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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Jun 03. 2020

감상; 가치를 즐기고 평가하다

1일 1글 시즌4 [episode 66]

그림을 본다는 것


미술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미술가가 제작한 작품을 시각 기관을 통해 수용하는 것입니다. 흔히 '본다'라고 말하는 이 행위를 조금 더 분석해보겠습니다. 지금 나의 눈앞에 드론이 한 대 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우리가 드론을 보는 순간 안구를 통해 입력된 이미지는 시신경을 통해 전기적 신호로 변환되고 뇌에 전달되어 내가 머릿속에 저장하고 있는 드론이라는 단어와 연결시켜 인지하는 것, 이것이 바로 본다는 행위입니다. 


나와 같은 드론을 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보고 있는 드론은 내가 보고 있는 드론과 동일할까요? 만약 인도 뱅골만 해안에 있는 노스 센티널 섬의 원주민이라면 그 드론을 보고 무엇을 보았다고 생각할까요? 노스 센티널 섬은 문명과 단절된 섬입니다. 추측해보건데 그곳의 원주민들은 드론을 보고 ‘이상하게 생긴 새’라고 판단하지 않을까요? 드론을 새로 보고 있다면 그들은 잘못 보고 있는걸까요? 


본다는 것은 우리의 눈이 시각적 자극을 받아들인다는 것과 더불어 그것을 무엇이라고 인지한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같은 것을 보고도  우리는 그것을 드론이라고 보고 원주민들은 이상한 새라고 보듯 무엇을 본다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보는 행위를 통한 감상은 조금 더 복잡합니다. ‘감상(鑑賞)’을 한자로 풀어보면 작품을 보고 식별하여 그 가치를 즐기고 평가하여(鑑) 상주고 즐기다는(賞)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의 감상(Appreciation), 감상하다(Appreciate)라는 단어도 '평가하고 판단하여 가치를 알아내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감상이 어렵다는 이유는 작품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가 없고, 가치를 즐기기 위한 지식이 없고, 평가하기 위한 기준이 없으며 상을 주고 싶어도 그 결정을 내리는 일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종합적으로 감상을 위한 지식과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왼쪽  : Henri Fantin-Latour, Vase of Peonies, 1902  /  오른쪽:  Henri Matisse,  Les Pivoines, 1907
왼쪽:  Alexej von Jawlensky, Variation: Field of Tulips, 191 6/ 오른쪽: Nemanja Vuckovic, Peony, 2017

                                                                               

여기 네 점의 그림이 있습니다. 첫 번째 작품은 투명한 유리 꽃병에 담긴 작약입니다. 프랑스 화가 앙리 팡탱 라투르는 정물화에 탁월했는데 특히 꽃을 많이 그렸습니다. 이 작품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일단 투명한 꽃병과 꽃이 마치 내 눈앞에 실제 하는 듯 그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 작품을 보는 순간 캔버스에 그려진 이미지가 시신경을 통해 전기적 신호로 변환되고 뇌에 전달되어 나의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단어 중 ‘꽃’, ‘작약’, 혹은 ‘모란’을 연결하여 꺼내옵니다. 우리는 안심하고 '아 꽃을 그린 정물화구나, 색감이 좋다. 구도가 안정적이다.' 등등의 기초적인 감상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두 번째 그림을 보겠습니다. 앙리 마티스가 그린 작약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은 어떤가요? 작약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꺼내와 매칭 시키기에 조금 어려움이 있었나요? 그보다 먼저 ‘뭐야! 아이들 그림같이, 나도 그리겠네’라고 생각이 먼저 들었나요? 아니면 원색의 색채가 기분을 즐겁게 만들었나요? 잘 그린 그림인지 판단하려 하지만 평가기준이 없으니 감상하기 어렵다는 느낌이 듭니다. 


세 번째 작품을 보세요. 제목이 없었다면 도대체 무엇을 그린 건지 이해조차 하기 힘든 그림입니다. 아니, 제목을 보아도 아리송하기는 마찬가지네요. 튤립의 언덕을 그렸다는데, 도대체 튤립은 어디 있으며, 어딜 봐서 언덕이라는 걸까요? 아무리 봐도 우리의 머릿속에서 가지고와 매칭을 시킬 수 있는 단어가 없는 것 같습니다. 


네 번째 작품은 한 술 더 뜹니다. 제목은 ‘작약’인데 뻘건 물감을 캔버스 위에 마구 부어놓은 것 같습니다. 이쯤 되니 미술과 친해지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가 무엇인지 알듯합니다. '뭘 그린것인지 모르니 재미가 없고, 판단할 기준이 없으니 느낌도 없습니다. 바로 이런 막막함이 감상자와 작품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처럼 놓여있기 때문에 그림감상은 가깝고도 먼 그대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아니 그럼 어떻게 하냐고요? 미술감상이란 것은 어려우니 그만 포기하라는 말이냐고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미술감상의 즐거움을 포기하기엔 그 세상이 너무나도 매력적입니다. 쉽고 다양한 방법으로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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