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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Apr 28. 2020

돌려줘야 할 때가 되었는데

1일 1글 시즌4 [ episode 30]

엄마,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작은 키가 더 작아져버린 우리 엄마, 어릴 적엔 산처럼 거대하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움츠러든 어깨가 가련한 아버지.


오랜만에 서울에 나오셨다가 되돌아가시는 길에 혹시라도 지하철을 잘 못 타실까 싶어 지하 1층은 6호선이고 또 한 층 내려가야 5호선이니 방향 확인하신 후 타라고 연거푸 말한다. 5호선을 타고 공덕역에서 환승하여야 한다. 방향을 확인하고 타야 한다. 이것 저것 몇 번을 반복해서 말하고 나니 마치 내 아들에게 걸을 땐 스마트폰을 보고 걷지 말아라. 항상 주위를 살펴라. 어디를 가든 비상구 위치부터 확인해라 라고 잔소리하는 것과 꼭 같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잔소리가 늘었다. 애틋함이 많아졌다는 소리다.

참견이 많아진다. 경험이 많아졌다는 소리다.

당부가 많아진다.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가 많아졌다는 소리다.


어릴 적 나를 향한 엄마, 아빠의 잔소리에 나는 늘 퉁명스러운 딸이었는데

지금 엄마 아빠를 향한 나의 잔소리에 그들은 보살 같은 미소만 띤다.


어릴 땐 시도 때도 없이 참견하지 말라고 큰소리치던 나였는데

지금 나의 자잘한 참견에도 살림 9단 엄마와, 사회 9단 아빠는 그러냐고 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만 한다.


밥 잘 챙겨 먹고 다녀라, 차 조심해라, 밤늦게 다니지 마라 라고 하더 엄마, 아빠의 당부는

그때의 엄마, 아빠 나이가 되어버린 내가 그때의 내 키만큼 작아져버린 엄마, 아빠에게 다시 되돌려 준다.


엄마, 아빠 식사 잘 챙겨서 드세요. 드시고 싶은 거 있으면 언제든 이야기하세요.

엄마, 아빠 지하철 내려서 환승할 버스가 안 오면 그냥 택시 타고 들어가세요. 괜히 힘들게 서서 기다리지 말고

엄마, 아빠 환하고 안전한 길로 다니세요. 미끄러져 넘어지지 않도록요.


엄마, 아빠가 내게 주었던 그 많던 사랑을

이제 내가 돌려주어야 할 때가 되었는데


여전히 엄마, 아빠가 잠깐 앉았다 가신 우리 집 테이블 위엔 만원 짜리 두 장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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