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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Jun 11. 2018

등잔 밑 인문학

15세기와 21세기의 만남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라라엘로' 이렇게 르네상스의 3대 거장에 도나텔로를 더하면 떠오르는 것은?


"닌자 거북이?"


코와붕가! 정답이다.


1990년에 제작된 스티브 바론(Steve Barron) 감독의 미국 영화 "닌자 거북이"의 주인공 이름이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의 천재 화가 4명의 이름이란 것을 알게 된 후 감독인지 작가인지 모르지만 캐릭터에 이름을 붙여준 작명 센스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태어난 년도대로 한다면 도나텔로가 막내인 라파엘로보다 아흔일곱 살 많은 형님이다.(형님이라 하긴 좀...) 둘째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라파엘로보다 서른한 살, 미켈란젤로는 여섯 살이 많다.

실제로 다빈치, 미켈란 젤로, 라파엘로는 동시대를 살면서 서로 경쟁하던 사이였고, 도나텔로는 그 셋에게 어마어마한 예술적 영향을 끼친 대선배다.


지금에야 다빈치와 미켈란젤로가 라파엘로와 도나텔로에 비해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당시에는 시대를 달리 한 도나텔로를 제외하고 세 명의 천재가 그야말로 용호상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네 명 아니 네 마리의 닌자 거북이에게 어느 한 명도 뒤처지지 않는 능력의 천재 이름을 붙여주었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닌자거북이 네 마리 아니 네 명의 능력 또한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는 의미 아닌가!


도나텔로(1386~1466),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 라파엘로 산치오(1483~1520)



닌자 거북이의 리더 레오나르도는 두 개의 쌍검을 무기로 사용하며 파란색 두건을 쓰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주황색 두건에 쌍절곤을 사용한다. 도나텔로는 보라색 두건을 착용하고 무기는 장봉을 사용한다. 라파엘은 두 개의 쌍차(쌍차가 뭐냐고? 아래 그림에서 확인해보시라), 빨간색 두건을 착용하고 있다. 영화상에서는 각각의 캐릭터마다 성격상의 특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데 거북이들의 성격과 르네상스 천재들의 성격과는 상이한 부분이 있다. 작가와 감독이 미술사 공부를 좀 더 했으면 캐릭터와 이름이 좀 더 매칭이 되지 않았을까 혼자 생각해보기도 한다. 싸움에서 제일 먼저 앞장서는 다혈질 라파엘로는 미켈란젤로로, 기계 천재 도나텔로는 다빈치로이름 붙여주는 것이 어땠을까? 아! 이렇게 써 놓으니 엄청 헷갈린다. 읽는 입장이라면 더욱 헷갈릴 텐데, 그냥 지나가자!




갑작스럽게 오래전 영화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얼마 전 인터넷 기사에서 재미있는 마케팅 사례를 보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미켈란젤로 전시회를 열었다. MET와 미켈란젤로의 조합이라니 누구라도 가 보고 싶을 기획이다. 그런데 미술관측은 전시회가 시작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관람객의 통계를 보니 20대 이하 관람객의 유입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이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홍보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끝에 15세기의 미켈란젤로와 21세기의 미켈란젤로가 만나는 상황을 연출했고 그 신선한 만남을 트위터 및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들의 목표고객에게 알렸다.


"This morning we welcomed Michelangelo, one of the Teenage Mutant Ninja Turtles at the Met. Our celebrity guest came to see the work of an artist who happens to share his name."


당시 이 소식은 18,676회 리트윗 되었는데, 이보다 3일 전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이 14,176회 리트윗 된 것에 비해 4000회나 많이 리트윗 되었다.




치열한 경쟁의 시대, 조직도 개인도 살아남기 위해 '인문적 역량'이 필요하다고 한다. 인문과 예술적 역량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철학자의 강의를 듣고, 역사학자의 책을 읽고, 고전을 공부하는 거창한 것이 아닌 우리가 삶 속에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일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보며 나와 타인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 생각하는 일, 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연결된 고리를 찾아내고 거기에 내 생각을 담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인문학 공부 아닐까?


멀리서 찾지 말고 어두운 등잔밑을 찾아보자 거기에 살아있는 인문학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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