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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May 28. 2020

그녀의 초상화

1일 1글 시즌4 [episode 60]

2018년 5월, 세기의 로맨스가 결실을 맺는 날이었죠? 바로 영국왕실의 해리왕자와 미국 영화배우 메건 마클의 결혼식이 전 세계 이목의 집중을 받으며 거행된 날이었습니다. 이 결혼은 영국 왕실입장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가졌던 결혼식인데요 가톨릭신자나 평민, 이혼경험이 있는 사람과의 결혼을 금지하던 왕실의 법도가 크게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해리왕자가 평민이자 혼혈배우 이혼녀와 결혼을 한다는 소식이 왕가에 주었을 충격은 짐작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사랑에 있어서는 꽤나 열정적인 인물들이 많았기에 저는 좀 더 흥미롭게 느껴지더라구요. 왕실 입장에선 조금 당황스러운 결혼이었지만 영국의 가장 유명한 브랜드는 영국왕실이란 말이 있듯, 그들의 결혼이 영국과 왕실에 꽤 큰 경제적 혜택을 가져다 주었지요. 


해리왕자는 이후 다시 영국 왕실을 충격에 빠트리는데요 ‘독립·탈영국 선언’입니다. 직계가 왕실과의 결별을 선언한 것은 이 사건이 처음이 아니죠. 엘리자베스 여왕의 큰 아버지 에드워드 8세 또한 사랑을 위해 왕위를 버린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 또한 이혼녀였던 심슨 부인과의 사랑을 선택하며 왕실을 떠났고, 덕분에 말 더듬증과 소심한 성격의 조지 6세가 왕이 됩니다. 조지 6세의 이야기는 콜린 퍼스 주연의 ‘킹스 스피치’로 영화화되기도 했지요. 


그런데 이것보다 더 드라마틱한 사건은 시간을 훌쩍 거슬러 올라 헨리8세의 스토리입니다. 사랑에 관한한 가장 파격적이고 저돌적인 남자. 사랑을 위해 나라의 종교를 바꿔버린 헨리 8세. 그와 여섯명의 아내, 그 중 두번째 아내인 앤 불린의 이야기는 여러개의 영화와 드라마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앤 불린이란 인물에 대한 궁금함이 커지던 차에 2008년 개봉한 천일의 스캔들이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앤 불린의 역에 나탈리 포트만, 앤의 언니인 매리 불린 역에 스칼렛 요한슨. 워낙 출중한 배우들의 연기에 저도 모르게 깊이 빠져들어 영화를 보았었는데 영화를 보고난 후 실제 앤불린의 모습이 궁금해졌습니다. 


당시에는 그림이 사진의 역할을 했었으니 당연히 앤 불린의 초상화가 남아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더군다나 헨리8세 재임시절 궁정화가는 한스 홀바인 이었고 그는 서양 미술사에 가장 뛰어난 초상화가로 기록되어 있거든요. 그의 아버지도 화가였는데 이름이 동일합니다. 그래서 헨리 8세의 궁정화가인 한스 홀바인의 이름은 소(小)한스 홀바인, 혹은 한스 홀바인 영거(younger)로 부릅니다. 아버지 이름엔 대(大), elder를 붙입니다. 청출어람인지 아버지는 그리 많은 작품을 남기지 않아서 한스 홀바인 하면 대부분 아들을 말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한스 홀바인은 초상화의 덕목인 닮게 그리는 기술은 물론 대상의 지위를 상징적으로 묘사하는 기술이 뛰어났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인물의 심리까지 세심하게 묘사한 초상화들 덕분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초상화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죠. 아무튼 그가 그린 앤 불린의 초상화가 보고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남아있는 앤 불린의 초상화는 작자 미상의 작품 몇 점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한스 홀바인의 스케치중에 아마도 앤 불린을 그렸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작품이 남아있습니다. 작자 미상의 초상화와 스케치를 비교해 보니 역시 한스 홀바인의 기술이 탁월해 보입니다. 아쉽게나마 두 그림을 통해 앤불린의 모습을 추측해보았습니다. 한스 홀바인의 스케치 속 앤 불린은 묘하게 스칼렛 요한슨과 닮은 듯 합니다. 영화속 앤의 나탈리 포트만과 메리의 스칼렛 요한슨의 배역이 바뀌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니 그것도 좋았을 것 같습니다. 역시 두 배우의 연기력은 그 상상마저도 즐겁게 하네요.


왼쪽 : 앤 불린(작자 미상)  오른쪽: 앤 불린(으로 추정) 한스 홀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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