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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Jun 15. 2020

고흐와 고갱의 자화상 감상하기

1일 1글 시즌4 [episode 78]

앞서 소개한 바 있는 하르트만(Nicolai Hartmann)의 '층이론'을 활용하여 고흐와 고갱의 자화상을 감상해보겠습니다. 



전경(前景) 읽기

먼저 고흐의 자화상을 보겠습니다. 다음을 읽기 전에 먼저 고흐의 그림 속에서 보이는 것들을 찾아서 나열해보시기 바랍니다. 


맨 처음 전경으로 드러나는 것들로는 짧게 깎은 머리, 튀어나온 광대뼈, 야윈 얼굴 등입니다. 붉은색의 수염이 거칠게 자라 있고, 재킷 안에 조끼, 그리고 셔츠까지 단정하게 입은 모습입니다. 배경은 밝은 에메랄드그린으로 단순하게 처리한 반면 자신의 얼굴 특히 눈 부분을 자세히 묘사하려 노력한 것 같습니다. 물감을 매우 두껍게 발라 터치의 질감이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넓은 배경을 채워가는 붓터치는 고흐의 머리 뒤편으로 머리의 외곽선을 따라 둥그렇게 확대되며 칠해져 있는데, 머리의 외곽선과 만나는 부분의 밝은 색에서 점차 어두운 색조로 변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눈매가 매우 날카롭게 묘사되어 있으며 눈동자의 흰자위가 배경의 색상과 동일한 색으로 채색되어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두 눈동자의 방향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고흐의 오른쪽 눈의 눈동자는 관람자를 향해서, 왼쪽 눈은 조금 더 왼쪽으로 치우쳐져 있습니다. 두터운 붓터치의 질감으로 눈썹과 수염을 표현한 부분에서 입체감이 느껴집니다. 

  


이번엔 고갱의 자화상에 드러난 전경을 묘사해보죠. 자신의 모습은 캔버스의 좌측으로 몰아놓았습니다. 몸과 눈동자는 정면을 얼굴은 다른 방향을 하고 있습니다. 눈썹 아래로 드리운 그림자는 코의 옆선으로 이어져 코의 모양을 도드라져 보이게 합니다. 콧수염이 아주 잘 정돈되어 있고 얼굴의 왼쪽 음영 부분은 푸른빛으로 반사되어 있습니다. 꽃무늬의 노란색 벽지에 그림이 한 장 붙어있습니다. 자신의 얼굴을 자세하게 묘사한 것에 비해 배경은 매우 단순하게 묘사했습니다. 캔버스 위에 유채로 그렸지만 물감이 얇게 칠해져 있어 바탕의 캔버스 조직이 드러납니다. 고흐의 그림과는 달리 얼굴 부분의 윤곽은 모두 검은색의 선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럼 이번엔 후경을 감상해볼까요?



후경(後景)

고흐 자화상의 전경을 살펴보며 여러분은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요? 고흐의 다른 자화상을 보셨던 분이라면 마치 승려와 같은 머리 모양이 조금 생소할 수 도 있었을 텐데요. 약간은 치켜올라 간 눈 하며 야무지게 다문 입술은 무언가 새로운 결심을 한 것 같은 모습입니다. 밝은 배경색은 고흐의 심리적 상태가 긍정적이고 고조되어 있는 듯하고요. 실내에서 그려진 자화상인데 옷차림을 보니 단정하게 챙겨 입었습니다. 왼쪽에서 들어오는 빛에 그의 오른쪽 얼굴이 매우 밝게 빛나고 있고 코의 옆선을 따라 생긴 하이라이트는 얼굴의 입체감을 극대화시킵니다. 두 눈동자의 방향이 일치하지 않은 탓에 관람자를 향한 듯하면서도 그 시선을 비껴 나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현실이 아닌 고고하고 이상적인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요? 고흐의 자화상을 보면 나도 모르게 그가 꿈꾸는 미래에 동조하며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고갱의 자화상을 보겠습니다. 조금 전 고흐의 자화상에서 느꼈던 감정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듭니다. 일단 고갱의 자세는 무언가 탐탁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을 그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얼굴 방향과 시선의 방향이 일치하지 않은 탓 일 겁니다. 우리가 흔히 째려본다라고 표현하는 시선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관람자에게 무언가를 추궁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꽃무늬 노란 벽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밝은 배경에 동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집니다. 뒤에 붙어있는 베르나르의 초상은 가볍게 처리되어 있지만 자신의 모습은 자세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화면의 아래쪽 자신의 서명 위에 적힌 ‘레미제라블’이란 글은 자신을 장발장으로 표현하려는 거겠지요?


여기까지는 두 개의 자화상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도 감상할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물론 위의 내용이 정답은 아닙니다. 하나의 예를 들어서 묘사한 것 일뿐 여러분이 보고 느낀 것이 감상에 있어서 의미 있는 것들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두 개의 작품은 모두 1888년에 그려진 것들입니다. 1888년 파리에서 아를로 이주한 고흐는 예술가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 했고 그 공동체를 함께 꾸릴 인물로 고갱을 선택합니다. 동생 테오를 통해 고갱을 설득하던 고흐는 프랑스 북부 퐁타방에 머물고 있던 고갱과 베르나르에게 초상화 교환을 제안합니다. 이에 고갱이 고흐에게 <베르나르의 초상 앞에서의 자화상>을 고흐에게 보냈습니다. 고갱은 자신을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과 같은 처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식 중개인으로 잘 나가던 고갱은 갑작스러운 경제공황으로 돈과 명예를 모두 잃었고 사회로부터 거부당했다는 자괴감을 가지고 있었죠. “나는 장발장처럼 사회에서 추방당했지만 사실은 고귀하고 다정한 사람을 그리고 싶었네.”라고 허구 속 영웅에 자신을 빗댄 자화상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 그림을 보냈습니다. 


고갱의 자화상을 받은 고흐는 <폴 고갱에게 헌정하는 불교적 자화상>을 보냅니다. 당시 반 고흐는 일본의 판화와 불교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고흐는 편지에 자신의 개성을 강조하기 위해 부처의 신앙자인 수도승과 같은 성격을 표현하려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자신의 모습 또한 일본인처럼 눈초리가 약간 올라가게 그렸다고 덧붙였습니다. 고흐는 자신보다 다섯 살 많은 고갱을 예술가 공동체를 함께 이끌어갈 스승으로 삼고 싶어 했고 그를 향한 존경심을 수도승의 모습을 한 자신의 모습으로 전하고자 했습니다. 물론 그들의 공동생활은 두 달만에 파탄 나지만 이 그림을 그릴 때만 해도 고흐는 미래를 향한 분홍빛 꿈을 꾸고 있었을 겁니다. 


고흐와 고갱의 자화상을 예를 들어 이야기한 것처럼 초상화를 감상할 때 전경과 후경의 개념을 가지고 감상 연습을 시작해보십시오. 눈으로 지각되는 요소들, 색상, 질감, 구도, 형태 등의 물리적인 요소를 확인한 후, 그러한 요소들이 조합되어 담고 있는 비 실재적이고 정신적인 요소를 추론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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