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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Jun 09. 2018

모나리자 "어쩌다 노이즈 마케팅"

모나리자를 유명하게 만든 진짜 장본인

2004년 8월 22일.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서 2명의 무장괴한이 총을 들고 여직원을 위협하고 있었다. 주변에 서른 명 남짓한 사람들도 함께 위협당했다. 그들이 훔친 것은 그림 두 점.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 1863~1944)의 <절규>와 <마돈나>였다. 오슬로의 뭉크 박물관에서 있었던 일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명화 훔치는 방법'이라면 박물관에 몰래 침입해 빨간색 레이저 경보장치에 담배연기를 뿜어 선을 또렷하게 만들고 물구나무서기와 다리 찢기 등의 조합을 통해 그림에 접근한 후 액자틀에서 그림을 분리해 등에 맨 그림 통에 집어넣고 조금 여유가 있으면 모사품을 액자에 대신 집어넣은 후 윙크 한번 해주고 나오는 것 아니었던가?


그런데 뭉크박물관의 도둑들은 과감해도 너무 과감했다. 모든 규칙을 깨고 총으로 직원과 관람객을 위협한 후 그 앞에서 유유히 그림을 훔쳐 달아났으니 말이다. 아마도 은행털이범의 방법을 벤치마킹한 것이 아니었을까? 아무튼 성공했다.


CCTV에 찍힌 <절규>와 <마돈나>를 훔쳐 달아나는 강도들


두 작품 중 <절규>는 1994년에도 도난당했던 적이 있었다. 3개월 만에 되찾긴 했지만 그림의 운명치곤 꽤 기구한 편이다. 두 번째 도난 또한 2년 후 되찾긴 했지만 경찰이 회수 과정의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은 탓에 여러 음모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절규는 7900만 달러, 마돈나는 1580만 달러로 추정되는데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뭉크의 다른 그림들까지 가격이 오르기도 했다.


원래 유명한 작품이지만 이런 소란을 겪으며 그림의 가치는 더욱 커졌다.


뭉크의 작품처럼 도난당한 작품들이 많은데 그중 가장 유명한 사례는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모나리자>일 거다. 1911년 8월 21일.(아! 뭉크의 작품이 도난당한 날이 8월 22일이었는데...) 그 날은 루브르가 대청소와 보수작업을 하는 월요일이었고 빈첸조 페루자라는 남자는 작업복을 입고 루브르에 들어가 모나리자를 떼어 검은 천으로 싼 뒤 아무렇지도 않게 박물관을 나왔다. 심지어 잠겨있는 문을 지나가던 경비원이 친절하게 열어주었다.


빈첸조 페루자가 훔쳐간 <모나리자>는 27시간이 지나서야 박물관에 모사를 하러 온 화가에 의해 도난당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이 소식은 삽시간에 퍼져 그때까지 벽에 붙어있는 <모나리자>를 보러 온 사람보다 <모나리자>가 없는 빈 벽을 보러 온 사람이 훨씬 많아지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모나리자가 없는 빈 벽을 보는 관람객들


빈첸조 페루자가 왜 <모나리자>를 훔쳤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이탈리아(피렌체) 화가가 그린 그림은 당연히 이탈리아(피렌체)에 있어야 한다는 빈첸조 페루자의 애국심의 발로였다는 설과 모사품을 만들어놓고(무려 6점) 그 모사품을 6명에게 팔기 위해 진품을 훔쳐냈다는 이야기까지 다양한 버전의 스토리가 있다. 모사품을 산 사람들은 진품이 도난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진품이라고 생각하고 얼마나 뿌듯했을까? 물론 그런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자신 말고도 5명이나 더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분명 뒷목을 잡았을 테지만 말이다.


2년 동안 빈첸조 페루자의 집에 갇혀있던 모나리자는 돈이 궁해진 빈첸조의 과감한 행동으로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빈첸조는 모나리자를 처분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골동품상 알프레도 게리와 접촉하는데, 알프레도 게리는 빈첸조가 보여준 모나리자를 보고 너무 놀란 나머지 그림을 사 줄 사람을 데리고 오겠다고 한 후 우피치 미술관장을 데려온다. <모나리자>가 진품임을 확신한 두 사람은 경찰을 부르고 빈첸조 페루자는 루브르에서 <모나리자>를 훔친 지 2년 만에 잡히게 된다. 골동품상 알프레도 게리는 모나리자를 찾아준 공로로 프랑스 정부로 부터 2만 5천 프랑의 상금과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았다고 한다. 아 사건을 통틀어 가장 큰 수혜자는 알프레도 게리일듯. 가만히 있는 알프레도 개리에게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온것 아닌가.


아무튼 이런 과정 속에서 <모나리자>는 점점 더 유명해졌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이지만 루브르 측은 <모나리자>를 보호하기 위한 보험에 가입했다. 보험료를 산정하기 위해 책정된 모나리자의 몸값은 1조! 아무튼 모나리자는 그 이후 4cm의 방탄유리 안에 갖혀 절대로 프랑스를 떠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겨놓은 회화작품은 몇 점 되지 않는다. 시대의 천재가 그린 그림이니 그 예술성은 의심할 필요가 없을 거다. 그러나 <모나리자>가 지금의 그 <모나리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빈첸조 페루자의 "어쩌다 노이즈 마케팅" 덕분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더 많은 사람들의 입에 더 많이 오르내리게 만드는 것. 그것이 마케팅의 본질 아닌가.



빨리-많이-대충 에서 천천히-깊게-대화하는 여행을 만들어주는... 그림 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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