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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Jun 08. 2018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A: "아니 이 사람이!!"


도서관의 정적을 깨고 들려오는 소리에 모두 고개를 들어 소리 나는 곳을 향했다.


A: "그거 이리 내려놔요! 그게 내 꺼라고"


B: "아니, 내 거라니까 왜 그래요?"


A: "이 사람이 정신이 없나? 여기 여기 이렇게 생긴 게 내 것 라구요!"


50대 중반의 두 남자가 도서관에서 큰 소리를 내며 자신의 것이라고 우기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핸드폰 충전기


여의도 국회도서관 인문과학열람실. 4명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테이블의 중앙엔 3구짜리 콘센트가 2개 있어 노트북 전원과 핸드폰 충전기를 꽂기에 불편함이 없다. 그런데 뭐 때문에 싸우는걸까 궁금한 생각에 귀를 쫑긋 세우고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점점 소리가 커지며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두 남자는 콘센트에 꽂힌 2개의 충전기중 하나의 충전기를 두고 자신의 것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두 개의 충전기가 같은 모양도 아니다.


A아저씨에 따르면 본인의 것은 급속 충전이 되는 어쩌고저쩌고(뭔가 전문적인 말이 나왔는데 잘 모르는 말이어서) 충전기인데 이게 바로 그거 아니냐. 그러니 이게 내 거다라고 말하고 있고 B아저씨 또한 무작정 그것이 자기 꺼라고 말하고 있는 중이다.


급기야 CCTV 판독이 요청되었고, 잠시 후 경찰 2명이 왔다. 밖으로 나가서 해결하자는 경찰의 말에 두 아저씨는 도서관 밖으로 나갔다.


급속충전기는 누구 거였냐고? 결말은 나도 모른다. 


내가 의아한 것은 어떻게 모양이 다른 두 개의 충전기 중 하나를 두 사람이 모두 자기 꺼라고 우길 수 있을까 하는 점과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주장에 대해 확신에 차 있었다는 점이다. 확신을 가진 사람을 이길 수 없다. 그래서 그 싸움의 결말이 정말 궁금한 거다.


부부싸움을 한 두 사람이 서로 "길 가는 사람 잡고 물어봐라. 누가 잘못했는지"라고 말한다. 두 사람 모두 상대가 잘못했다는 확신을 갖고 있을 경우 좀처럼 화해가 쉽지 않다. 조직 내에서 반목하는 두 사람도 결코 자신이 잘못했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상대의 오류를 확신하는 것이다.


이런 강력한 두 개의 확신이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미술사에도 이런 강력한 충돌이 있었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1780년~1867년)와 외젠 들라크루아(1798년~1863년)다.  <그랑드 오달리스크>를 그린 앵그르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으로 유명한 들라크루아, 미술사조로 이야기하면 앵그르는 '신고전주의', 들라크루아는 '낭만주의'의 화가다.


왼쪽: <그랑드 오달리스크>, 도미니크 앵그르, 1814년, 루브르 박물관     오른쪽: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외젠 들라크루아, 1830년, 루브르박물관


여기서 잠깐! 우리를 골치 아프게 만드는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에 관해 잠시 정리해보자.


미술사조를 이해하기 위한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르네상스라는 거대한 기준을 세워놓고 르네상스 이전과 이후를 구분해서 이해하는 방법이다. 르네상스가 '부활'이란 의미라는 것은 한국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일 테고, 과연 어디로부터 부활인가? 우리는 중세를 흔히 암흑시대라고 부르는데 그 암흑시대로부터의 부활을 말한다. 모든 예술이 종교 하나로 모여지던 시대에서 그 중심을 인간으로 방향 전환을 했던 르네상스, 그 르네상스의 끝물에 로코코와 바로크 양식이 새로 생겨나는데, 그런 화려하고 자극적인 로코코와 바로크 양식으로부터 다시 부활하자, 그러니까 르네상스가 추구했던 우아하고 고전적인 사조로 다시 돌아가자라는 의미가 바로 '신고전주의'다.


낭만주의는 시기적으로 신고전주의와 겹친다.

신고전주의가 정해진 방식을 토대로 이상적이고 완벽한 아름다움을 통해 뚜렷한 목적성을 추구한 반면 낭만주의는 정형적이고 사실적인 표현보다는 개인의 상상과 주관적인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고자 했다.


자크 루이 다비드로부터 시작된 '신고전주의'의 마지막 황태자가 앵그르인데, <나폴레옹 대관식>을 그린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 어려운 왕립 미술아카데미의 모든 진급 단계를 통과하고 최고의 영예인 로마상을 거머쥔 때가 26살이었던 반면 다비드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제자 앵그르는 21살에 로마상을 받고 18년간 이탈리아에서 유학하였다.


앵그르는 기본적으로 회화가 갖추어야 할 이상적인 격식을 파괴하고 화가의 감정을 고스란히 토해놓은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의 그림이 영 못마땅했다. 선과 형태가 중요시되는 아카데믹한 그림에 비해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의 그림은 불분명한 형태와 자유로운 색을 쓰며 개인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그림이었으니 앵그르 입장에선 들라크루아의 그림은 '근본 없는' 그림이었던 것이다. 오죽하면 들라크루아를 향해 "인간의 탈을 쓴 악마"라고 했을까? 들라크루아는 이런 공격에 앵그르가 중시 여기는 소묘를 '퇴색한 소묘'라고 받아쳤다. 그 둘이 그린 19세기 가장 훌륭한 바이올린 연주자 파가니니를 비교해보면 그들이 추구했던 화풍을 이해할 수 있다. 어떤 그림이 앵그르의 그림인지, 들라크루아의 그림인지 구분할 수 있겠는가? 


딩동! 정답이다


 

미술사에 이렇게 소란스럽게 미술사조가 대립한 경우도 드물다. 그런데 그렇게 서로 반목하던 그들의 그림을 보면 앵그르의 그림 속에서 낭만주의적인 요소를 찾을 수 있고, 들라크루아의 그림에서도 아카데믹한 요소들이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앵그르의 <그랑드 오달리스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여성의 인체가 심하게 왜곡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인체의 비율과 구조를 지켜 그리지 않고 아름다워 보이도록 인위적으로 변형한 것이다. 앵그르의 그림의 많은 곳에서 그런 변형을 찾을 수 있다. 철저하게 이상적이고 정형적인 모습이 아닌 화가의 감정과 의도가 반영된 그의 그림은 지금의 시각으로 본다면 다분히 낭만주의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


들라크루아 역시 정확한 데생과 형태를 기반으로 한 그림에 조금 더 풍부한 감정의 표현을 더해놓은 것이니 아카데믹한 요소가 전혀 없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확신하고 있는 것, 과연 그것이 정말 그러한가? 어쩜 우린 내가 옳지 못하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파생된 관념을 가지고 그 관념의 근본을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튼 휴대폰 충전기의 주인 중 한 명은 어느 순간엔가 자신이 그토록 확신했던 그 순간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을까? 만약 그랬다면 삶에서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축복의 순간을 만난것이다. 바위같은 내 확신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위대한 통찰을 살면서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될까?  


아님 말고!



빨리-많이-대충 에서 천천히-깊게-대화하는 여행을 만들어주는... 그림 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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