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네덜란드의 정물화
브뤼셀에 있는 벨기에 왕립미술관 앞에 다다르자 미술관의 이름에 '왕립'이 붙어서인지 왠지 경건한 마음이 더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주위에 민망할정도로 킥킥거리며 나를 무장해제 시킬 그림이 거기 있을줄이야!
얀 하빅스 스텐(Jan Havicksz Steen)의 <In liefde vrij>란 작품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자유로운, 구속받지 않는 사랑'정도로 해석이 가능할듯한데...
그동안 봐왔던 역사화, 성화, 신화등에서 볼 수 없었던 뭔지 모를 저렴한 느낌의 정서. 왁자지껄한 대중 속에서 한 쌍의 남녀가 대담한 애정행각 중이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관람객을 대담하게 바라보고 있는 이 언니의 표정이 압권이다. 이런 그림이 1665년에 그려졌다니! 프랑스에선 마네가 <풀밭위의 점심식사>와 <올랭피아> 때문에 엄청난 욕을 먹고 있을 때 아닌가?
네덜란드여서 가능한 일이었을 거다. 미술사에서 네덜란드는 매우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데, 지금의 네덜란드라는 나라가 보여주는 개방성이나 혁신성들을 보면 다분히 수긍이 가고도 남을만하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신교와 구교의 대립인 30년 전쟁에서 신교가 승리하게되며 네덜란드는 에스파냐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된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신교 중 하나인 칼뱅파의 교리를 받아들인 네덜란드는 검소함을 강조하는 칼팽파의 교리에 따라 교회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종교화는 우상숭배라 여겨 금지했다. 또한 발달한 조선 기술과 해운업을 기반으로 활발한 해상활동을 하였고 아메리카와 아시아에 식민지를 건설하며 국제적 중계무역의 중심이 되어 바야흐로 황금시대를 맞아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부와 풍요를 누리게 된다. 기존 귀족과 교회세력이 몰락하였고 중산계급 생산자층이 경제 활동의 주축이 되며 자신들의 지적, 예술적 호기심을 충족을 위하여 그림을 구매하기 시작한다. 이런 요구가 일자 화가들의 그림을 받아 고객에게 팔아주는 전문적인 화상이 등장하면서 근대적인 유통구조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부유해진 중산층의 구매자들은 어려운 역사화보다는 알기 쉽고 보기 좋은 그림, 자신의 부를 과시할 수 있는 그림들을 원했다. 무역을 통해 진귀한 물건들을 소유한 시민들은 그것들이 그려지 그림을 집에 걸어놓음으로 자신들의 부를 과시하고 싶었지만 칼뱅파의 교리엔 맞지 않았다. 그래서 화가들은 부와 금욕을 함께 표현할 수 있는 방법들을 만들어냈는데, 이국적인 과일과 음식, 화려한 그릇, 비싼 꽃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그것들이 결코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그림에 함께 담기 시작했다.
프롱크 혹은 프롱켄이라 불리는 정물화는 사치스럽고 장식적인 정물을 소재로 객관적인 묘사의 사실성과 조화를 꾀하는 그림이다. 당시 교역을 통해 해외에서 들어오는 수입과일이나, 가재, 은제 식기, 유리그릇, 중국산 도자기등을 그렸다. <그림1>
트롱프뢰유는 실제인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그림이다.<그림 2> 관람자들을 감탄하게 만들기 위해 다양한 형태와 질감의 물건을 재현하려면 세련된 회화 기법을 능숙하게 구사 할 수 있어야 했다. 스펠트의 <화환과 커튼이 있는 눈속임 정물>의 오른편에 쳐진 커튼도 그림의 일부이다. 당시 사람들은 이런 그림을 보며 화가의 능력에 감탄하며 찬사를 보냈으리라.
특히 정물화의 대표적인 소재는 꽃과 음식물 이었는데, 인간이 가진 물질에 대한 소유욕과 본능을 표현하기 용이한 소재일뿐만 아니라 상징성도 뛰어났기 때문이다. 꽃이나 과일이 그려진 정물화를 보면 매우 화려하고 이국적인 분위기로 장식용으로 가장 좋은 그림이었지만 해골, 꺾어진 꽃, 비어있는 술잔 등의 상징적인 사물들과 함께 인생무상, 죽음, 운명을 상징하는 종교적, 교훈적 기능을 함께 담았다. 특히 이런 그림을 바니타스(vanitas)라고 부른다.
암브로시우스 보스하르트의 <화병>(그림3)은 매우 화사하고 아름다운 정물화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튤립과 장미, 히야신스, 작약, 아네모네, 붓꽃등이 함께 꽃혀있다. 꽃이 피는 계절이 다른 꽃들 인데 말이다. 화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꽃은 잠시 피었다가 시들어버린다. 사계절의 꽃이 함께 존재할 수 없듯 인생 역시 젊음과 아름다움도 지속되지 않는다. 마치 인생과 같으니 삶의 덧없음을 잊지 말라는 당부다.
아드리안 반 위트레흐트의 <해골과 꽃다발이 있는 정물화>는 전형적인 바니타스로 아름다운 꽃과 난데없는 해골이 섬뜻한 기분을 자아낸다. 해골의 뒤에 놓인 술잔은 분명 가득차 있었을테지만 지금은 비어있다. 바닥에 금화와 은화 그리고 진주 목걸이 위로 시계가 놓여있다. 인생은 유한하다는 뜻이다. 책위에 길게 놓인 담뱃대는 무상하게 흩어져버리는 연기를 의미한다. 꽃병에 꽂힌 꽃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미 시들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들도 보인다.
vanitas vanitatum et omnia vanitas. '헛되고 헛되니 모든것이 헛되도다'라는 성경 글귀에서 명칭이 비롯된 바니타스는 전쟁과 질병으로 죽음의 공포가 지배했던 중세 암흑기를 지나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 네덜란드인들에게 현세의 풍요화 행복을 경계하라고 경고한다. 금지된 종교화를 대체하는 일종의 새로운 종교화로써의 역할을 한 바니타스 정물화를 가까이 걸어놓고 일상속에서 부단히 삶의 유한함을 떠올렸을 사람들.
찬란한 생의 순간도 언젠가는 막을 내리니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라는 가르침은 여전히 유효하다.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빨리-많이-대충 에서 천천히-깊게-대화하는 여행을 만들어주는... 그림 보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