인간과 인간 이하의 어떤 것과의 대비에서 생겨나고, 둘째, 인간과 인간 이상의 어떤 것과의 대비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첫 번째 경우의 인간성은 가치를 의미하고, 두 번째 경우는 한계를 의미한다. 


가치로서의 인간성 개념은 젊은 스키피오가 주도한 모임에서 형성되었고, 그 후 가장 명시적인 대변자 역할을 키케로가 맡았다. 그 개념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인류(homo)에 속하면서도 교양인(homo bumanus)으로서는 이름값도 못하는, 즉 경건함(pietas)과 교육--도덕적인 가치를 경외하고 오직 '교양'이라는 의심스러운 단어에 한정될 뿐인 학식과 기품의 우아한 융합--이 결여된 야만인과 속물로부터 인간을 구별한다. 


그러나 중세에 이르러 인간성이 동물성이나 야만성보다는 신성에 대립되는 것으로 여겨짐에 따라 그 개념은 변화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그것과 결부되는 특성은 여리고 덧없는 특성, 즉 인간의 약함(humanitas fragilis)과 인간의 무상함(humanitas caduca)다.


그리하여 르네상스 시대에 인간성 개념은 처음부터 두 가지 면을 갖추게 되었다. 인간 존재에 대한 새로운 관심은 인간성과 야만성, 또는 야성 사이의 고전적 대조의 부활, 그리고 인간성과 신성 사이의 중세적 대조의 잔존 모두를 토대에 두었다. 


마르실리오 피치노는 인간을 '신의 지성에 관여하는, 그렇지만 육체에서 작동하는 이성적인 혼'이라고 정의했으며, 아울러 인간을 자율적이면서도 유일한 존재라고 정의했다. 


한편 피코 델라 미란돌라의 유명한 연설 '인간의 존엄성에 관하여'는 결코 이교 사상의 기록이 아니었다. 피코에 따르면 신이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 놓았기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의 위치를 의식할 수 있고, 그래서 '어디로 향할 것인지'를 자유롭게 결심할 수도 있다. 피코는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다'라고 말하지는 않았으며, 흔히 말하는 '만물의 척도로서의 인간'이라는 고전적인 명구에도 기대지 않았다.


이렇게 인본주의의 탄생은 인간성이라는 양면 가치적 개념에서 비롯했다. 인본주의는 하나의 운동이기보다는 인간의 존엄에 대한 확신이라고 정의될 수 있는 하나의 태도로서, 인간적 가치(합리성과 자유)를 주장하고 인간적 한계(오류와 약함)를 용인하는데 기반을 둔다. 여기에서 두 가지 기본 조건, 즉 책임과 관용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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