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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May 17. 2020

예술이라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라.

1일 1글 시즌 4  [episode 49]

약 1년간 경찰 공무원을 대상으로 미술 강연을 한 적이 있다. 당시 경찰청 교육센터의 계장으로 계시던 경정님은 인문학이야말로 사람을 발전시키며 우리 삶에 필요한 학문이라고 생각하셨다. 실제로 엄청난 독서광이셨고 본인이 경험한 경찰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를 출간한 작가 이기도 했다. 격무에 시달리는 경찰 공무원들이었기에 최소한의 직무교육을 제공할 수밖에 없었던 교육센터의 상황에서 인문학 아니 미술에 관한 교육을 제공하고자 한 시도는 매우 파격적이었다.  


상황이 허락되는 과정에 한해 2시간짜리 미술 특강이 개설되었다. 무뚝뚝하고 표현이 적은 조직문화의 특성상 강의는 소통 없는 일방적 형태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강의 중의 모습과는 달리 강의가 끝난 후 나에게 다가와 매우 흥미로웠다, 교육 잘 받아다는 등의 인사를 하거나 추가적인 질문을 하는 교육생들이 많았다. 나는 그해 꽤 여러 달 동안 우수강사로 뽑힌 탓에 교육센터 입구에 걸려 있는 이 달의 우수강사 소개란에 붙어 있는 내 사진을 보며 교육장을 들어가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누적된 교육생들의 교육평가표를 점검하게 되었다. 5점 척도의 과정 만족도 설문지는 대부분 4점에서 5점에 표시가 되어있었지만 한 장의 설문지에는 모든 평가항목이 1점으로 체크되어 있었다. 충격적이었다. "1점을 '매우 만족함'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야"라고 웃어넘겼지만 지금도 우리 사이에선 그 설문지가 종종 대화의 주제가 되곤 한다. 얼마나 강의 내용이 싫었으면 그랬을까?


"교육받으라고 해서 바쁜 시간 쪼개 왔는데, 웬 미술 강의? 그림 감상이야 돈 있고 시간 있는 사람들의 허울 좋은 놀음 아닌가? 예술 공부하고 그림 본다고 돈이 나와 밥이 나와? 먹고 살기 바빠 죽겠는데..."


물론 나의 추측이다. 그러나 나의 추측이 설사 진실이라 할지라도,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그러할지라도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그림을 감상하는 일 자체로는 당장 돈을 벌 수도 내 삶을 윤택하게 해 주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술이 밥을 먹여주지도 딱히 쓸모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 긴 역사의 시간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존재해왔다는 것은 그야말로 쓸모없는 것의 쓸모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모든 예술은 지극히 쓸모없다."라고 말한 동화 <행복한 왕자>의 저자 오스카 와일드의 견해로 보자면 꽃은 그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피어나며 그 자체가 목적이듯 예술 또한 찬란하게 무익하며, 예술이 주는 기쁨도 무익하기에 예술을 쓸모의 차원에서 논하는 것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통해 예술이 우리 삶에 얼마나 유용한 것인지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특히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현시대와 코로나 19로 경험하게 된 불확실한 미래에 살아남기 위해 그 무엇보다 예술로부터 끌어올리는 통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볼 때 사람들은 시대를 주도하는 정신을 건축과 회화, 음악과 문학으로 표현해왔다. 그렇게 때문에 예술은 과학이나 철학보다도 역사가 길다. 그 긴 시간 동안 사람과 밀접하게 관계하며 예술은 진화해왔다. 그러면서 축적된 예술적 집단 지성은 세상을 지배하는 어떤 거인보다도 거대하다. 그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지 않는다면 무슨 수로 먼 미래를 내다볼 것이며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갈 것인가?


만약 낱말들만을 이용해 모든 뜻을 정확히 표현해낼 수 있었다면,
그림이나 음악과 같은 예술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John Dew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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