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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May 16. 2020

초상화 감상하는 법 2

1일 1글 시즌4  [episode 48]

<이어서>


독일의 철학자인 하르트만에 의하면 예술작품은 전경과 후경의 두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다. 색이나 선, 재료의 사용 등 우리가 시각을 통해 인지할 수 있는 실재적 면이 전경이라면 전경에 묘사된 인물의 외적, 물적 혹은 심적이고 정신적인 계층을 후경이라고 한다. 하르트만은 후경을 다시 세분화했는데 인물의 외적이고 물적 계층을 묘사한 제1층, 인물의 동작이나 표정등을 보여주는 제2층, 인물이 성격이나 심리적인 상태를 보여주는 제3층, 인물의 본질과 이념등 정신적인 것을 보여주는 것이 제4층이다.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작품의 전경을 통해 예술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후경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단순히 전경을 통해 시각적인 쾌감만을 경험하는것이 아닌 후경의 깊은 층으로 내려가며 예술가와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복잡한 이론이니 각설하고 하르트만의 층이론을 대입해 작품을 감상해보자. 


2019년 4월 서울시립미술관에는 크리스티 경매에서 현존작가로 최고가를 경신한 '데이비드 호크니' 전이 열렸다. 한국사람들에게도 꽤 인기가 있는 작가였기에 미술관은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렸다. 다행히 그의 그림은 큼직큼직한 대작들이 많아 관람하기엔 무리가 없었다. 그 중 단연 인기있던 그림은 1977년작 <My Parents>였다. 나는 이 그림 앞에서 한 동안 서있었고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왜냐면 전경뒤의 후경 3층 정도로 내려가 감상을 하다가 그만 마음속의 무언가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 무언가가 무언지는 뒤쪽에서 쓰도록 하자. 


이 그림의 인기를 반영하듯 아트샵에 <My Parents> 포스터는 전시회가 열리고 얼마 안되 품절되었고 판매원도 언제 다시 입고가 될 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내 침실에 붙어있는 포스터는 호크니의  <A bigger splash> 다. 내 친구는 그 후로도 두 번인가 더 미술관에 들러 다시 입고된 <My Parents>를 사고 말았다. 


하르트만의 층이론을 참고해 이 그림을 감상해 보자. 

[전경(前景)]

전경을 감상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감각적인 것들의 수용이다. 전체적으로 민트 빛의 뒷 배경과 왼쪽의 어머니가 입은 파란 원피스와 덕분에 더 눈에 띄는 그녀의 백발, 노랑과 핑크 튜울립이 꽂힌 꽃병과 거울, 거울속으로 화면의 맞은편 벽이 비치고, 에메랄드 그린 컬러의 바퀴달린 탁자, 브라운 수트를 입은 아버지와 역시 희끗희끗한 그의 머리칼, 바닥엔 옅은 바이올렛 빛 러그가 깔려있고 왼편에서 들어오는 빛에 의해 오른쪽으로 누워있는 그림자들. 실제로 작품을 관람한다면 물감의 두께나 질감, 농도, 붓의 터치 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전경을 보고 난 후 후경을 들여다보자. 그런데 후경은 제1층 부터 제4층 까지 있다고 언급하였으니 단계별로 구분해서 보자.


[후경(後景)]

후경 1층은 묘사된 인물의 외면적, 물적 계층이다. 작품의 제목이 그러하듯 이 두 인물은 호크니의 어머니와 아버지다. 


후경 2층은 인물의 동작과 표정등을 나타낸다. 먼저 어머니의 표정과 동작을 묘사해보자. 어머니는 백발의 머리를 곱게 단장하고 우아하고 심플한 푸른 원피스를 입고 있다. 두손을 가지런히 모은채 정면을 응시하고 앉아있다. 그녀의 표정은 조금 경직되어 있지만 사려깊은 미소를 띠고 있다. 오른쪽의 아버지는 고개를 들지 않고 무릎 위에 책을 얹어놓고 맨 첫 페이지를 열어 들여다 보고 있다. 뒷꿈치가 살짝 들린 상태로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이 어딘가 불편해 보인다. 그의 목은 굽어있고 책의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 듯 눈을 살짝 감은듯이 책에 집중하고 있다. 어머니의 모습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후경3층은 인물의 성격이나 내적 운명등을 보여주는 층이다. 후경 2층을 묘사하다보면 후경 3층의 묘사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아들의 그림에 등장하기 위해 어머니는 어떤 옷을 골라 입어야할까 몇 일 고민했을것이다. 너무 티나지도 않게 그렇다고 너무 초라하지도 않게 자신을 꾸미기 위해 애쓴 티가 난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최대한 모델이 가져야할 좋은 태도를 위해 손은 가지런히 모으고 아들을 응시한다. (이 그림은 사실 호크니가 부모님을 모델로 찍은 사진을 토대로 해서 그려진 그림이다) 아버지는 애써 아들의 시선을 외면한다. 그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아들을 바라보는 것이 불편한거다. 그래도 정장을 차려입고 발목까지 올라오는 구두를 챙겨신고 넥타이까지 맨 모습을 보니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듯 보이나 무엇보다 자기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늙고 연약해진 자신의 모습을 구지 화폭에 담으려는 아들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가 한편으론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했을것이다. 


이쯤 생각하고 있을 때 나는 문득 그 그림속에서 나의 엄마 아빠를 만났다. 두 형제 중 장남인 아버지와 결혼해 아들없이 딸 둘을 키우면서 시댁식구로 부터 아들 못낳은 죄인으로 살아야했지만 그 두 딸을 아들 만큼 당당하고 주눅들지 않게 키운 우리엄마, 내가 하는 모든일을 옳다고 칭찬해주고 믿어주는 엄마의 모습이 정면을 향해 최선의 모습으로 앉아있는 호크니의 엄마의 모습에 중첩되었다. 집에 있는 시간보다 일하는 시간이 많아 집안의 대소사에는 불참하는 일이 당연했던 아빠는 이모로부터 부도수표라는 별명을 얻었다. 열심히 일하고 돈벌고 사회생활에 최선을 다했던 아빠는 나이 여든이 되어도 술 한잔이나 들어가야 딸들과 이야기를 나눌까 여전히 무뚝뚝하고 완고한 대한민국의 가장이다. 그래서 나는 호크니의 아버지가 읽혀지지도 않을 책을 향해 눈을 돌리고 애써 침착하려 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이해가 되었다.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 자식을 향한 마음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다 똑같구나.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애틋해서 나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다시 그림 이야기로 돌아가서 후경 4층은 인물의 본질, 이념, 작품의 의의 등을 보여주는 정신적 계층인데 호크니의 대표적인 상징인 '이중 초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즉 하나의 캔버스에 2명의 인물을 담아 그 사이의 심리적 긴장감을 표현하는 호크니 특유의 인물화이다. <My Parents> 또한 어머니와 아버지 두 인물을 좌측과 우측에 배치시키고 그 두 사람 사이에 구도적, 심리적 긴장감을 표현해 낸 매력적인 작품이다. 


이렇게 길고 복잡하게 이야기를 했지만 우리가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것이 있다. 그림을 감상하는데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중간고사, 기말고사, 졸업시험, 입사시험, 승진평가 등등 수많은 정답을 찾아내는 테스트에 이골이 난 우리가 정답이 없는 세상에서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게 말이다. 단지 이런 이론을 들이대 감상법 따위를 운운하는 이유는 정답을 알려주려는 것이 아니라 정답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가이드일 뿐이다. 그림의 뒷편으로 천천히 내려가며 작품속의 인물과 그 인물을 그려내는 예술가에게 슬쩍 말을 거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다. 


원래 이 그림은 1975년 <My Parents and myself>를 제작하려다 완성하지 못하고 1977년에 자신의 모습을 그릴 그 자리에 다른 이미지를 넣어 완성한 작품이다. 원래 제작하려던 작품은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 있는 탁자위 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 그림이었다. 부모의 눈으로 본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려 했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2년 후 거울에 맞은 편 벽면이 비쳐지는 모습으로 탄생하게 된다. 


그가 그리려던 <My Parents and myself> 가 2020년 2월에 런던의 국립초상화 미술관에서 공개되었다. 이 글을 쭈욱 읽어내려온 분이라면 당연히 75년작이 궁금할 것 같아 서비스로! 거울 속 호크니의 모습이 묘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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