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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Jul 26. 2018

엄마도 사실은 수포자였다

얼리 수포자의 고백


감수성 예민한 중학교 시절, 반장선거에서 아슬아슬하게 탈락한 나는 담임선생님의 전권으로 학습 부장이 되었다. 반장 선거에 탈락한 작고 조용한 아이가 불쌍해 보였나? 아님 학급 아이들의 학습을 책임질만한 깜냥이 있어 보였나? 아무튼 학습 부장이 되어 내가 한 일, 아니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수학 시간에 느꼈던 자괴감, 모멸감, 수치감 등등 세상에 모든 부끄러움을 표현하는 단어를 합한 그런 감정이다.


당시만 해도 과목별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학생은 똑똑한 학생도, 답을 아는 학생도 아닌 그 날짜와 같은 번호를 갖고 있는 학생이었다. 가령 그 날이 7월 26일이면 그 학급의 26번 학생은 자동 당첨! 그뿐인가, 6자와 관련된 모든 학생들이 후보가 된다. 6번, 16번, 26번, 36번, 46번, 56번. 그리고 그 친구들의 짝꿍은 물론 앞, 뒤 학생들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결국 우린 월, 화, 수, 목, 금, 토요일 단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가끔 창의력을 발휘한 선생님들은 6자를 거꾸로 돌려 9번대의 학생들을 희생양으로 삼기도 했다.


46번? 56번이라니? 위의 글에 오타가 있는 게 아닌가 궁금해하실 분 계실 텐데, 그 당시 한 학급엔 60명이 넘는 학생들이 있었고 토요일에도 4교시를 꽉꽉 채워 공부를 했다. 당연히 수업 일수가 많으니 여름방학, 겨울방학이 아주 길었다. 지금 고등학생인 아들은 이번 여름 방학이 고작 29일이라고 고통스러워했다. (니들이 토요일 놀아서 그런 거야!)


과목이 한두 개도 아니었는데, 어쩜 선생님들은 모두가 똑같은 방법으로 발표 학생을 지목했을까? 하긴 선생님들도 주입식 교육의 피해자들일 테니 색다른 지목 방법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가 있긴 하다. 그러던 중 가뭄에 단비 같이 획기적인 방법으로 발표할 학생을 지목하겠다는 선생님을 만났다! 가뭄에 단비라고 생각했던 것이 나중에 쓰나미로 내게 몰아닥칠 줄 누가 알았을까?


뱃살이 두둑하고 흰머리가 지긋한 여자 선생님의 담당 과목은 무려 수학! 그 선생님이 첫 수업시간에 공포하시길


"앞으로 내 수업시간엔 날짜와 같은 번호 학생을 불러서 문제 푸는 일은 없을 거다."


그런데 이 말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더 끔찍한 일인 거다. 누가 걸릴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 결국은 아무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는 것 아닌가? 머릿속이 혼란해질 무렵 이어지는 선생님의 말씀


"앞으로 수학 시간에 반장, 부반장이 대표로..."


아이들의 얼굴에 화색이 만연했다. 물론 반장과 부반장을 제외한 아이 들 만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선생님의 쐐깃말!


"문제를 푼다면 그것은 불공정한 처사일 것이다. 반장, 부반장은 다른 수업시간에도 할 일들이 많을 테니까, 나의 수업시간엔 학습 부장이 그 역할을 대신하면 좋겠다."


선생님의 말씀은 진동이 되어 나의 귀를 통과해 고막을 울리며 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되었다. 뇌는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고 나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학습 부장이라잖아! 학. 습. 부. 장! 그건.... 너라는 소리야... 이수정'


오 마이 갓! 나로서 말하자면 성적표를 받아 들고 나의 등수를 확인한 후 성적표를 접는 순간 내 등수를 잊어버리는 사람 아닌가? 메모지에 적은 전화번호를 들고 전화를 걸라치면 숫자 하나 확인 후 버튼 하나 누르고, 다음 숫자 확인 후 버튼 하나 누르는 숫자 난독증(이란 게 있다면)의 대표주자 아니던가? 그런 내게 매 시간 대표로 칠판 앞에 나와 문제를 풀라니 이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있단 말인가?

이는 명실상부한 인권침해요 고려의 여지가 없는 아동 아니 청소년 학대가 아닌가!


사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르키메데스와 피에르 만조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었는데, 서두가 너무 길어졌다. 엄청나게 한이 맺혔었나 보다.


아무튼 결론을 짓자면 칠판 앞에 나가 분필을 들고 벽면 수행을 서너 번 하고 나니 나의 역할은 다시 우리 반 반장에게로 돌아갔다. 그리고 내게 남은 임무는 매 시간 치렀던 쪽지 시험을 채점하는 일. 방과 후 홀로 교실에 남아 쪽지 시험 채점을 하며 나는 내 시험지에 반장이 풀어놓은 문제를 옮겨 적은 후 채점을 해야 했다. 매번 50점 정도로 조작을 해놓았는데 아마도 나의 조작질을 알면서도 눈 감아 주셨을 거라 생각한다.


고백하건대 나는 아주 오래전 '얼리 수포자'였던 것이다. (참고로 나는 수학 빼고 다른 과목은 모두 잘했다! 정말!) 그리고 나는 아직도 칠판을 바라보며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아무것도 써 내려가지 못한 그 시절의 나를 가끔 꿈속에서 만나곤 한다.


그런 나 이기에 아이를 낳고 아이에게 가장 많이 시킨 공부는 '수학'이었고 미술전공자인 내가 가장 등한시 한 공부가 미술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 아들이 가장 못하는 과목이 수학이고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림으로 상을 받아온다.


세상엔 마음먹어서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다.


어느 헬스클럽의 광고용 배너에 적혀있던 명문 '다이어트한다고 마음먹었으면 마음만 먹어야지 다른 걸 먹으면 안돼요'처럼 마음먹고 그 일을 잘 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거다.


뭐 이런 뜬금없는 과거 고백과 맥락 없는 글이 있단 말인가?


아마도 날씨 탓일 거다!


아르키메데스와 피에르 만조니의 이야기는 내일로 미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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