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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May 01. 2020

인생 레시피

1일 1글 시즌4 [episode 33]

요즘 유튜브에서 핫한 채널 중 하나는 뭐니뭐니해도 먹방이지요? 먹방이란 말이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모르지만 2008년경 인터넷방송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말이 있어요. 방송을 진행하는 사람이 무언가를 직접 먹으며 시청자들의 식욕을 돋우거나 먹는 즐거움을 대신 느끼게 해주는 방식으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어갔죠.


영국잡지 이코노미스트는 대한민국에서 먹방이 인기있는 이유는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한국인들에게 널리 깔려있는 불안감을 잠시나마 약화시켜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함께 나누는 음식을 통해 관계를 돈독하게 만드는 한국인의 특유한 문화를 생각하면 나름 일리있는 분석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더 재미있는건 먹방이 한국어 발음 그대로 전세계 유튜버들의 콘텐츠로 재 생산 되고 있다는 건데요. 혼자먹는 밥, 즉 혼밥이 트렌드가 되며 먹방을 통해 그 외로움을 달래려는 심리가 저변에 깔려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아무튼 먹는다는 일은 인류의 역사전체를 통틀어 매우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생존하기 위해 먹는 단순한 행위부터 자신의 삶의 수준을 과시하기 위한 먹기 까지 그 목적과 방법은 참으로 다양할텐데요, 오늘은 음식이 주인공인 영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물론 음식이 주인공격이긴 하지만 그 음식을 둘러싼 인물이 실제 주인공인 것은 당연한 이야기겠지요.


일본의 전통 빵인 도라야끼를 만들어 파는 센타로는  무표정한 얼굴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깊은 시련이 있는것인지 영화의 전반부 내내 무표장한 얼굴과 투박한 손으로 도라야끼를 만들고 있습니다. 전혀 즐거워보이지 않는 그의 앞에 76세의 도쿠에 할머니가 나타나 아르바이트를 청합니다. 할머니의 나이엔 힘에 부치는 일이고 급여도 많지 않다고 부담스러워하는 센로에게 할머니는 자신이 만든 팥소를 전합니다. 그 맛을 본 센터로는 할머니를 받아들입니다.  


할머니가 만드는 단팥은 센타로의 전화 한통으로 배달되어 오던 깡통에 든 단팥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할머니는 50년간 매일 아침 해왔듯이 천천히 팥을 씻어내고, 먼 길을 찾아와준 팥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팥의 소리를 듣고, 팥과 설탕이 친해지기를 기다려주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팥을 끓이고 졸이는 과정 내내 팥과 대화를 하며 '팥들'과 눈을 맞춥니다. 이러한 과정이 거친 바람과 비를 이겨 냈을 팥에 대한 예의라고 말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귀찮아했던 센타로는 점점 할머니의 방식에 익숙해지게 되고 서로의 인생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마음으로 만든 단팥소 때문이었을까요? 센타로의 도라야끼는 사람들의 인기를 끕니다. 그러나 도쿠에가 한센병 환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람들로부터 금새 외면당하게 되지요. 결국 할머니는 요양소로, 센로는 가게에서 쫓겨납니다. 한센병이 더 이상 전염되지 않는 병이고 치료 또한 가능한 시대임에도 사람들의 편견은 쉽게 없어지지 않습니다.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삶을 살아온 도쿠에 할머니에게 센타로의 가게에서 만드는 도라야끼는 유일한 세상 나들이였을지도 모릅니다.


도쿠에 할머니는 자신이 팥소를 만들던 도구들과 작은 녹음기하나를 남기고 세상을 떠납니다. 도쿠에 할머니는 세상의 모든 것 들은 언어를 가졌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세상을 보기 위해 듣기 위해 태어났으니 특별한 무언가가 되지 못한다해도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라고 녹음기를 통해  센타로에게 말합니다. 센터로는 할머니의 소리를 마음에 담고 밤새 무언가를 중얼거립니다.


벚꽃이 흩날리는 공원의 한 켠, 센터로는 도쿠에 할머니의 도구를 가지고 길거리에 도라야키 매대앞에 서있습니다. 잠시 주저하지만 이내 큰 소리로 ‘도라야키 사세요’ 라고 외칩니다. 영화내내 볼 수 없었던 환한 얼굴의 센터로의 모습이 벚꽃과 어우러지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지금 소개해드린 앙-단팥인생 이야기는 일본의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9번째 장편영화입니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시작한 나오미감독은 27살에 만든 수자쿠로 칸 영화제 황금카메라상으로 화려하게 데뷔합니다. 나오미 감독은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는 이혼해 떠났고 외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입양되어 자랍니다. 아버지는 그녀가 23살이 될 때까지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녀에게 영화는 가족의 자기고백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전적인 소재로 전반적으로 명상적이고 사색적인 색채가 강한 연출을 합니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기법인 롱테이크로 화면을 구성하고, 인물의 미묘한 느낌을 잡아내는 익스트림 클로즈업 기법을 통해 영화의 스토리는 마치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담담히 목격하는 것 같은 느낌을 전달합니다. 대중성과는 거리가 있는 영화를 만들어 온 나오미감독은 앙 단팥 인생이야기로 조금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도쿠에 할머니와 센터로 사장이 단팥소를 만드는 장면이 아닐까생각합니다. 삶을 팥을 정성껏 씻어내며 하나하나 골라냅니다. 한 번 삶은 팥을 으깨지지 않도록 살살 옮겨 탁한 물이 투명해질때까지 떫은 맛을 흘려보내라고 합니다. 팥이 솥에서 새로만나게 되는 설탕과 친해질 때까지 기다려주고, 조심조심해서 타지 않도록 재빨리 저어주어야 한다고 알려줍니다. 그런데 저는 이 가르침이 마치 센터로에게 또한 관객들에게 우리의 인생도 이렇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의 삶을 조심조심 다루고 인생의 떫은 맛이 충분히 빠질 때까지 계속 물을 갈아주고,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친해지도록 기다려주고, 때가 되면 너무 늦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빨리 움직이라고요.


도쿠에 할머니의 단팥소 레시피는 어쩜 우리 삶을 꾸려가는 레시피가 아니였을까요?   


소울 푸드 (soul food)라는 말이 있지요. 미국 남부에서 노예 제도를 통해 태어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전통 요리의 총칭하지만 어린시절 혹은 힘든 시절 고향에서 먹었던 음식들, 음식을 먹으면 영혼이 위로 받는 느낌이 드는 음식을 말하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서 센터로와 도쿠에 할머니의 관계를 이어주는 도라야키는 아마 그들의 소울푸드 였을 겁니다.


우리는 햇살과 바람을 그리고 자연을 느끼기 위해 태어난 존재, 그들처럼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가 있는 존재, 그렇기 때문에 애써 특별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아도 된다. 힘들어도 자신이 살고픈 대로 자유롭게 살라고, 다 괜찮다고 토닥여주는 도쿠에 할머니의 따뜻한 위로를 떠올리며 할머니가 우리에게 남긴 인생 레시피를 곰곰히 되새겨봅니다.


내 삶을 더욱 맛나게 만들 인생 레시피는 무엇일까...생각하는 따뜻한 봄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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