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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Jun 10. 2018

오빠, 믿지?

우리에게 필요한 오빠

2016년 OECD가 발표한 더 나은 삶 지수(Better life index) 평가에서 대한민국은 38개국 중 28위를 기록했다. 2012년엔 24위, 2013년 27위였으니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이다. 


더 나은 삶의 질을 측정하는 11가지 항목 중 가장 낮은 점수를 획득한 부분은 공동체 지수다. 공동체 지수란 개인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웃이나 친구 등 사회적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응답하는 비율이다. 공동체 지수 점수가 가장 높은 아이슬란드의 경우 국민의 96%가 자신이 필요로 하는 시간에 의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한국은 76.5%, OECD 평균은 88%다.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한국인의 경우 인간관계 중 ‘가족’에 대한 신뢰도는 높지만(85%) 직장 동료(41.4%)와 직장 상사(35.3%), 학교 선생님(33.1%)에 대한 신뢰도는 모두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전에 비해 직장이나 학교, 각종 커뮤니티 등 훨씬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지만 사실은 내 주변에 진짜 믿을 만한 사람은 별로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를 신뢰할지 말지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데에 기반을 다진 인물 중 상앙이란 사람이 있었다. 효공 시대의 재상이었던 상앙은 새로운 법령을 만들었으나 백성들이 믿고 따르지 않을 것이 걱정되었다. 어떻게 하면 백성들에게 법령에 대한 믿음을 줄 것인가 고민하다가 계책을 세웠다. 도시의 남문에 9m가량의 나무를 세워놓고 이를 북문까지 옮기는 사람에게는 십금(十金)을 준다고 써 붙였다. 그러나 이를 본 백성들은 금을 욕심을 내면서도 믿지 않아 나무를 옮기는 이가 없었다. 그러자 이번엔 오십금(五十金)을 주겠다고 써 붙이자 어떤 사람이 나무를 옮겼고 상앙은 그에게 즉시 오십금을 주어 나라에서 법령을 시행하는 방법을 알게 하였다. 약속을 반드시 실천에 옮긴다는 의미의 이목지신(移木之信)의 어원이 된 일화이다.

신뢰 구축의 메커니즘은 단순하다.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반복되면 신뢰는 자연스럽게 생긴다. 아이를 키울 때 부모가 아이와 한 약속이 아이의 태도에도 영향을 끼치는데 부모 자식 간의 신뢰 수준이 높을수록 아이의 동기부여 지수가 높인다는 연구도 있다. 부모 자녀의 관계뿐만 아니다. 기업은 고객과의 약속을 얼마큼 지켜내는지, 정부는 국민과의 약속을 얼마큼 지켜내는지가 그 집단의 성공의 여부를 결정짓는 것이다. 


지속적인 말과 행동의 일체가 반복될수록 신뢰가 구축되어가지만 신뢰가 붕괴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신뢰를 구축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신뢰의 붕괴는 한순간이란 이야기다. 
미국 조지 메이슨 대학교의 갈등분석해결연구소에 의하면 신뢰 붕괴의 결정적 요소 3가지는 안전의 위협, 정체성의 공격, 자기결정권의 침해다. 


안전의 위협이란 기본적인 생존에 관한 위협이다. 먹고사는 일에 대하여 위협받게 되는 경우 그간 만들어진 신뢰는 깨진다. 정체성의 공격은 그 무엇보다 심각한 관계의 파괴를 가져온다. 정체성이란 그 사람의 존재 이유를 말하는데 부모를 욕한다거나, 개인 고유의 특성, 그 사람 전문 분야의 지식을 폄하하는 행위들이다. 


얼마 전 한 제약회사 사장이 자신의 운전기사에게 저지른 소위 갑질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실제 녹취파일이 공개되자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들끓었고 회장은 공식적으로 사과를 했지만 그 기업의 이미지는 막대한 손상을 입고 난 후였다. 그 녹취 파일엔 운전기사를 향한 인간적인 모독, 그 사람 고유의 특성을 부정적으로 판단하고, 그의 전문 분야인 23년간의 무사고 운전을 폄하하는 욕설로 가득했다. 결국 그는 그의 정체성을 공격받았던 것이다. 요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재벌의 갑질은 대부분 상대를 향한 정체성의 공격이다. 


<한비자> 중 세난 편에는 이런 말이 있다. 용은 성질이 유순해서 길들이면 타고 다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목에는 역린(逆鱗)이라 해서 거꾸로 난 비늘이 있으니 용을 길들인 사람이라 해도 그것을 만지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는 군주를 설득할 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지만 어디 역린이란 것이 군주에게만 있으랴. 모든 사람은 역린을 가지고 있고 특히 인간의 자존감과 천부적 존엄성에 대한 역린을 건드리게 되면 그 결과는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다시 신뢰로 돌아가자. 많은 정치인들이 자신이 속한 정당, 그리고 자신들의 신뢰성을 전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당명도 바꿔 보고, 외적 이미지 메이킹도 하고, 매체를 통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펼친다. 그러나 한 가지 잊고 있는 것이 있다. ‘내가 말한 대로 행동하는 것’, 이것이 기반되지 않으면 그 어떤 신뢰 구축을 위한 전략도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많은 국민들이 이미 ‘공약公約’이란 ‘공허한 약속(空約)’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걸 보면 정치인과 국민 간의 신뢰 구축이란 너무 먼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출근 길 교차로에서 깊숙히 허리를 숙이며,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성큼 성큼 걸어와 악수를 청하며 "오빠 믿지?" 라고 말만 하지 말고 그 말에 맞는 행동을 보여주시라. 우리에겐 이제 그런 오빠가 필요하다. ('오빠란 단어엔 언니도 포함되어 있음'을 꼭 써야할까 고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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