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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Jun 07. 2020

그림에도 서열이 있다고?

1일 1글 시즌4 [episdode 70]

  저는 미술관에 가면 그림을 감상하기도 하지만 그림을 관람하는 사람들을 감상하기도 합니다. 미술관에 온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매우 조용하고 점잖게 그림을 봅니다. 타인의 관람에 지장을 줄 만큼 소란스럽게 관람을 해서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경직될 필요도 없습니다. 몇 년 전 베를린의 한 미술관을 관람하던 중 멀리서 익숙한 한국말이 들려왔습니다. 두 사람이 소곤소곤 나누는 이야기였지만 한국말이어서 제 귀에 쏙 들어왔습니다. 오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분이 "이게 도대체 뭘 그린 거야? 뭐로 그린 거지? 수채환가?" 라고 묻자 옆에 있던 여성이 “나도 모르겠네”라고 대답하더군요. 마치 나의 이야기인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날 분들도 있겠지만 사실 이 질문은 미술을 감상하는 데 있어 본질적인 탐구를 추구하는 심오한 질문입니다. 앞으로 미술관에 가서 이런 질문을 하는 친구가 있다면 본질을 추구하는 깊이 있는 태도를 꼭 칭찬해주시기 바랍니다. 


  미술작품은 필연적으로 내용과 형식이라는 두 개의 요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게 도대체 뭘 그린 거야?"라는 질문은 그림의 내용을 묻는 질문으로 화가가 캔버스에 어떤 것을 그려 무엇을 전달하려고 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입니다. 또 "뭐로 그린 거지?"라는 질문은 그 그림의 형식에 대한 질문으로 어떤 매체나 재료를 사용하여 화가가 자신의 메시지를 최적화하여 전달하려 했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림을 볼 때마다 그런 질문을 해 본 적이 있다면 미술 감상에 대한 기초적인 재능을 탑재하고 있는 것이니 자신의 예술적 소양에 뿌듯해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과거로부터 화가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평범하다는 말이었을 겁니다. 다른 화가들과는 다르게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가진 화가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방법들을 찾아내려고 애썼고 이는 예술사조의 변화에 기반이 됩니다. 그림이 다루는 내용은 시간이 흐르며 점차 바뀌어갑니다. 과거엔 다루지 않았던 풍경이나 정물, 가난한 사람들이 그림의 주인공이 되는가 하면 심지어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이나 추상적인 사고들이 그림의 내용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형식을 파괴하기 위해 물감과 캔버스라는 매체로부터 벗어나 변기와 자전거 바퀴 같은 기성품이나 상어와 같은 생명체까지 재료로 사용합니다. 다루지 않던 내용을 다루고, 형식을 파괴하고자 했으나 그것 자체가 내용과 형식이 되어버리게 되는 즉, 내용이 없다는 것이 내용, 형식을 파괴한 것이 형식이 되어버리는 필연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미술을 감상하기 위한 첫걸음은 작품의 내용과 형식을 음미하고 그 가치를 즐기는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역사적으로 그림은 어떤 내용을 다루어 왔는지, 시대적으로 형식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17세기부터 그림을 장르와 범주에 따라 분류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1648년 설립된 프랑스 왕립 아카데미는 그림의 주제에 따라 회화의 서열을 구분했습니다. 그러니까 화가의 등급에 따라 그릴 수 있는 그림이 달랐다는 거죠. 왕립 미술아카데미의 모든 진급 단계를 통과한 화가에겐 최고의 영예인 로마상이 주어지는데, 비로소 가장 높은 단계의 그림인 역사화를 그릴 자격을 갖게 됩니다. 장르의 순위를 보자면 바이블에 근거한 성화와 그리스 신화에 관한 그림인 역사화가 가장 높은 등급이었고, 왕이나 귀족, 성직자 등 개인의 얼굴이나 역사 속의 인물을 그리는 초상화가 다음 단계, 그 아래로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그린 장르화, 풍경화, 동물화, 정물화순 이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고 인상주의가 태동하며 이런 장르의 순위는 사라집니다. 


다음회에서는 각각의 장르별 작품들을 감상하는 방법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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