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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May 13. 2020

그림 감상 하는 법

1일 1글 시즌4 [episode 45]

미술관에 갈 때는 혼자 간다. 가끔 친구와 같이 가기도 하고 아이를 데리고 가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혼자 관람하는 편이 좋다. 이유는 함께 간 사람과 감상하는 시간에 차이가 있어 나보다 먼저 관람을 마쳐버린 친구 때문에 서둘러 미술관을 나와야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의 경우 입장료가 대부분 15,000원 정도인데, 영화 한 편을 보는 가격과 얼추 비슷하다. 영화 한 편을 보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2시간 남짓, 얼마 전 보았던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은 171분, 그러니까 거의 3시간이었다. 그런데 비슷한 금액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미술관은 길어야 30분 정도의 시간에 모든 작품을 감상하고 나온다. 실제로 일산 아람누리 미술관에서 현재 진행 중인 '프렌치 모던; 세잔에서 마티스까지'는 코로나 19 때문에 사전 예약을 통해 관람객의 수를 제한하는데 30분 간격으로 30명만 입장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30분 이상의 관람을 불허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대략 30분 정도의 시간에 관람을 끝내라는 무언의 규칙처럼 들리기는 한다. 아무튼 영화에 비해 가성비가 떨어지는 것이 미술관 관람인것 같은데, 가성비보다 가심비가 더 떨어진다고 말하는 지인들이 많다.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오면 가슴이 후련해지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몇 일간 설레는 마음을 갖게도 만드는데 미술관엔 아무리 다녀봐도 별 감흥 같은게 느껴지지 않으니 유럽의 훌륭한 미술관을 가도 뮤지엄 렉(museum legs)1)만 경험할 뿐 그림 감상은 나와는 멀게만 느껴진다는 것이다.  


브루클린 미술관 컬렉션 59점이 전시된 이번 '프렌치 모던'전의 경우 30분의 관람시간이 주어진다면 한 작품당 30초를 할애해 감상할 수 있다. 엄청 짧은 시간같이 느껴지는가? 2001년 리자 스미스와 제프리 스미스 교수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한 실험에 의하면 관람자가 작품을 감상하는 평균 시간은 약 17초였다고 한다. 그러니 30초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꽤 긴 시간 작품 앞에 머물러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문제는 30초라는 시간이 아니다. 어떤 그림 앞에서는 30초가 아니라 3분을 서 있어도 아무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끔 아주 맘에 드는 그림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 그림이 맘에 드는 이유는 '색감이 맘에 들어서', '너무 사실적으로 묘사를 잘해서', '어딘가에서 본 적 있는 그림이라서', '그냥 나도 모르게 끌려서'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우리는 어디선가 들은 적 있었던 말을 떠올린다. '그림은 굳이 해석하려 하지 말고 그냥 느끼면 되는 거야.' 그런데 해석은커녕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으니 그게 문제 아닌가?


그림을 감상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다. 아니다 생각보다 쉽지 않다. 당신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건간에 그림을 감상하는 즐거음을 느끼려면  몇 개의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그것을 좀 세속적인 행동에 비유해 보자면 술을 즐기는 과정과 닮아있지 않을까싶다.


나는 맥주를 좋아한다. 독주를 잘 못 마시기도 하지만 맥주의 쌉싸름하고 시원한 그 맛이 술을 마시는 이유인 스트레스 해소에 제대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맥주를 즐긴 것은 아니다. 성인이 되고 난 이후부터 맥주를 조금씩 즐겼고, 우리나라 맥주의 양대산맥 '하이트'와 '카스'의 시대를 지나 전 세계의 맥주를 국내의 슈퍼마켓 어디에서나 사게 된 지금까지 맥주의 다양성을 즐기고 있다. 그러면서 맥주의 맛을 조금씩 구분할 수 있게 되었고, 특별히 선호하는 맥주의 스타일이 생기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맥주를 마시는 일은 즐겁다.


그림을 감상하는 일 또한 이와 비슷하다. 처음엔 내가 무슨 그림을 좋아하는지 왜 그 그림이 맘에 드는지 모른다. 자주 보고 음미하고 즐기는 시간이 필요하다. 또 다양한 시대, 화가, 화풍의 그림들을 두루두루 만나보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내게 말을 걸어오는 그림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내게 말을 걸어오는 그림을 만나기 전에 우리는 먼저 그림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는 것. 새 학기가 되어 생판 처음 본 친구들 사이에 앉아있는 며칠의 시간이 얼마나 불편한지 우리는 잘 안다. 그럴 때 어떤 친구가 말을 먼저 걸어와주면 얼마나 고마운가? 훨씬 빨리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러니 그림에게 먼저 말을 거는 친구가 되자. 그림과 빨리 가까워질 수 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그림에게 말을 거는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미술사학자 에르빈 파노프스키(1892~1968)의 분석 3단계를 참고하여 적용해본 방법이다. 원래 파노프스키의 도상해석 방법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에 맞게 구상된 것이다. 즉 중세를 지나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된 시기인 르네상스, 그 인본주의의 개념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그림을 감상하는데 본질적인 부분들은 맥락을 같이 하는듯하여 감상에 적용해 볼만하다.


파노프스키는 작품을 분석하기 위해서 맨 처음 전(前)도상적 묘사(pre-iconographic description)를 두 번째 단계로 도상 분석(Iconographic analysis)을 마지막으로 도상학적 해석(Iconological Interpretation)의 단계를 제시했다. 매우 복잡한 말처럼 들리는데, 먼저 '도상'이란 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도상이란 쉽게 말해 '그 그림에 담겨 있는 뜻'이다. 화가가 어떤 그림을 그렸다는 것은 '시각적인 언어'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각적 요소가 뜻하는 바를 도상, 그리고 그 도상을 가장 이해하기 쉽게 해주는 것은 화가가 그 도상을 만들기 위해 상징물로 사용한 것들이다. 실제로 르네상스 시대에 그려졌던 그림들은 해석하는일이 쉽지 않다.


아래의 그림은 영국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의 그림이다.

파노프스키의 작품 분석 3단계를 활용하여 그림을 감상해보자.


1단계는 전도상적 묘사이다. 도상이라는 어려운 말들 다 잊어버리고 보이는 것 그대로를 묘사해보는 것이다.(그림 속에 무엇이 보이는지 최대한 많이 찾아보기)


예를 들어 이렇게 하면 된다. 여자아이 두 명이 길가에 앉아있다. 두 아이가 같이 숄을 머리 위에 덮고 있다. 아이들의 옷이 낡아있다. 왼쪽 아이는 눈을 감고 있다. 들판이 황금색이다. 왼쪽 아이의 무릎엔 손풍금이 놓여있다. 들판에 새들이 있고 멀리 염소가 보인다. 뒤쪽의 언덕 위엔 붉은색 지붕의 저택이 보이고  하늘에 쌍무지개가 떠있다. 무지개 뒤로 먹구름이 보인다. 왼쪽 소녀는 오른손으로 꽃을 잡고 있고, 두 아이는 손을 꼭 잡고 있다. 오른쪽 아이가 고개를 돌려 뒤를 보고 있다. 왼쪽 아이의 숄에 나비가 앉아있다. 그리고 그 아이의 목엔 종이 같은 게 붙어있다.


첫 번째 단계에서 주의할 점은 단순한 묘사를 이어나가는 것이다. 그것을 해석하거나 추측하지 않는 것이다. 가량 '두 아이는 자매인 것 같다' 라던가 '비가 온 뒤 하늘이 개어 무지개가 떴다' 같은 인과관계없이 단순히 보이는 것을 객관적으로 묘사해보는 것이다. 자칫 두 아이가 자매인 것 같다는 묘사로 시작하게 되면 설사 그 말이 맞다 하더라도 우리는 자매라는 조건에 부합하는 단서를 찾게 될 것이다. 최대한 많이 오래 구석구석 그림을 들여다보기 위해 보이는 것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찾아보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도상 분석이다. 첫 번째 단계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찾아냈다면 그것들이 갖는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단계에서 우리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두 번째 단계에서 하는 것이다. 첫 번째 단계를 충실히 수행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림 왼편의 여자아이가 오른손으로 꽃을 만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고 턱 아래 달린 종이쪽지도 숄에 앉아있는 나비도 들판의 염소와 새들도 놓쳤을지 모른다.


두 아이는 아마도 나이가 서너 살 정도 차이나는 자매인 듯하다. 아이의 치마가 군데군데 낡아있다. 가난의 증거다. 낡은 치마차락에 군데 군데 더러운 얼룩이 묻어있는 걸 보면 갑자기 내린 비에 숄을 머리에 두르고 임시방편으로 비를 피했나 보다. 무릎 위에 손풍금을 보니 아마도 길거리에서 연주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아이들인듯 하고 불어난 도랑의 물이 밝게 빛을 반사하는 걸 보니 비는 그쳤나보다.  그림의 가장자리로 먹구름이 몰려가고 있고 먹구름이 밀려닌 하늘엔 쌍무지개가 떠있다. 이런 아름다운 장면을 발견하고도 언니는 눈을 감고 고개를 살짝들어 무언가에 몰입해있는걸 보니  앞이 보이지 않는가보다. 동생이 언니에게 무지개의 모습을 설명하고 언니는 그 단어 하나하나를 새기려는 듯 집증해 그 이야기를 듣고 있다. 두 자매의 꼭 잡은 손, 작은 들꽃을 잡고 있는 언니의 오른손, 숄에 앉아있는 나비가 하늘에 걸린 쌍무지개와 더불어 그 자매에게 다가올 희망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곡식이 익어가는 풍요로운 황금빛 들판 앞에 앉은 두 아이, 청각을 통해 그 순간을 느끼려 하고 있는 모습 덕분에 그림을 관람하는 우리는 시각적인 자극과 더불어 청각적인 자극까지 경험할 수 있다.


세 번째 단계는 도상학적 해석이다. 이 단계는 사실 공부가 좀 필요한 부분인데 이 단계의 감상이 더해지면 그림 감상의 즐거움이 폭발하게 된다. 이 그림은 영국의 '라파엘전파' 존 에버렛 밀레이의 '눈먼 소녀'라는 작품이다.

(The Blind Girl / John Everett Millais/ 1854~1856 / oil, canvas / 62.2 x 82.6 cm  Birmingham Museum and Art Gallery, Birmingham, UK)



존 에버렛 밀레는 누가 보아도 반할만한 아름다운 그림들을 그렸다. 존 에버렛 밀레이에 대한 내용은 아래 참고

https://brunch.co.kr/@insightraveler/24



첫번째 단계에서 발견한 소녀의 목에 달린 쪽지에는 '장님을 불쌍히 여기세요'라는 글이 쓰여있다. 손풍금 연주를 하며 돈을 벌어 살아가고 있는 아이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그러나 가난한 아이들임에도 표정만큼은 애틋하고 사랑스럽다. 가난한 두 아이의 모습을 결코 누추하기 그리지 않은, 아니 오히려 고귀하고 우아하게 그린 존 에버렛 밀레이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지는 듯하다.


존 에버 레 밀레이는 당시 문학가인 존 러스킨(1819-1900)으로 부터 후원을 받으며 그와 친교 하였는데, 나중엔 존 러스킨의 아내와 재혼을 한다. 존 러스킨은 자연에서 벌어지는 아름다운 일은 하느님이 계획하고 있는 신성한 일과 관련이 있다고 믿었다. 아마도 그러한 가치의 영향력으로 존 에버렛 밀레이는 이 그림 속에 무지개를 넣었을 것이고 이 그림을 만난 관람객은 희망과 따뜻함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나비, 들 꽃, 무지개라는 상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시대와 문화에 따라 상이하겠지만, 그림이 그려진 시대에 맞게 상징을 해석하는 단계가 도상학적 해석단계다. 이 그림은 1854년에 그려졌기에 존 에버렛 밀레이가 그려놓은 상징을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그림 속 상징들이 의미하는 도상을 해석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어려울수록 이해를 하고 난 후의 희열은 배가된다. 그리고 이미 도상학이란 학문을 통해 많은 도상들을 해석하는 방법들이 나와있기때문에 우리는 검색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등 약간의 수고로움만 제공하면 된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말아야 할 것이 있다. 예술 감상의 목적은 나의 감정과 생각이 예술가의 제작 의도에 부합하는 것인가를 알아보는것이 아니다. 감상을 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정보와 감정들은 그것 자체로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더 나은 질문을 발견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도구나 기술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나와 다른 해석을 존중함으로 삶을 바라보는 나의 시야를 넓혀가는 과정으로 삼아야한다.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그 중 파노프스키의 작품분석 3단계를 토대로 한 방법으로 내 일상의 주변에서 보아오던 그림을 다시 한 번 감상해보시길. 지금까지 아무말 없던 그 그림이 갑자기 말을 걸어올지도 모르니 놀랄 준비 단단히 하시고...





1) 뮤지엄 렉(museum legs):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에서 천천히 걷거나 서있는 동작을 반복해서 해야만 하는 경우에 느껴지는 다리의 통증이나 피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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