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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Jun 09. 2020

초상화 속 인물은 정말 그렇게 생겼을까?

1일 1글 시즌4 [episode 72]

미술관에 가면 자주 보게 되는 초상화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궁금증은 아마도 초상화의 주인공이 실제로 그렇게 생겼을까에 대한 것일 겁니다. 여러분은 혹시 나폴레옹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시나요? 아마도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을 텐데요, 프랑스의 정치사나 나폴레옹의 개인사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는 분도 그의 생김새는 알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앞 발을 치켜든 백마 위에 앉아 있는 거라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당당한 자세의 꽃미남, 그의 표정은 확신에 차있고 오른손을 번쩍 들어 군인들을 진두지휘하는 카리스마는 우리에게 나폴레옹의 영웅적인 면모를 각인시키는 이미지입니다. 


카메라가 발명되기 전이니 우리가 알고 있는 나폴레옹의 모습은 그의 궁정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만들어낸 이미지입니다. 그런데 1800년에 그려진 <성 베르나르 협곡을 넘는 나폴레옹>과 1812년에 그려진 <튈르리 궁전의 서재에 있는 나폴레옹>을 비교해보면 12년의 시간차를 감안하더라도 같은 사람이라고 보기엔 다소 어려움이 있어 보입니다. 이렇듯 초상화는 인물의 실제 모습을 묘사하지만 상황에 따라 화가의 눈으로 재해석되기도 합니다. 닮지 않았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초상화란 상황에 따라 목적성을 가지고 미화되기도 했고, 최대로 닮게 그리기 위해 애를 쓰기도 했을 거라는 겁니다. 


왼쪽: 1800년에 그려진 나폴레옹   가운데: 1812년에 그려진 나폴레옹   오른쪽: 베라스케스가 그린 펠리페4세의 초상


바로크의 거장 디에고 벨라스케즈가 그린 스페인 합스브루크 왕가의 펠리페 4 세의 초상화를 보면 왕의 모습이라고 하기엔 조금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11세기부터 유럽의 권력을 장악하던 합스부르크 왕가는 자신들이 유럽 최고의 가문이라는 자부심에 혈통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대대로 자신들의 가문 안에서 배우자를 정해 결혼합니다.  결국 세대가 거듭될수록 유전적인 결함이 생기게 됩니다. 부정교합, 아래턱의 비대와 돌출, 이것이 심해지며 음식을 씹을 수도 없는 상태까지 가게 됩니다. 이런 유전적 결함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펠리페 4세의 모습은 벨라스케스의 그림 속에 모두 드러나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표현된 초상화를 보니 한편으론 왕이 안쓰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초상화는 언제부터 그려졌을까요? 아주 오래전부터 왕이나 성직자의 초상화가 그려졌지만 모든 예술이 신을 위해 존재했던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로 접어들며 초상화의 제작이 활발해집니다. 왕이나 왕가의 사람들, 귀족, 성직자 등이 자신의 초상화를 화가에게 주문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초상화는 점점 대중화됩니다. 왕과 성직자뿐 아니라 은행가, 상인, 외교관, 학자 등 화가에게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초상화를 의뢰했습니다. 초상화는 부귀와 권세의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당대 가장 뛰어난 화가들에게 주문이 몰렸고 초상화는 화가들에게 매우 중요한 돈벌이 수단이 됩니다. 


르네상스 초기의 초상화는 대부분 완전 측면의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어릴 적 노트에 만화 좀 그려 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앞모습을 그리는 것보다 옆모습을 그리는 것이 훨씬 수월합니다. 앞모습은 평면 위에 입체감을 표현해야 하지만 옆얼굴의 경우 선만으로도 외형적 특징을 잘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죠. 1465년 안토니오 델 폴라 이올로가 그린 <젊은 여성의 초상>을 보면 입체감을 표현하는 세밀한 채색이 없이도 인물의 특성이 오롯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왼쪽: 측면 초상화    가운데: 33/4 측면 초상화   오른쪽:  정면 초상화


15세기 말이 되면서 초상화 속 인물들은 점차 관람자를 향해 몸을 돌려 앉기 시작합니다. 옆얼굴의 경우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지만 3/4 측면 자세를 취할 경우 얼굴의 표정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됩니다. 더불어 인물의 개성과 지위 등을 표현하기 수월해지기도 하고요. 이때부터 화가들은 초상화 속 인물들의 표정, 시선의 위치, 손동작 등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갖는 미술사적인 의의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그중에서도 특히 당시의 초상화에서는 보기 드문 미소 짓는 모습을 그렸다는 것입니다. 다빈치는 모나리자(리자 부인이란 의미)의 얼굴에 미소가 담기게 하기 위해 음악가들을 불러 BGM도 연주하게 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모나리자의 자세 같은 3/4 측면 포즈는 인물의 성격이나 감정까지 표현할 수 있어 초상화의 전형적인 포즈가 됩니다.


 초상화 중에서 조금 더 특별한 분야가 있다면 바로 자화상일 겁니다. 화가와 모델이 한 사람, 즉 자신이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초상화는  다른 어떤 초상화보다도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게 될 테니까요. 자화상 중 가장 유명한 그림으로 꼽히는 알브레히트 뒤러의 <26세의 자화상>을 보면 디테일한 묘사와 강렬한 카리스마에 눈을 뗄 수 없게 되는데요, 자의식이 매우 강했던 뒤러는 당시에 주로 ‘예수’를 표현할 때 사용하던 포즈인 정면의 모습으로 자신의 자화상을 그립니다. 예술가 또한 창조자라는 자신의 높은 자존감을 그림 속에 담은 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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